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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권을 총결산함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0. 10. 3. 12:35
사임 후 <주간 금요일> 에 기고한 것.
정권의 공과에 대해,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도덕적 인테그리티(정직, 성실, 고결)’ 의 결여라는 것.
정치 지도자는 도덕적인 인테그리티를 갖춰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그런 인간임을 국민에게 확신시킬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베 정권 최대의 특징은,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권력자라는 것은 도덕적인 규범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하는 ‘새로운 비판’ 을 대중매체를 통해 전국민의 심리 속에 새겨놓았다. 나는 이것이 아베 정권이 초래한 최대의 재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지금 정치가, 관료, 기업인, 지도자들이 ‘국민 전체의 복리’ 를 목표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동료, 부하, 지지자, 연고자, 그리고 물론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권력을 활발히 행사하고 있지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할 생각은 없다. 그것을 우리들은 이제 받아들였다.
‘권력을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권력을 쥐었다> 라는 것이다’ 라는 시니컬한 동어반복을 사람들은 ‘리얼리즘’ 이라고 부른다.
분명히 이 신빙은 진실의 일부분을 지적한다. 그렇다는 것은, 어느정도 권력이 있어도, 합리적인 근거에 기초해 적법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정치 지도자는 국민이 두려워하지 않기 떄문이다. 그런 지도자는 존경받거나 신뢰받을 수는 있어도, 공포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들이 두려워하고, 눈치를 보고, 그 내심을 살펴보는 대상은, 애매한 근거에 기반해 수미일관성 없는 정책을, 법률을 무시하며 실행하는 정치지도자이다. 합리성도 수미일관성도 적법성도 개의치 않는 태도를 우리들은 ‘강함’ 으로 해석한다.
아베 신조는 정치지도자에게 도덕적인 인테그리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국민에게 반복해 주입식 교육을 했다. ‘권력자를 두려워하게 하기 위해서 도덕적 인테그리티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라는 것을 그가 어딘가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항상 정직한 것보다는 거짓을 짜 올리는 쪽이, 항상 논리적인 것보다는 여러번 비논리적으로 되는 쪽이, 다음 행동이 예측 가능한 인간보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인간인 쪽이, 권력기반을 안정시킨다는 경험지를 그는 어딘가에서 습관화했다.
‘이긴 자는 옳기 때문에 이긴 것이다. 다수를 점한 당파는 진리를 말했기 때문에 다수를 점한 것이다’ 라는 현실긍정에 대해 현대인은 지금 트렌디한 암묵지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실제로 내가 국정에 대해 발언하면 ‘그럼, 너 자신이 국회의원에 입후보해서, 자신이 국정에 관여하면 되잖아. 못 하겠다면 입 다물어’ 라는 유형의 ‘비판’ 이 날아온다.
‘권력비판은 자기자신이 권력자가 된 뒤에 하라’ 는 것은 바꿔 말하면 ‘현재 시스템을 긍정하고 그 룰에 따르는 캐리어 형성해 나가 시스템에 완전히 적응할 때까지, 시스템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다. ‘현상비판하고 싶으면 현상긍정하라’ 는 악마적인 논리를 그들은 받들고 있을 뿐이지만, 그것이 엉터리라는 것을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은 알지 못한다.
내 유튜버 친구가 어떤 유튜버를 비판했는데, ‘그런 것은 재생회수가 같아진 뒤에 말하라’ 는 ‘비판’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업가에 대해 비판해도 ‘그런 것은 똑같이 돈을 번 뒤에 말하라’ 는 ‘비판’ 이 행해진다. 그것이 사람의 입을 막는데는 효과적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일본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것은, 이 ‘권력자를 비판할 권리는 권력자밖에 갖고있지 않다’ 라는 사고정지이다. 그리고, 아베 정권은 참으로 이 국민적인 스케일에서의 사고정지를 달성했기 때문에 ‘일강’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그것은 이 7년 8개월 간의 ‘현실적 대안을 내지 않는 야당에게는 존재이유가 없다’ 라는 말투를 야당 정치가 자신이 마음 약해져 입에 담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여당과 같은 논리를 따라, 같은 어휘를 구사해, 같은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정치세력만이 ‘현실적’ 이라는 것은, 그저 사대주의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든가 ‘줄을 잘 서야 한다’ 라는 고릿적 처세술의 재탕이다. 일본인은 그런 것조차 모르게 되었을 정도인 것이다.
권력자이기 위해서는 ‘권력적인 행동거지를 할 수 있는’ 이상의 요건은 없다는 새로운 권력관을 아베 정권은 긴 시간을 들여 일본인에게 주입시켰다. 그래서, 실제로 아베 정권을 통한 중요법안의 많은 수에 대해, 안보법제도, 특정비밀보호법도, 테러 등의 준비죄도, 국민의 과반은 여론조사에서 ‘급하게 채결할 사항이 아님’ 이라고 의사표시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정권은 그것을 무시하고 강행채결했다. 내각지지율이 분명히 직후에 일단 떨어졌지만, 금방 회복했다. 즉, 유권자들은 ‘이 정권은 우리가 반대해도 아무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강대한 권력을 갖고 있다. 그런게 된 이상, 복종할 수밖에 없다.’ 고 합리적으로 추론한 것이다.
아베 정권은 이 ‘리얼리즘’ 을 심리적 기반으로 해서 만세반석의 ‘일강체제’를 뽐냈다. 그렇지만, 이 ‘리얼리즘’은 팬데믹이라는 ‘현실’ 에는 먹히지 않았다. 인간은 권력을 두려워하지만, 바이러스는 그런 ‘심리’ 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23개국 사람들에게, 코로나 대책에 관해 자국 지도자의 평가를 요청한 설문을 했을 때, 일본정부의 대응을 ‘높게 평가한다’ 는 사람은 일본 국민의 5%에 그쳤다. 사망자 수 세계 최다인 미국조차 트럼프를 ‘높게 평가’ 하는 국민이 32% 있다.
국민은 아베 정권이 감염 억제에 대해서 무능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국가재난적 상황에서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가 국민 전체의 복리와 건강과 안전을 염두에 둔다고 ‘믿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베 정권 하에서 국민은, ‘권력자들은 자기이익을 위해서 행동하고, 자신의 지지자, 자신의 연고자에게밖에 편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라는 것을 훨씬 전부터 학습했었다. 감염증은 전국민이 균일하게 양질의 의료를 받는 것이 가능한 체제를 정비하는 것으로밖에는 수습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지지자 한정으로 선택적인 이득을 제공하고, 반대자에게는 ‘어느 것도 해주지 않는다’ 라는 도덕적 인테그리티의 결여를 과시하는 것으로 ‘일강체제’의 심리적 기초를 공고히 했다. 그러므로, 아베 총리는 강대한 권력자였지만, 그 권력을 전국민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결코 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각 지지율이 30%였으므로, 감염증 대책을 높이 평가하는 국민이 5%에 머무르고 말았던 사실은, ‘우리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치가이므로 지지한다’ ‘이기적으로밖에 굴지 않는 권력자이므로 두려워하고 복종한다’ 는 도착이 이 정도로 깊게 우리들의 사회를 침식해 온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인은 이 병적인 현상 긍정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합리적으로, 적법하게,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지도자를 ‘신뢰하고, 존경하는’ 정치문화를 다시금 구축하지 않는 한, 일본의 몰락은 멈출 수 없을 것이다.
(2020-10-0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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