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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 정권의 7년 8개월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0. 8. 29. 15:41

    아베 정권의 7년 8개월을 어떻게 종합 평가할 것인가 묻는다면, 나는 '지성과 윤리성을 현저히 결여한 총리가 장기간에 걸쳐 정권을 잡은 탓에, 국력이 눈에 띄게 쇠잔해졌다' 라는 평가를 내리겠다.

    지금 일본은 GDP 세계 3위이며, 군사력 또한 세계 5위의 '대국' 이다. 국제 사회 가운데 '선진국' 으로 대우받기도 하고,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가장 신뢰하고 있다는 동맹국으로서의 안정된 평가도 있다. 그렇지만, 일본이 '질서 잡힌 국제사회' 에 대해 제언한다든가, 그 실현을 위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일본 안팎을 찾아봐도 보이지 않으며, 경제적 성공을 위한 '일본 모델' 이나, 세계 평화의 실현을 위한 '일본 비전' 을 일본 정부가 제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이 정도의 '국력' 이 있으면서도 누구 하나 일본에 리더십을 요청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해 우리 일본인들은 한층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째서 국제 사회는 일본에 리더십을 기대하지 않는가?
    그것은 일본인이 '윤리적 인테그리티(강직, 성실, 고결)' 라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국민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리적인 인테그리티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나라는, 돈이 얼마나 있든지(사실 그렇게 많지도 않지만), 얼마나 강한 군사력을 뽐내든지, 몇 번이고 '스고이 일본' 이라며 자신의 입으로 떠들어대든지, 이에 대해 누구 하나 진솔한 경의를 내비치는 일은 없다.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인간은 타자로부터 '진솔한 경의' 를 밑거름으로 해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공부를 하고, 또 여러가지 '극기' 를 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은 경의 없이는 살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헤겔이 직감한 바와 같다. 그리고, 일본은 언제부터인가 '타자로부터의 진솔한 경의' 를 누구에게도 받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일본인이 '살아갈 기분이 아니 들게' 되어버린 이유이다.

    국가가 윤리적인 인테그리티를 가졌을 때, 국민은 그것을 나눠 가진다. 국가가 고매한 이상을 내걸었을 때(설령 그것이 상당 부분 착각이라고 해도), 국민은 그 나라의 일원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신의 영웅적 노력으로 국운이 향상되기를 바라게 된다. 독립전쟁 당시의 미국도,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도, 레닌과 소련도, 국민이 국가의 운명과 자기 자신의 운명 사이에 연결이 있다고 믿을 때, 그 나라는 강하다. 반대로, 국민의 대다수가 '개인적 노력의 목표는 자기 이익의 증대일 뿐, 내 개인적 노력이 국력 증대에 이바지할 수 있는 직접적인 회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쌀쌀맞은 기분으로 대응할수록, 나라 전체의 퍼포먼스가 하락한다. 일본은 지금 그런 나라가 되었다. 역설적으로 '국가주의' 을 표방한 아베 정권하에서 일본 국민이 잃어버린 것은 '나' 와 '나라' 사이의 일체감이었던 것이다.

    7년 8개월 동안의 아베 정권을 지켜보아온 일본 국민이 알게 된 것은, 정치가일지라도, 관료일지라도, 기업인일지라도, 주류 언론일지라도, 그들의 행동은 '국민 전체의 복리' 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당파, 자신의 지지자, 자신의 연고자, 자기 자신을 위해 그 권력을 활용한다. 그것을 우리들은 알게 되었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권력을 자기 이익 도모에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권력을 쥔다> 는 의미다' 라고 하는 시니컬한 사대주의를 지금 사람들은 '리얼리즘' 이라고 부른다.
    '이긴 자는 옳으니까 이긴 것이다. 다수를 점한 당파는 진리를 읊었기 때문에 다수를 점한 것이다' 라는 현실 긍정, 사고 정지 가운데 많은 일본인이 매몰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극적인 국력 쇠락의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아베 정권 기간에 통과된 중요 법안의 많은 것들 즉 안보법, 특정기밀보호법, 테러 준비죄 모두에 대해 여론조사에서 국민 과반수는 '지금 국회가 강행 체결할 사안이 아니다' 라고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권은 이것을 강행함에 따라 지지율은 일단 떨어졌음에도, 바로 회복했다. 즉, 유권자들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아무리 반대해도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의 강한 권력을 이 정권은 가지고 있다. 그렇게 된 이상, 복종할 수밖에 없다' 라는 허탈한 추론으로 이어졌으며 그것을 '리얼리즘' 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닫힌 정치적 세계 속이라면, 아베 정권은 이 '리얼리즘' 을 심리적 기반으로 해서 앞으로 수년 혹은 그 이상에 걸쳐 반석의 체제를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정치적 리얼리즘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집단감염이라는 '리얼' 에는 참으로 통용되지 않았다. 바이러스의 위험을 호소하면서 적절한 대응 조치를 요구하는 국민에 대해서는, 그들을 윽박지르고 회유하며 필요하다면 데이터를 은폐조작해 잠재울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바이러스에 그런 손장난은 통하지 않는다.

    지난번에, 세계 23개국 사람들을 상대로 코로나 대책에 임하는 국가 지도자의 평가를 묻는 설문조사가 행해졌다. 일본 정부의 대응을 '높이 평가' 하는 일본 국민은 5%에 그쳤다. 세계 평균은 40%, 중국은 86%, 베트남은 82%, 뉴질랜드는 67%, 사망자 세계 최다수를 기록한 미국조차 트럼프를 '높게 평가한다' 는 국민이 32% 있다.

    이 숫자는 감염을 효과적으로 억제한 것과는 직접 상관이 없다. 이를테면 사망자 수가 적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일본 정부 스스로가 '감염 억제에 성공했다' 라며 계속 떠들라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본 국민은 아베 정권이 감염 억제에 대해서 참으로 무력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국가 재난적 시국에 필요한 것은, 지도자가 국민 전체의 복리, 건강, 안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 국민은 그런 것을 믿지 않았다. '일본의 지도층은 자기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만 편익을 가져다 준다' 라는 것을 훨씬 예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각 지지자들조차 정권은 '자신들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하는 일은 있어도 전국민을 위해서 그리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감염증은 전 국민이 차등 없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체제를 정비하지 않으면 진정될 수 없다. 그렇지만 아베 정권은 지지자에게만 선택적으로 이득을 가져다 주고, 반대자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는 것으로 하여금 '원톱 체제' 의 심리적 기반에 쐐기를 박았다. 내각 지지율이 30%를 넘었는데도 감염 대응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 5%밖에 되지 않았던 것은 그 탓이다.

    아베 정권은 국민을 지지자와 반대자로 양분하고 '반대자에게는 아무것도 베풀지 않는' 것을 통해 권력에 겁먹고 복종하는 국민을 창출해 내려고 했다. 그래서 그가 권력 기반을 강고히 해 감에 있어, 일본인은 점점 '리얼리스트' 가 되었고, 성실이나 정직 그리고 공평이라고 하는 '위선' 을 진심으로 코웃음치게 되었으며, 그리고 정말이지 그런 태도 탓에 국제사회의 어떤 나라도 진솔한 경의를 표하지 않는 국민이 된 것이다.

    인간은 타자가 증여하는 경의를 먹고 몸을 살찌운다. 그 사실을 잊어버린 자는 '살아있다는 실감' 을 잃게 된다. 일본인은 지금 그렇게 해서 국력의 쇠잔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자기책임인 것이다.

     
    (2020-08-29 10:14)

    출처: http://blog.tatsuru.com/2020/08/29_10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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