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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미국의 남북 대립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0. 10. 3. 12:37
동명의 지방지에 기고한 8월분의 에세이. 남군기(南軍旗)에 대해.
얼마 전, 미국 국방장관이 군사 관계 시설에 ‘남군기(南軍旗)’ 의 사용 금지를 하달했다. BLM 운동의 확산을 맞아, 노예제도 존속을 내건 남부연합군기를 군 시설 내에 게양하는 것은 인종차별을 긍정하는 것이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하여 결단한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남군기(南軍旗)가 벽에 걸린 바에서 반드시 컨트리 음악이 흐르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부츠를 신은 남자들이 말보로를 피우며, 병째로 직접 맥주를 마신다. 도시에서 온 차를 불태우거나, 젊은 여성을 납치하거나, 사람을 쏘아죽이거나 하는 픽업트럽에는 대체로 남군기(南軍旗)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런 영화적 정형에 익숙해진 탓에, 남군기(南軍旗)라는 것은 미국 어디서든 후진성이나 폭력성의 기호로 간주되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설마 지금도 미군 군사시설에서 사용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의 불찰이 부끄럽다.
그런 ‘오해’가 생긴 것은, 내가 남군기(南軍旗)의 기호적 함의를 오직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 학습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는 남북전쟁이 끝난 뒤 150년이 지난 지금도, 엄연히 남북대립이 남아있다. 뿌리 깊은 백인지상주의는 일소되지 않았으며 인종차별・성차별・LGBT 차별 등의 문화적 관습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뿌리 깊은 남북대립을 ‘미해결의 난제’ 로써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미국 사회는 그동안 태만한 태도를 유지해 온 게 아닌지 나는 생각한다. 1863년의 노예해방령이나 1965년의 공민권법 등에 의거하면, 법리상으로는 더 이상 인종차별이 존재하지 않을 터이다. 그렇지만, BLM운동은 그것이 단적으로 ‘거짓’ 임을 폭로했다.
서부 개척지나 기병대가 무대인 경우, 남군기(南軍旗)가 각자 출신을 달리하는 등장인물들의 대립이나 갈등 이야기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경우가 있어서, 남군 장병의 용맹함을 칭송하는 대사를 조연이 읊는 경우도 있었다. 허나, 딱 잘라서 ‘남군에게도 대의가 있었다’ 고 낭랑하게 선언하는 인물은 헐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법이 없다.
‘남군의 대의’ 는 언급되지 않은 채 150년 이상에 걸쳐 억압당했다. 그리고, 드디어 국방장관이 남군기(南軍旗)를 ‘국민 분단의 상징’ 으로써 금지했다. 하지만, 사용을 금지했다고 해도 국민통합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누군가가 남부연합에 대해 ‘공양’ 을 하기 전까지는 대립이 끝나지 않은 채, 남군의 ‘숭배’ 가 지양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딱히 남군을 추켜세운다든가 옹호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저, 남부연합이 합중국과 싸워서 패배한 그 역사적 사실을 패자 쪽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좋다. 그 공덕에 대해서는 일본의 노(能) 공연이 가르쳐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전에 이 코너에 ‘남군기(南軍旗)를 공양하는 게 좋겠다’ 고 쓴 바가 있는데, 무척 엄격한 비판이 미국에 있는 독자로부터 날아들었다. “이 깃발을 내건 인간에게, 남북 전쟁 종결 후 150년간 차별당하고, 굴욕당하고,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남군기(南軍旗)는 나치의 하켄크로이츠같은 것이어서, 석별의 염을 가지고 경의를 담아 공양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남부의 과거 죄상, 암흑기를 확실히 인식해, 그것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공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적은 타당하다. 나도 딱히 남군의 대의를 옹호검증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패자에게도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 ‘숭배’ 는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멸망한 헤이케(平家) 에 대한 숭배를 그만 두게 하기 위해 <헤이케 모노가타리>가 쓰여져, 많은 노(能)가 만들어졌다. 피아 어느 쪽에 정당성이 있었는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죽은 이들에게 ‘나는 이러저러하게 죽었다’ 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죽음의 장면을 상기하면 죽은 자들의 혼을 달랠 수 있다고 옛사람들은 믿었다.
그것은 역사를 패자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고, 공식 역사로부터 소외당한 야사적 일화를 채집한다는 의미도 있으며,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삼켜져 사라져간 개인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 작업은 정부나 역사학자가 할 일은 아니다. 진혼은 할 수 있는 한 개인의 역할이다.
마크 트웨인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노예제라는 변함 없는 현실과, 도망 노예를 향한 측은지심에 휩싸인 남부 소년을 그렸다. 그것은 남북전쟁 후 미국 전국의 독자가 스스럼없이 공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이야기’ 였다. 마크 트웨인이 ‘미국 문학의 아버지’ 로 불리는 이유는 아마 그 공적에 있을 것이다.
(2020-10-0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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