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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 일본판 해설서 (1~10, 우치다 타츠루)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0. 8. 16. 20:22
(옮긴이 주- 오즈 야스지로 팬페이지 http://ozu.kr 운영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오즈 야스지로 단상 (1) <통과의례로서의 오즈 영화>
내년도(2021년) 대학에서 다시금 영화론에 대해 강의하게 되었다. 영화 한 편을 보고서, 거기에 대해 약 한 시간 논하는 강의를 세 번. <꽁치의 맛>(1962) 은 금방 결정했지만, 다음 두 편을 정할 수 없었다. 결국 오카모토 기하치의 <독립 우 연대 서쪽으로>(1960)와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 이렇게 세 편 골랐는데, '영화에서의 전쟁과 군대' 라는 테마로 한데 묶이게 되었다.
오즈 감독에 대해서 예전에 써 놓은 것을 찾아 읽어보려고 훑어보니 10년 정도 전에 오즈 야스지로 DVD 전집이 발매되었을 때 해설서에 써둔 것이 나왔다. 그 이후로 단행본으로 나온 적이 없는 문장이어서, 기념으로 게재해 둔다. 전부 10개. 우선 제 1회부터. <동경 이야기>(1953) 에 첨부한 문장이지만 <동경 이야기> 에 대한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오즈 야스지로 영화를 집중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1975년부터인데, 그때까지 오즈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75년 설날 때,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는데 TV에서 <안녕하세요>(1959)가 방영되고 있었다. 느릿느릿하고 소박한 타이틀과 테마곡이 흘러나올 때, 우선은 채널을 돌리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지만 당시 TV는 손으로 돌려서 바꾸는 방식이어서 일어나 TV까지 가서 끼릭끼릭 조작해야만 했다. 자리를 떠 채널을 바꾸는 게 귀찮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누워서 멍하니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작하고 나서 몇 분이 지나(아니, 몇 초였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상상하고 있던 '홈 드라마' 의 전형과는 정말이지 상반된, 거의 다른 세상의 것이라는 점을 느꼈다. 그러자니 나는 브라운관에 얼굴이 닿을 정도로 TV에 가까이 다가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간헐적으로는 바닥을 뒹굴며 웃었다.
이렇게 재밌는 영화를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날부터 오즈 영화를 찾아다니며 도쿄의 영화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삼 년 정도가 되니 오즈 영화의 거의 전부를 보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시절 대학을 나왔지만 정식으로 일자리를 잡지 않고, 산발적인 아르바이트를 하고 난 뒤 오후에는 마작을 치고, 밤에는 재즈를 들으며 술을 마시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앞날이 보이지 않는 이십 대 한가운데의 청년에게 있어, 오즈 영화를 보는 시간은 예외적으로 '지복의 시간' 이었다. 오즈의 영화는 그런 비생산적인 삶의 방식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던 나의 신경을, 달리 누구도 해 주지 않았던 방식의 '자상함' 으로 어루만져주었다.
오즈의 영화에서는 딱히 비생산적인 청년이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근면했다(내가 아는 한 가장 게을렀던 건 <초봄>(1956)의 다카하시 데이지였지만, 그조차 낮에는 마루노우치의 번듯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샐러리맨도 바텐더도 요정의 마담도 파친코의 아버지도 모두 각자 직장에서 확실히 일하고 있었다. 오즈 영화 가운데 '불로소득' 을 취하는 인간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안녕하세요>의 강매꾼조차 '나인 투 파이브' 로 일하고 있다).
노동의 하루를 끝마친 사람들의 달성감과 해방감, 그것들은 오즈 감독이 가장 사랑했던 주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루 일을 마치고 스시집의 카운터나 돈까스집의 식탁에서 '오늘의 첫 맥주' 를 맛나게 들이켜는 장면을 우리들은 거의 모든 오즈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이십 대 한가운데에 있던 나는 그것을 보고, 문득 '일하자' 고 생각했다. 딱히 누군가에게 등 떠밀린 것도, 장래의 불안이 심해진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라' 하고 오즈 야스지로는 말한다. 그 메시지가 오즈 감독 전 작품의 저변에 흐르고 있다. 그것을 오즈 감독은 위압적이지도 교화적이지도 않은 어조로 고한다. '어른은 즐거운 거라구'.
생각해 보면, 오즈 영화는 나의 '통과의례' 였다. 나는 24세부터 27세에 걸쳐, 오즈 야스지로를 집중적으로 본 것으로 하여금 '아이 시대' 로부터 이륙하게 되었다. 그것에 대해 오즈 야스지로에게 품는 감사를 나는 일생 잊지 않으리라.
(2020-08-08 17:14)
오즈 야스지로 단상 (2) <아이는 어떻게 해서 어른이 되는가>
아래는 <늦봄>(1949) 출시 때 써둔 것.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모두 '어른' 이 어떤 경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 수 많은 실천사례를 담고 있다. 오즈 영화는 내게 있어 틀림없이 성숙을 위한 '교과서' 였다. 나는 거기에서 남자들의 사고방식, 말하기 방식, 술 권하는 법, 부조금 건네는 법 등등을 배운 것이다.
내가 가장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은 <늦봄> 이다. 이십 세 하고도 몇 살을 더 먹었을 때,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봤다. 그로부터 얼마나 반복해서 봤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사십 세 하고도 몇 살을 더 먹었을 때, 문득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푸른 거리에서 딸과 둘이서 살며 대학에 가지 않을 때는 책상에 앉아 유럽 학자의 저술을 읽고 번역을 하며, 때로는 친구들을 초대해 죽림칠현마냥 논하는 한편 술고래가 되고, 일요일에는 노(能) 악당에 가는 등의 일을 삼는 중년 대학교사가 되었다. 나는 어쩌면 인생의 여러 기로에 섰을 때, 선택지 가운데 좀 더 '소미야曾宮 교수적' 인 것을 선호하는 사이에,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나의 언행도 '소미야 교수적' 인 것이 되었다. '소미야 교수적' 이라고 함은 '정형적' 이라는 것이다. 소미야 뿐만 아니라 오즈 영화에 나오는 (내가 롤모델로 우러러 본) '어른들' 은 거개가 '상투어의 달인' 들이었다.
<늦봄> 에서 소미야(류 지슈) 가 노리코(하라 세츠코) 에게 고하는 가장 결정적인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 어쨌든 시집을 갈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더, 시집 가기 전 마지막 가족 여행 도중에, 소미야와 옛 친구 오노데라(미시마 마사오) 둘이서 료안지 정원에서의 대화.
"자식을 둔다면 역시 남자아이지. 여자애는 키운 보람이 없어. 공들여 키워 놓으면 시집 가 버리니까. 가지 않으면 또 그것대로 걱정이고. 막상 간다고 하니까 역시 뭐랄까, 헛고생이야."
"그야 어쩔 수 없잖나. 우리들 역시 훔쳐온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젊은 사람 가운데는 이런 말을 '인습적이다' 라든가 '비주체적이다' 라고 느껴서 독이 바짝바짝 오를 지도 모르겠다. 우선, 결혼이 화제로 올라왔음에도 대체 '사랑' 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어디 있는거냐, 라고.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화면에서 이 대사를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등을 곧게 펴고 싶어진다. 어쩌면 이것은 수 만년 전부터 영위해 온 '친족' 이라는 제도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진리는 '상투적' 인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는,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무게인 것이다.상투어에 대해 한 가지만 더.
<피안화>(1958) 는 결혼 피로연 장면에서 시작한다. 내빈으로서 축사를 읊는 히라야마(사부리 신) 의 마치 그림에 그린 듯한 상투구의 나열은 나로 하여금 현기증에 가까운 도취감을 선사한다. 만약 '상투어로만 쓰여진 시' 라는 게 있다면(그런 건 없지만), 그것은 이 히라야마의 축사를 형용하는 데 어울리리라. 그를 흉내 내어 "사뭇 감개가 무량하옵니다" 라는 구절을 언젠가 나도 축사로 써먹어 보고 싶지만 아직 해보지 못하고 있다. 성숙에 이르는 길은 정말로 멀다.
(2020-08-08 17:23)
오즈 야스지로 단상 (3) <식탁의 의례>
아래는 <맥추>(1951)에 곁들인 내용.오래된 영화를 보고 있자면, 테마나 영상미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에 눈이 가기 마련이다. '아아, 그렇구나. 이 시절에는 이런 식이었구나' 하고 묘한 부분에서 놀랄 때가 있다. <맥추> 를 보고 나서 떠오른 것.
그 첫 번째.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 반찬은 큰 접시에 함께 담고, 자기 젓가락으로 덜어 먹는다*. 마미야 가는 원래 전통적인 명가로, 당주(류 지슈) 또한 의대 교수로 도쿄 근교의 단독 주택에서 살고 있으므로, 이것은 당시 중산층의 밥 먹는 방식이라고 간주할 수 있으리라.
노리코(하라 세츠코)가 먼저 식사를 마친 뒤 '잘 먹었습니다' 라고 말하며 자신의 식기를 부엌의 개수대에 놓는 장면이 있다. 그때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밥그릇과 국그릇 뿐. 그렇다는 것은, 젓가락을 밥상 위에 남겨둔 것이다. 유추해 보면, 그녀는 식후에 쓰고 난 젓가락을 그대로 놔두고 온 것이다. 설거지하지 않은 채로. 어쩌다 보니, 그리 끝난 것이다. 즉, 젓가락은 거지반 개인용이고, 거지반 공공재라는 관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에 '자기 젓가락으로 덜어먹기'를 하는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그것이 그릇된 예절이라는 타박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밥공기라는 '사' 와 반찬그릇이라고 하는 '공' 사이에 '반쯤은 사물, 반쯤은 공공재로서의 젓가락' 이 육박해 온다. 과연,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바와 같이 식탁 의례라는 것은 훌륭히 체계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순배巡杯' 라는 습관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사다케(사노 슈지)가 응접실에 얼굴을 들이민 노리코에게 자신이 마시던 잔에 술을 부으며 '자, 한 잔' 하고 건네는 장면이 있다. 이런 '술잔 돌리기' 라는 관습도 폐지된 지 오래다. 이것도 술잔이라는 그릇이 '거지반 사물, 거지반 공공재' 라는 트릭스터적 성격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잔은 두 영역에 동시에 귀속하는 것으로, 두 사람의 인간을 한데 묶어 친밀성을 키워나가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뜻깊은 인류학적 예지를 품은 여러 식탁의례가 '비위생적인 것' 이라든가 '봉건적' 이라는 알량한 합리주의에 의해 사라져 버린 것은 정말로 안타까워해야 마땅하다.
한 가지 더. TV가 없던 시절의 '단란한 가정' 이란 무엇이었던가에 대해서도 떠올렸다. 모두 각자의 세계에 갇혀서 꼼짝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모여 밥상을 빙 둘러싸고는 있지만, 어떤 사람은 신문을 읽고, 어떤 사람은 잡지를 보고, 어떤 사람은 무료하게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어떤 사람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생각해 보면, 당시의 '단란한 가정' 이란 것은 지금 TV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모두가 웃는 얼굴로 떠들썩하게 구는 축제적인 분위기가 아닌, 입을 다물고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 뿐이었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아도 되고, 하지 않아도 좋은 채로 '가족은 그저 거기에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라는 조건이 있었을 뿐이었으므로, 가족들이 홀가분히 모여서 '차 마실래?' '으응' 같이 별것도 아닌 대화를 나누면서, 각자의 고독을 음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60년, 이런저런 것들을 잃어버렸다. 그중 많은 것은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방식으로 잃었다.
(2020-08-0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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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젓가락으로 덜어 먹는다: 쌓아 올린 요리 등을 전용 집게가 아닌, 자신의 젓가락으로 직접 그릇에서 가져다 먹는 것. 격식 높은 일본 요리를 맛보는 자리에서 직접 덜어 먹는 것은 결례. 한국과 중국에서는 전용 집게를 쓰지 않기 때문에, 본격적인 자리에서도 자신의 젓가락으로 나눠 먹는다. (출처 https://dictionary.goo.ne.jp/word/直箸/)
오즈 야스지로 단상 (4) <최후의 청년과 그 소멸>
<오차즈케의 맛>(1952) 에 첨부한 글월.<오차즈케의 맛> 에는 쓰루다 고지가 연기한 '논짱' 이라는 청년이 나온다. 쓰루다 고지는 이후 어두운 배우가 되어 가지만, 오즈의 이 영화 안에서는 예외적으로 구김살 없이 밝은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논짱은 사다케 모키치(사부리 신) 의 전사한 옛 친구의 동생이다. 취업 준비중일 터이지만, 파친코라든가 경륜, 라멘집이라고 하는 새로운 오락에 정통해 모키치나 세츠코(쓰시마 게이코)를 상대로 득의양양하게 그 쓸모를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 그다지 진지하게 일자리를 찾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논짱이 입사시험을 앞두고 모키치와 바에서 만나서, 맥주를 마시며 감흥 넘쳐흐르게 독일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관객은 여기서 그가 구제고교(오늘날 대학 교양학부에 상당 -옮긴이) 출신이라는 것을 유추한다.
졸업생은 그대로 제국대학(옛 일본의 동경대 등이 해당됨 -옮긴이) 에 진학해 엘리트가 되는 것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시대에서 구제고교생의 특징을 논짱은 잘 체현해내고 있다. 그것은 '잘 놀지만, 거기에 빠지는 일은 결코 없는' '일부러 건들거리고 다니지만, 타고난 교양과 양질의 가정교육이 조금씩 드러나는' 성격 특성이다. 그 의미를 말하자면, 논짱은 소세키의 <산시로> 에서 시작한 '일본 청년' 의 최후 세대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햇빛이 비치는 언덕>(1958)에 나오는 이시하라 유지로나 <흐트러지다>(1964)의 가야마 유조 정도는 어찌어찌 '청년' 축에 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미 그들에게서 아카데미즘만큼은 찾아보기 힘들어진 시점이다.)
일본 근대의 '청년' 은 러일전쟁 전후에 태어나 1960년대에 소멸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쓰메 소세키나 모리 오가이가 작품을 통해 '이상적인 청년상' 을 세심하게 조형해 낸 것은, 메이지 시대의 일본이 열강에 끼기 위해서 '청년' 적인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그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청년' 에 대한 국가적 수요가 사라졌을 때, '청년의 이야기' 도 소멸했다. 논짱은 일본 영화가 조형한 그 최후의 청년 중 한 사람이었다(청년에게 맡겨진 사명은 '이기는 것' 에서 '패배를 견디는 것' 으로 바뀌었지만).
청년은 어느 정도 사회적 능력을 갖추고 충분한 시민적 자유를 향수하고 있지만, 아직 어린아이와도 같은 무구한 정의감과 상처 입기 쉬운 마음을 움켜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드하고 터프한 '어른의 세계' 와, 덧없고 부서지기 쉬운 '아이의 세계' 에 동시적으로 속하는 것이 가능하다. 청년은 그의 신체를 이 두 세계 사이에 무리하게 비집고 들어감으로써, 냉철한 리얼리즘을 완화하고 아이다운 몽상의 파편을 몇 개든 끌어낸다. 현실을 이해하기 쉬운 자상한 형태로 바꾸고, 또한 몽상을 현실이라는 형식으로 다듬는다.
오즈 야스지로는 그런 청년을 즐겨 그렸다. <피안화>(1958)의 다카하시 데이지, <안녕하세요>(1959)의 사다 게이지, <고바야카와 가의 가을>(1961)의 다카라다 아키라... 그들의 '못미더움' 을 오즈는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리얼리스트인 어른과 미성숙한 아이는 어떤 시대에나 있으나, 청년은 어떤 예외적인 역사적 상황 가운데 태어나, 그리고 사라져 간 후에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통찰한 오즈 야스지로가, 그 소멸을 애석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2020-08-08 17:28)
오즈 야스지로 단상 (5) <나쁜 아저씨들의 이야기>
<가을 햇살>(1960) 에 부친 것.사부리 신, 나카무라 노부오, 기타 류지, 류 지슈가 연기한 구제 중학 고교(옛 일본의 대학 진학 시스템으로 엘리트 코스를 상징 - 옮긴이)의 동급생들이, 긴자의 바나 요정에 모여서, 여러가지 '짓궂은 장난' 을 기도하는 내러티브는 <피안화>(1958)에서 시작해, <가을 햇살>(1960), <꽁치의 맛>(1962) 에서 반복된다. 그다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지만, 이 '나쁜 사내들'의 정형을 발굴해냄으로써 오즈 야스지로는 그의 영화세계를 완벽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따지고 보면 오즈의 동년배이자, 그와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 '루나' 나 '와카마쓰' 는 아마 오즈 자신이 종종 들르곤 했던 장소를 재현해낸 것이고, 거기서 나눈 대화도 오즈 자신이 친구들과 나눈 대화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남자들은 오즈 야스지로의 '얼터alter 에고' 이다.
그렇지만 오즈의 끝 모를, 이 남자들을 그리는 필치 가운데에는 공감이나 친밀함뿐만이 아니고, 잔혹할 정도로 사실을 품고 있기도 하다. 엘리트 교육을 받고 전쟁에서 살아남아 사회적 성공을 거둔 남자들의 태연자약한 행태로부터 비어져 나오는 '견디지 못할 정도의 부박함' 을 오즈는 간과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학력에 대한 집착.
<가을 햇살>에서는, 아야코(쓰카사 요우코)의 맞선 상대를 물색할 적의 다구치(나카무라 노부오)가 왈가왈부하는 '동경대 건축과를 나와, 지금은 오바야시구미에 다닌다' 라는 인물소개의 괴이함에 우리들은 가슴이 뜨끔해진다(실재하는 회사명이 스토리와 관계 없이 영화 가운데 언급된 예를 나는 달리 알지 못한다). 마미야(사부리 신)가 추천한 신랑 후보인 고토(사다 게이지)의 학력이 '와세다대 정치경제학과' 라는 것은 구와노 미유키가 부르는 대학 응원가와 함께 소개된다. 세 사람의 '아저씨' 들은 대학 시절, '혼고 산초메(동경대 캠퍼스의 소재지 -옮긴이)' 에 있는 약방의 딸 아키코(하라 세츠코)를 짝사랑하게 된다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거기에서 관객들은 이 남자들이 도쿄대 졸업생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일상적인 대화 사이에 자신과 타인의 학력을 놓치지 않고 언급하는 것은 일본 고학력 남성의 공통적인 폐습이다(이 글의 저자 우치다 교수는 도쿄대 출신이다 -옮긴이).
마미야가 매사 위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두드러진다. '부탁드립니다' 도 '감사합니다' 도 없이 수화기를 내려놓는 모습이나, 상대의 의중도 묻지 않은 채 점심부터 여성들에게 기름진 뱀장어를 강요하는 마미야의 횡포를 오즈는 그대로 그려낸다. <가을 햇살>에서는 유달리 초로의 남자들이 보이는 호색함이 부선율로 영화 전체에 휘감기고 있다. 음담패설이나 마담(다카하시 토요)의 성생활에 관한 집요한 언급은 이 '아저씨' 들의 품성 수준을 노정하고 있다.
영화는 아야코의 결혼과 아키코의 재혼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농담으로 얼버무리며 웃는 남자들의 장면에서 전환되어, 혼자 사는 아키코를 신경쓰는 유리코(오카다 마리코)의 짧은 방문과 아키코의 무언이 클로즈업되며 끝난다. 아키코의 무표정에는 '견딜 수 없게 천박한 남자들' 을 향한 절망이 새겨져 있다. 그렇지만, 오즈는 그 '절망적인 남자'의 측에서 머문다. 오즈 야스지로는 '절망적인 남자들' 의 한 명이라는 괴로운 위치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2020-08-08 17:30)
오즈 야스지로 단상 (6) <소년의 도상학>
<피안화>(1958)에 부친 것.여대 교수로 있으면서, 학생한테서 결혼에 대해 곧잘 상담을 받는다.
'어떤 사람이 남편으로써 어울릴까요.'
이 질문에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남자란 결혼하고 나면, 모두 똑같아진다구.'
남자의 사회적 성숙도는 '사회' 에서 (즉 남자가 양복을 입고 있을 때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집에 돌아와 옷을 벗고 속옷 차림이 되고 말면, '쓸 만한 남자' 도 '몹쓸 남자' 도 말이나 행동에 그다지 차이가 없다. 결혼한 후, 여성이 보게 되는 것은 남자라면 누구나 똑같은 것, 단적으로 말하면 남자의 가장 무방비하고 유아적인 부분 뿐이다. 그러므로 '결혼해버리고 말면, 모두가 똑같다' 는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는 성숙과 유아성이 모순 없이 동거하는 그런 남자들의 꼴을 잔혹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린다. 그것은 '지금 무엇을 입고 있는가' 에 따라 남자들의 행동거지나 말씨, 판단조차 바뀐다는 것이라고 영상적으로 나타낸다.
남자들이 옷을 벗는 장면을 우리들은 전후 거의 모든 오즈 영화에서 볼 수 있다. 현관에서 모자를 벗고, 가방을 아내나 하인에게 넘기고, 겉옷을 벗어버리고, 주머니 안의 물건들을 밥상에 던지고, 넥타이를 풀며, 바지와 셔츠를 팽개쳐놓고, 최후에는 속옷만 남는다. 그 프로세스로 남자는 '어른' 에서 '유아' 로 퇴행해 간다. 모양새 좋은 정장 차림에서, 잠방이 한 벌이 됨으로써 남자들은 감정의 억제력을 잃고, 불쾌감을 주며, 제멋대로가 되고, 말하는 것이 비논리적으로 된다. <피안화>에서 히라야마(사부리 신)가 아내(다나카 기누요) 앞에서 유아성을 드러내는 것은 세츠코(아리마 이네코)와 다니구치(사다 게이지)와의 결혼에 '나는 반대야'라고 부루퉁해 할 때인데, 옷을 벗자 억제를 상실해 가는 히라야마의 변화를 오즈는 거의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한편 히라야마가 장자로서의 풍모를 보일 때는, 결혼식에서 눈부신 스피치를 하는 모닝 코트 차림일 때와, 친구의 딸(구가 요시코)에게 도덕을 설교할 때이다(이때는 실내임에도 모자까지 착용하고 있다).
포멀 웨어를 입으면 어른, 속옷 차림이 되면 아이가 되는 히라야마에게는, 그렇지만 그 '중간' 상태가 존재한다. 일요일에 사치코(야마모토 후지코)의 자택으로 노타이 가디건 차림으로 찾아갔을 때, 클럽하우스에서 골프웨어를 입은 친구 가와이(나카무라 노부오) 와 딸의 혼담에 대해 타진할 때, 중학교 동창(류 지슈) 들과 유카타 차림으로 '사쿠라이에서의 결별' 을 부를 때, 히라야마는 '어른'과 '유아'의 중간, 즉 '소년' 이라는 포지션에 존재한다. '소년' 일 때의 남자의 특징은 '쑥스러움' 과 '헤맴' 과 '솔직' 이다. 어른과 유아의 중간상태에 있을 때, 남자들은 기적적으로 그 성격의 가장 양질의 부분을 살짝 내비친다. 오즈는 남자들의 유아성에 대해서는 잔혹할 정도로 사실적이었지만, 남자들의 소년성에 대해서는 그것을 조금은 낭만적으로 각색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히라야마는 장녀 부부와 화해를 결의한다. 그때 옷자락을 묶은 '여관의 유카타' 를 입은 히라야마는 공터에서 진흙투성이가 된 채 놀고 있는 그의 소년 시절을 나타내는 실루엣을 일순 재현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2020-08-08 17:33)
오즈 야스지로 단상 (7) <전쟁에 대해 말하지 않는 남자의 이야기>
<꽁치의 맛>(1962)에 부친 것.오즈 야스지로는 군인이 싫었다. 전쟁 말기, 참모본부로부터 정훈공보 영화 제작을 명받은 오즈는 싱가포르로 파견되었지만 아무것도 찍지 않은 채 그저 현지에서 압수한 할리우드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전쟁 중 만든 <아버지가 있었다>(1942), <도다 가의 형제 자매들>(1941) 에서도 오즈는 군인을 행인으로조차 등장시키지 않았다.
도리어 전후의 작품에서는 전쟁의 그림자가 불길한 새와 같이 영화의 모서리를 가로지르는 경우가 있다. <세입자의 기록>(1947) 이나 <바람 속의 암탉>(1948) 같이 직접적으로 전쟁을 다루는 것은 오히려 예외적이고, 평온한 생활자들의 따분한 일상에 갑자기 전쟁의 그림자가 끼어드는 묘사 방식을 오즈는 선택했다.
유작인 <꽁치의 맛>은 1962년 작품이므로 패전으로부터 이미 17년이 경과한 시점이다. 일본은 부흥을 좇아 남자들은 잘 차려입은 정장 차림으로 외제차에 타서 긴자의 요정에서 질리지도 않게 비싼 술을 마시며 딸의 혼담 이야기에 빠져 있다. 그렇지만 딸을 시집 보낸 후에 혼자 남은 늙은 아버지의 고독에 관한 화제를 다룰 때, 전쟁의 이미지가 일순이지만 화면에 가로지른다.
늙은 아버지(히가시노 에이지로)가 혼기를 한참 넘긴 딸(스기무라 하루코)과 꾸려가는 초라한 국수집은 군수 보급기지를 연상케 하는, 드럼통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더러운 뒷골목이다. 거기서 딸을 시집보낼 기회를 놓친 아버지의 앞에 등장한 히라야마(류 지슈)는, 직업군인이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사카모토(가토 다이스케)와 만나게 되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함장' 이라는 십 수년 전의 직책으로 불린다.
사카모토의 권유로 들른 바에서 군함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히라야마는 (아마도 전화戰禍로) 잃어버린 부인과 용모가 닮은 여자(기시다 교코)와 만나, 상실감을 더해간다.
이야기의 끝이 가까워졌을 때, 딸의 결혼식을 끝내고서 꼭두각시처럼 허탈해하는 히라야마는 다시금 그 바를 찾는다. '오늘은 어디 갔다 온 거예요, 장례식인가요?' 라고 여자는 히라야마의 상실감을 지적하는 잘못을 범한다. 거기서 히라야마는 '뭐, 그런 거지' 라고 웃는 얼굴로 답한다. 그리고, 아직 군함행진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카운터에 있던 손님 한 명(스가 후지오)이 개전날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대본영 발표' 를 읊조린다. 그러자 가까이에서 술을 마시던 다른 샐러리맨이 '제국 해군은 오늘 새벽 5시 30분에, 미나미토리시마 동쪽 방면 해상에서' 라고 잇는다. 그 말을 끊으며 스가 후지오는 '패배했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렇습니다. 패배했습니다' 라고 다른 한 사람이 응한다. 두 사람은 그대로 정면을 곧장 바라보면서, 초면인데도 마치 옛 동지 사이와도 같이 온화한 얼굴로 위스키 글라스를 홀짝거린다. 이 장면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박력이 있다.
예전에 병사였던 남자들의 '전쟁 때, 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 라는 근질거림과, 장성한 자녀가 출가하고 난 뒤 최후에는 혼자 남는 늙은 아비의 '인간은 결국 외톨이다' 라는 독백이 대선율對旋律과도 같이 서로 얽혀 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는 동안 사람은 자신의 절대적인 고독을 알게 된다.
만취한 히라야마가 다리를 두드리며 부르는 '방어도 공격도 강철로 만든... 인가. 바다에 떠 있는 든든한 성채로다... 인가.' 라고 탄식하는 듯한 '...인가' 에서 오즈는 히라야마의 입을 빌어 마음 속에 치유되지 않고 남아 있는 끝 없는 고독을 나타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20-08-08 17:37)
오즈 야스지로 단상 (8) <커뮤니케이션의 심도>
<안녕하세요>(1959)에 부친 것.<안녕하세요> 는 내게 있어 그리운 영화다. 그것은 내가 태어난 동네를 무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노루와 이사무 형제가 등하교하면서 걷던 다마가와의 도테는 내가 매일 아침 강아지와 산책하던 길이고, 가출한 두 아이가 밥솥을 움켜쥐며 맨손으로 밥을 먹던 그 계단에서 나도 연날리기와 눈썰매를 타고 놀았다.
그 동네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과 전쟁 중에 군수산업으로 번성했기 때문에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전후 그 잿더미 위에 상경민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나의 양친도 근처의 사람들도 그랬다. 그러므로 이 마을에는 지켜야 할 마츠리(일본 지역사회 고유의 주기적 단합 행사 -옮긴이)도, 어르신들로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도, 토산요리도, 방언도 없었다.
<안녕하세요>의 주민들도 각자 출신지의 특징을 간직한 채, 우연히 이곳에 집주했다. 공동체라고 할 만한 것은 '부인회' 밖에 없지만, 그것은 지역의 연대를 깊게 하기 위해 기능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남자들은 가끔 근처의 이자카야에서 만났지만 화제는 신통치 않았다. 약간의 차이로 이웃집 사이에 심각한 대립이 생기는 일도 있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 이 집을 맞대고 사는 이 주택지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의 성사 여부가 사활적으로 중요하게 된다.
오즈는 커뮤니케이션의 불모지에서 일어나는 몇 개의 우화적 에피소드를 이 영화에서 거듭 그려내고 있다.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두 개 뿐이다. 한 가지는 '방귀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젠노스케(다케다 노리카즈)가 입으로 내는 희미한 방귀 소리에 그 즉시 아내(다카하시 도요)는 부엌에서 일손을 멈춘 채 '여보, 불렀어?' 라고 물어온다. '불렀어?' 를 세 번째 말하게 되었을 때, 젠노스케는 '오늘 가메이도 쪽으로 가려는데, 떡이라도 사 올까' 라며 뚜렷한 사의를 갖고 대답한다. 그러자 아내는 '아아, 정말 좋은 날씨네' 라고 남편이 근로할 하루에 축복을 되돌려 주었다. 아마도 영화관이 폭소로 가득 찼을 이 장면에서, 오즈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부인의 깊은 지견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최초의 일격' 이 무작위적인 노이즈였다고 해도 그것을 자신 앞으로 받은 메시지라고 생각한 인간이 출현했을 때, 커뮤니케이션은 창시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인사'. 부친에게 수다스러움을 꾸지람당한 미노루는 이렇게 반론을 펼친다. '어른들도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잖아.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날씨 좋네요>...'
어설픈 합리주의자인 미노루는 메시지를 과부족 없이 전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TV를 갖고 싶다' 는 의사를 전하기 위해 'TV를 갖고 싶다' 고 큰 소리로 아우성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런 메시지는 어느정도 일의적이기는 하지만, 알력 말고는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모른다.
거기에 반해, 서로 은근히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는 헤이치로(사다 게이지)와 세츠코(구가 요시코)는 자신들의 '마음 속 컨텐츠' 를 결코 발설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일 그리고 날씨에 관한 이야기만 할 뿐, 중요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커플이다.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역에서 만났을 때도 두 사람은 변함 없이 날씨 이야기만 한다. 그렇지만, 이 아름다울 정도로 무의미한 재귀로 하여금 오즈 야스지로는 일본 영화 사상 가장 순도 높은 애정표현을 나타낸 것이다.
(2020-08-08 17:38)
오즈 야스지로 단상 (9) <질문이라는 이름의 폭력>
<동경의 황혼>(1957) 에 부친 글.<동경의 황혼>은 오즈 감독 작품 중에서도 두드러지게 어두운 영화이다. 언제나 몰려 다니는 코미디, 릴리프(relief)계인 스가 후지오, 다나카 하루오나 다카하시 데이지의 기발한 연기가 담긴 다른 영화에서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나였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는 한번도 웃지 않았다.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마작 테이블을 둘러싸고 메이코(아리마 이네코)와 그 연인의 성관계, 그리고 메이코의 임신을 그 자리에서 웃음거리로 만들 때의 논짱(다카하시 데이지)의 집요한 장난은, 아마도 배우 다카하시 데이지 생애 최고의 퍼포먼스일 지도 모른다.
논짱은 야구해설자 고니시 도쿠로의 '저기, 그럴~까요' 라는 독특한 말투를 흉내내, (때때로 '퐁' 하는 소리를 끼워넣으며) 무언지 영화 스토리의 많은 부분에 해당하는 긴 대사를 설명하고 만다. 이것은 더없이 이례적인 것이다. 오즈 감독 영화에서는 관객이 알 리 없는 중요한 사실을 배우가 대사를 통해 '순서를 딱딱 맞춰 설명하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설명' 이라는 행위에 포함된 본질적인 폭력성을 오즈가 싫어했기(라기보다는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진짜 기분이나, 행동의 진의는 본인도 모른다. 그러므로 '어째서?' 라고 설명을 요구해도 상대방은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입을 열지 않는 침묵에 사람을 몰아넣는 집요한 질문에는, 뭔지 모르게 타인의 생명력을 시들게까지 하는 사악함이 존재한다.
<동경의 황혼> 에서의 극적 긴장은 모두 '대답을 강요하는 것' 과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무는 것' 의 대치 상황에서 전개된다. 슈키치(류 지슈)는 차녀 메이코가 낙태 비용을 마련하려고 온 자리에서 '그런 돈이 어디에 필요하냐' 라는 대답 불가능한 질문을 던진다. 형사(미야구치 세이지)는 심야 다방에서 찾아올 리 없는 연인을 기다리고 있는 메이코에게 '이런 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라고 뭔가 대답할 수 없는 직무질문을 던진다. 메이코는 가족을 버리고 눈이 멀어 달아난 분방한 어머니(야마다 이스즈)에게 '있지, 어머니, 나는 대체 누구 자식이야?' 라고 가족 자기동일성의 근간을 흔드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질문은 어느 것도 대답을 바라서는 안 된다. 사람을 끝없는 불능감으로 몰아 넣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자 남에게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스며들 정도의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감히 그것을 묻는 것은 사이비 '진실의 탐구' 에 지나지 않는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가운데 예외적으로, 마작 치는 곳의 주인(나카무라 노부오)과 중국집 주인(후지와라 가마타리) 만큼은 극중에서 한 번도 '질문' 을 발하지 않는다. 그들만이 타인의 말을 가로막지 않고, 의심하지 않으며, 저의를 묻지 않는다. 그저 상대가 필요로 할 만한 말(과 술)을 건넬 뿐이다. 그들은 그리하여, 그런 마음 씀씀이에 걸맞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나로서는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좋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묻지 않음' 이라는 배려가 때로는 필요한 경우가 정말 있다. '묻지 않는' 사람에게만 자신을 의탁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 나가떨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오즈 야스지로는 그런 인간의 피로함을 정말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0-08-08 17:41)
오즈 야스지로 단상 (10) <기호가 육화되어>
<이른 봄>(1956) 에 부친 것.오즈 야스지로는 근로의 경험이 없었다. 그러므로 샐러리맨 생활은 오즈에게 있어서 일종의 '판타지' 였다. 양복을 입고 만원전철에 끼여 매일 사무실에 다니는 샐러리맨이 무엇을 위해 그런 것을 하고 있는지, 오즈에게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오즈가 그린 사무실이 미묘하게 비현실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남자들은 일렬로 나란히 앉아 서류를 넘기고, 여자들은 일렬로 앉아 타자기를 친다(때때로 연필이나 펜으로 선을 긋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다. 때로는 중역에게 서류를 넘겨주는 일이 있을 뿐, 설명도 상담도 없다. 회의도 하지 않고, 영업도 하지 않는다. 실제로, 오즈에게는 그렇게 보였던 것이리라.
그렇지만 패전으로부터 10년이 지나, 일본인의 대부분이 회사를 다니는 시대가 왔다. 그들을 언제까지나 공허한 기호, 생기 없는 꼭두각시인 채로 둘 수는 없었다. 누군가가 샐러리맨을 축복하고, 그들을 '육화肉化' 해야만 한다. 오즈 야스지로는 <이른 봄>에서 (제페토 할아버지가 피노키오에게 했던 것처럼) '나인 투 파이브의 샐러리맨' 을 살아 있는 인간으로 수리해내었다(그것은 6년 뒤 <일본 무책임시대>에서 우에키 히토시가 살아 있는 샐러리맨을 만화적으로 캐릭터화를 시도한 것과 훌륭히 짝을 이룬다).
오즈는 스기야마 부부에게 특별히 신체성이 희박한 배우 두 사람을 배역하였다. 그들은 정말이지 수묵화로 그린 인물처럼 단정하고 투명하다. 스기야마(이케베 료)는 한여름에 근로를 마친 뒤에도 땀을 흘리지 않고 머리 모양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외박한 다음 날도 와이셔츠가 구겨지지 않고 수염도 없다. 쇼코(아와시마 지카게)는 곧바로 등을 곧게 펴고 자며, 잠옷을 나들이옷과 같이 빈틈 없이 입고 있다. 그들의 있을까 말까 한 신체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식사를 한다' 는 행위를 할 때 뿐이다. 그렇지만, 부부가 식탁을 둘러싸고 앉은 장면은 영화 가운데 없다. 스기야마가 '먹는다' 는 행위에 근접할 때는 깅교(기시 게이코)가 있을 때뿐이다. 그렇지만, 그 두 사람은 제법 먹을 것을 섭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도시락을 언제 먹으면 좋을까 알 수 없는 하이킹에서도, 벽을 향해 깨작깨작 만두를 찢는 점심시간에도, 너무 익힌 오코노미야키를 주걱으로 사정없이 메치는 불륜의 밤에도, 우동 파티의 '캐묻는' 자리에도, 송별회 때도 언제나 무언가가 그들의 목구멍을 막고 있다.
스기야마와 깅교와의 사이에 반복되는 '먹으려고 하지만 잘되지 않는' 것이 에로스적인 표상인 것은 명백하다. 그렇다고 하면, 스기야마가 아내를 향해 '어이, 밥' 이라고 부르는 것만이 있는, 언제까지고 시작하지 않는 식사는 장남이 죽은 뒤, 부부 사이에 성적인 관계가 오랫동안 끊어진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아마, 이 부부는 자신이 신체를 가진 것 그 자체에 신체적인 혐오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모순되는 이야기지만).
영화는 부부가 각자의 완고한 자기방어를 해제하고, 신체를 갖는 것, '육화' 를 결의하는 것으로 끝난다. 재결합을 맹세한 스기야마와 쇼코가 창가에 서서 기차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은 처음과 비교하면 조금은 음영이 짙어져 있고, 체온이 올라가고, 말의 울림이 깊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오즈 야스지로가 그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2020-08-08 17:43)
출처: http://blog.tatsuru.com/2020/08/'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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