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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불시착> 코멘트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0. 8. 5. 10:32

     

     

    아사히신문의 <경륜> 코너에 <사랑의 불시착> 에 대한 전화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기자가 인터뷰를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나는 귀찮아서 내버려 둔 고로 손을 대지 않았지만,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대체로 아래와 같다.

     

     

    한국 사람과 북한 사람 사이에 사랑과 연대가 싹튼다는 이야기는 그리 새로운 소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생활’ 에 이렇게까지 초점을 맞춘 것은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있어 왔던 영화와 다른 점은, 북한 사람들을 묘사하는 방식입니다. 부정적인 부분은 최대한 자제하고, 코믹스러운 장면이나 서서히 마음이 따뜻해져오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코믹함이라고 말은 하지만, 풍자적이라는 것은 아니고 북한 사람들을 ‘러블리’ 하게 그렸습니다. 이런 방식은 처음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현빈이 연기한 주인공 리정혁도 그의 부하들도, 북한 병사들은 처음에 권위주의적이고 교조주의적인 스테레오타입으로 그려집니다. 마을 여인들도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인, 혹은 비굴한 인물로서 등장하게 됩니다만, 16화 전편이 이어지면서 차츰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사랑스러운 개성을 가진 이들임을 시청자들은 깨닫게 됩니다.

     

    이는 연속 드라마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시간 정도의 영화에서는 처음에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이었던 인물이 서서히 그 상처입기 쉬우면서도 부드러운 본성을 보여준다는 군상극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거기까지 갈 시간이 없으니까요.

     

    특히 러블리한 인물들은 주인공 부하 4인조입니다. 처음에는 ‘북한 병사’ 스테레오타입 덩어리를 과장적으로 연기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 자세한 에피소드를 쌓아 나가면서 각 캐릭터들의 복잡한 속내와 개성이 드러나 보입니다. 처음에는 혐오감이나 위화감밖에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에 대해 ‘뭐야, 의외로 좋은 녀석이잖아’ 라는 친근감이 부상합니다.

     

     

    스토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두 쌍의 커플입니다만, 오히려 연애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사이드 스토리가 내게는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사랑의 불시착> 은 어떤 이야기야?’ 라고 물어왔을 때 주인공 두 사람의 연애 사정만 말하고 끝내지는 않습니다(실은 자세한 부분조차 잊어버렸습니다만). 그보다는, ‘남북 사람들이 각자의 접근방식으로 상호 이해를 넓혀 나간다’ 라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자체가 남북 분단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다는 한국 사람들의 절실한 심정을 상당히 정직하게 비춰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남북 사이에 간단히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가 있으므로, 처음부터 ‘북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라구요’ 하는 강요를 진짜로 그려냈다면 아마 많은 한국인 시청자는 반발하겠지요. 그러므로 아예 ‘북한 사람’ 들의 정형적 묘사부터 접근해, 시간을 들여 예서부터 시나브로 비어져나오는 수법을 취했어요. 그것이 성공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평소부터 북한을 관찰해 온 재일 코리언들에게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모양이어서, 이 화제가 나왔을 때 ‘<북한>을 너무 미화했다’ 라는 비판적인 코멘트도 나오고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는 남북통일이 완전히 판타지만은 아니게 된 한국 사회의 심정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가운데에서도 ‘통일이 된다면 말야’ 라는 대사가 몇 번이고 나옵니다. 영어에 That’ll be the day 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날이 온다면 천지개벽할 일이야’ ‘그런 건 영원히 일어나지 않아’ 라는 뉘앙스의 표현으로서, ‘남북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이라는 말은 거기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느꼈습니다. ‘언젠가 정말로 일어날지도 몰라 (일어나면 특별한 날이 된다)’ 라는 기대와 ‘그런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라는 부정의 뉘앙스 모두를 포함하고 있어요. 한국 미디어가 그런 양의적인 뉘앙스로 ‘남북통일’ 을 그리게 된 것은 역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두 사람의 연애 구도는 <겨울연가> 와 비슷합니다. 시청자의 성별과는 상관 없이, 시청자는 (주인공이자 재벌가 상속자인) 윤세리의 시선에서 리정혁을 본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윤세리는 감정이입하기 쉬운 인물입니다. 재벌가 아가씨이자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가정적 불행을 안고 있다는 조금 복잡한 설정이지만, 인간적으로는 ‘보통’ 사람입니다. 한편 리정혁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예의 바르고 신사적이지만, 머릿속은 어쩌면 헐렁할지도 모르거나, 혹은 말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있을 지도 몰라요. 잘 모르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걸로 좋습니다. 이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를 남자’ 를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해하기 쉬운 여자’ 의 시선으로 연애를 한다는 것이 가장 재밌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순정만화에서 흔히 보이는 캐릭터 설정입니다.

     

    소년만화의 등장인물들은 ‘말풍선’ 에 쓰여진 대사 이상의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풍선만 읽으면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순정만화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말풍선 안의 ‘실제로 말한 대사’ 와는 별개로, 주인공의 ‘말하지 않은 내면의 생각’ 도 쓰여져 있고, 더욱이, ‘본인조차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는 자각하지 못했던 기분’ 까지 쓰여져 있어요.

     

    리정혁은 소년만화의 등장인물이므로 ‘실제로 말한 말들’ 이상의 ‘내면’ 이라는 것이 없어요. 뭐, 실제로는 있겠지만, 본인은 그걸 알지 못해서 마지막까지 억압하는 데까지 이르므로 ‘없는 것’ 으로 취급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윤세리는 그렇지 않아요. 실제로 꺼낸 언동에 대해서 시치미를 뚝 떼고 있습니다만, 전부 가시화되어 있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어요. 시청자로서는 그녀를 초점적 인물로 두는 게 안심이 됩니다.

     

    <겨울연가> 는 최지우의 시선에서 배용준을 사랑한다는 것이 ‘즐거운 방식’ 이었습니다. <사랑의 불시착> 도 똑같습니다. 그렇지만, 남성 시청자에게는 ‘감정 풍부한 여성 시선으로 도대체가 무의식인 남성을 사랑하는 것’ 이라는 일이 잘되지 않는 것 같네요. 이건 어렸을 적부터 로맨스 소설이나 순정만화를 탐독하지 않으면 몸에 익힐 수 없는 기술일 지도 모릅니다. 숙지한다면 즐거울 수 있지만요.

     

    (2020-07-31 14:01)

     

    출처: http://blog.tatsuru.com/2020/07/31_14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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