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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학술 회의 문제와 관련하여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0. 10. 25. 13:26

    일본학술회의(대한민국 학술원에 상당 - 옮긴이)에 대한 신규 회원 임명 거부와 관련해 많은 학회가 차례로 항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만, 정부와 학술단체의 대립은 마무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스가 정권은 왜 발족 초기부터 정치적 긴급성이 없는 이런 사안에 손을 대는가. 학술단체로부터 격한 반발이 있을 것임을 스가 정권은 왜 예측하지 못했는가. 단순히 '정무감각의 문제' 를 이유의 하나로 들 수 있겠으나, 그보다 스가의 주관적 판단으로는 그것이 합리적인 행동이었으리라고 생각하는 편이 바람직한 지견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가 정권이 최우선시하는 정치 과제는 '행정지출의 최소화' 입니다. 어떻게 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전 정권의 내각관방장관(한국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상당 -옮긴이) 으로서 스가 총리가 학습한 것은 반대파의 이의를 전부 묵살하는 것, 그리고 국민 사이에 정치를 포기하게끔 하는 무력감을 확산하는 수법이었습니다.

    안전보장관련법안도, 특정비밀보호법안도, 국민의 과반수가 여론조사에서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다' 고 의사표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은 이를 무시하며 강행채결했습니다. 선거에서 이긴 이상, 전권은 여당에게 주어졌다는 이유로 양보를 거부하고, 결과적으로 정권에 비판적인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무력감과 좌절감을 심어주는 일에 아베는 성공했습니다.

    반대파에 무력감을 선사하고, 정치활동을 비관적으로 느끼게 하면 행정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스가는 아베에게 배운 경험칙을 적용하여 '반 정부적인 발언을 하는 자에게는 여하한 공적 지원을 하지 않을 것' 이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못박기 위해, 일본학술회의에 관련한 인사권에 손을 뻗쳤습니다. 이미 여당 정치가, 관료, 기자들은 관저에 대한 충실도에 따른 '인사고과' 를 받는 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학자들도 손봐주려고 합니다. 어차피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을 제압하는 데에 있어서 정부는 그간 성공적 체험을 축적해 왔습니다. 90년대 이래로 일본의 대학 관계자들은 교육 행정에 억눌려 양보를 거듭한 탓에 이렇다 할 반격을 할 수 없었습니다. 2014년 교육법 개정에 의해 대학 교원 단체는 권한을 상당히 빼앗겼고, 대학은 학장이 전권을 장악하는 주식회사적인 조직으로 개편되었습니다만, 이때도 대학 관계자들은 조직적인 저항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베 정권과 스가는 이것을 보고 '학자라는 자들은 양순한 자들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일본학술회의는 임명거부도 무저항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예상 밖으로 학자들의 격한 반대에 부딪쳐 파탄나고 말았습니다. 불 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으로 <네이처> 와 <사이언스> 같은 해외 학술지가 이 사태를 보도하기에 이르러, 세계의 과학자들로 하여금 일본의 새 지도자는 자유로운 학문연구를 탄압하는 반지성주의자들이라는 인상을 품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행정 비용과 국력에는 제로섬 관계가 있습니다.
    국운이 융성하는 나라의 국민은 활기차게, 여러 새로운 조직이나 운동을 만들어내기에 정부의 행정 비용이 불어나게 됩니다.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대로 중산층이 발흥하면 시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정치 활동이 활발해지며, 시민 혁명이 일어나 고릿적의 비민주적인 정치체제가 무너집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문화적 저력이 높아져 갈수록, 행정 비용은 앙등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1960~70년대 고도성장기 때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를 '전 국민의 중산층화' 로 일컫습니다. 동시에 시민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이 활발해지고 혁신 지자체가 전국에 생겨나서, 정부로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추적인 통제에 돈과 시간이라는 품이 들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시민 전체가 권리의식을 갖지 않으며 정치 참여도 하지 않는 '예스맨' 으로 가득 찬 나라는, 행정 비용을 한없이 전무에 가깝게 할 수 있습니다. 위정자들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다스리기 쉬운 나라가 되겠습니다만, 그 대가로 사회는 발전을 중단하고, 혁신이 일어나지 않으며, 문화나 학술 영역도 쇠퇴하게 됩니다.

    국력이 높아져 가는 '자유분방한 나라' 의 행정비용은 산처럼 늘어나고, '축 늘어져 있는 나라' 는 행정비용이 무척 싸게 먹힙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싶으십니까?

    아베 정권에서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해질수록 정권은 안정화된다는 교훈을 얻은 신임 스가 총리는, 적극적으로 일본을 '무기력한 나라' 로 만들고자 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정치가, 관료, 언론인, 학자 누구도 권력에 도전하는 이가 없는 사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회는 국력의 쇠락이라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학술회의를 향한 공격은 '국력의 향상보다 정권의 안정을 우선하는' 판단이 이끌어 낸 결과입니다.

    '조직 관리 비용 최소화는 <절대선> 이며, 다른 모든 목표에 우선한다' 는 슬로건은 현대 일본을 온통 뒤덮고 있는 일종의 사이비 종교 교리입니다. 영리 기업 뿐만 아니라, 행정, 의료, 교육 등의 여타 조직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임무수행 목록을 무시한 채, 그저 지출 절감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조직이 갖고 있던 당초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조직 유지만을 자기목적화하는' 변태적 상황은 이제까지 일어났던 관료제의 폐단에서 익히 보아온 바입니다만, '조직이 존재 목적을 잃은 채 생존에만 급급하는' 이상현상은 제가 아는 한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버블 붕괴(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일본 각종 경제지표 및 자산가치 하락 -옮긴이) 이후, 혁신성 없이 생존 의의를 잃어버린 조직은 어느 곳이나 '어떻게 비용을 절감할 것인가' 대책을 세우는 부문이 중추가 되어 이러저러한 정책 결정을 단행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사회적 효용성' 을 산출해내는 조직을 만들 것인가, 그것이 조직의 원점입니다. 그 다음에 비로소 어떻게 조직원들과 조직원들의 가족을 부양할 저력을 갖출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연구개발의 인센티브, 기업가정신, 그리고 혁신이 생겨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조직은 '비용절감 근본주의' 라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애초에 조직이 짊어져야 했을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약체화하고 말았습니다. 여러 조직이 상명하복이라는 '효율적인' 조직으로 개편되는 가운데 거기에 속하는 멤버는 예스맨의 성격을 충분히 갖춰야만 했고, 그렇게 해서 일본은 '폭군과 간신' 만으로 구성된 조직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일본학술회의 따위는 상아탑의 문제다' 라며 언론도 시민도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바라보고 있습니다만, 작금의 학자들이 행하고 있는 저항은 일본 사회가 '예스맨이 아니면 살 수 없' 도록 변해가는 흐름을 막아내는 아슬아슬한 최전선의 일입니다. 이 사회현상을 끝내 좌시한다면 머지않아 일본은, 윗사람에 대한 충실도만을 잣대로 삼아 모든 사람을 평가하는 '아첨꾼 사회' 가 될 것입니다.

    학자가 증거나 논리를 가볍게 여기고 당대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하는 연구결과를 내기 시작하면, 일본의 학술도 이제 끝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상아탑의 위신 문제가 아니라, 일본이 발하는 여러가지 정보가 국제적인 신뢰성을 잃게 된다는 뜻입니다.

    행정 비용을 삭감하면 국력이 쇠하고, 국력이 증대되면 행정비용이 늘어난다. 그런 것입니다. 나라가 쇠잔해져도 정권이 안정되면 그만이라는 것은 하나의 선택지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본에는 더 이상 어떠한 의미도, 미래도 없다는 것을 각오해두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2020-10-22 10:29)

    출처: http://blog.tatsuru.com/2020/10/22_10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