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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나는 왜 성매매를 하지 않는가?
    인용 2026. 2. 4. 18:20

    아이들 손에 닿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이번 주제는 돈과 아이. 아이에게 돈 쓰는 방법을 가르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유적으로 라쿠고 작품 <히나쓰바> 이야기를 해보자.

     

    <히나쓰바>란 작품은 젊은 군주인 다이묘가 뜰에서 돈을 주웠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돈을 본 적이 없는 그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시종인 산다유에게 묻는다. 산다유는 그에게 부정한 것이므로 내버리옵소서라고 충고하지만, 젊은 군주는 자꾸만 무엇인지 꼬치꼬치 묻는다. 하는 수 없이 산다유는 그럼, 알아맞추어보옵소서라고 응수한다. 자세히 들어보니 동그랗고 사각형 구멍이 나 있고 겉에는 글자가 쓰여 있으며 뒤쪽에 물결이 새겨져 있다.

     

    젊은 군주는 , 이것은 히나 인형이 찬 칼 손잡이의 장식이 아닌가?”라고 대답한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나무 심는 기술자는 과연 고귀한 분은 달라도 뭐가 다르구나!’ 하고 감탄하는 한편, 자기 자식은 부모 얼굴만 보면 , 하며 손을 벌리는 한심한 놈이라고 탄식한다.

     

    라쿠고는 이후로도 이리저리 좌충우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우선 이 에피소드를 볼 때 우리는 돈이 부정한 것이며 될수록 만지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인류학적 상식이 에도 시대까지는 시정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내가 나고 자란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보통 가정에서는 돈은 부정하다는 금기의 감각이 아직 살아 있었다. 지금도 상품의 매매가 아닌 경우, 사람에게 직접 현금을 건넬 때에는 반드시 돈을 봉투에 넣는다. 어쩌다가 돈을 그냥 건넬 때는 이거, 봉투가 없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하며 예의를 차린다.

     

    화폐를 다룰 때에는 거기에서 스며 나오는 부정함에 더럽혀지지 않게 방역 태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인간 사회에 화폐를 도입한 이래의 룰인데, 무엇보다 내가 어릴 적까지는 어린애 앞에서는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 가정의 상식이었고, ‘아이가 남 앞에서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알밤을 쥐어 박힐 만한 금기 사항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친구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모두들 각기 다른 메뉴를 주문했기 때문에 값도 다 달랐다. 영수증에 적힌 액수를 지불할 때가 되자 누가 얼마를 내야 하는지를 가지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정색을 하고 돈 문제로 남들 앞에서 소란 떨 것 없어하며 식대를 전부 치르더니 재빨리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나는 그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 좀 멋지군…’ 하며 깊이 감동했다. 그 친구는 남 앞에서 지갑을 꺼내어 현금을 세면서 우물쭈물하는 것이 아주 품격이 낮은행동이라는 가정교육을 따끔하게 받았던 것이다(물론 가게를 나와서 우리가 내미는 식비를 받아갔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도 몇 명이 먹고 마시고 난 다음에 계산을 할 때에는 , 여기는 내가 낼 테니까하며 돈을 턱 내고 가게를 나가버리는 어른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우와, 과연 어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를 어른이라고 여긴 것은 그가 모두의 식비를 내줄 정도로 배포가 컸다는 것뿐만 아니라 돈을 꺼내고 집어넣는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격식 있는 태도에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돈을 쓸 때 직접 돈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화폐를 다루는 어른의 조건이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돈 이야기는 섹스 이야기와 비슷하다. 둘 다 어른이어야만 접근할 수 있다. 둘 다 격식 있는 태도를 몸에 익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특히 다루는 장면을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기술이 없다. 그래서 돈과 섹스는 아이들 손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게 근대 이전까지 상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더 이상 상식이 아니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성숙에 별로 무게를 두지 않게 된 시기와 일치한다. 그리고 그때 섹스와 돈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격리하던 인류학적 장벽도 소실되고 말았다.

     

    부정이란 병에 걸린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릴 때 돈이나 섹스를 접해버린 아이들은 필시 성숙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아이들을 성숙으로 이끄는 동력을 압살하여 에너지의 고갈’, 더러워짐(기의 쇠진)’으로 향하게 한다. 왜냐하면 성숙이란 돈이나 섹스와 접촉해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을 달성 목표로 삼고 다양한 통과의례*를 하나하나 거쳐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은 initiation; 사이비 종교 옴진리교에서 벌어진 잔학 행각 폭로 이래로 일본 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된 단어다. 우리나라로 치면 신고식정도 되겠다. – 인용주)

     

     

    어린아이인데도 돈이나 섹스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아이들은 성숙의 동기[motivation] 자체를 훼손당한다. 그래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 행위,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성 행위는 둘 다 엄격한 인류학적 금기로 정해져 있다. 섹스에 대한 아이들의 접근 금지는 아직(부분적으로는 계속 해제되고 있지만) 유효하다. 하지만 돈에 대한 금기는 거의 무효화되다시피 되었다.

     

    자식이 돈을 만지거나 돈 이야기를 할 때 정색을 하고 야단을 치는 부모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달리 말해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하면, 돈에 관한 한 성숙 따위는 필요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성숙하지 않아도 돈을 사용할 수 있다. ‘돈의 사용법을 아는 것이 더 이상 성인의 조건에 포함되지 않는다.

     

    옛날에는 돈을 다루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 오랜 가르침의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오랜 가르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엿이 초등학생에게 금융상품의 시스템을 가르치고 중학생에게 세뱃돈으로 주식을 매매하도록 권하는 부모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이가 돈을 제대로 다룰 만큼 성숙하다는 판단도, 아이들이 만져도 될 만큼 돈이 위생적이 되었다는 판단도, 좀처럼 석연치 않다. 어린애는 예나 지금이나 어린애일 뿐이고[“Kids are kids” – 인용], 돈을 가지고 있다는 (어린애의 성숙을 훼손한다는 의미에서) 부정함도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인용주: 금융지능이니 뭐니 하는 놈들의 척추를 개인적으로는 접어버리고 싶습니다.)

     

     

    다만 변한 것은 사람들이 유아적이면 유아적일수록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머릿수일 뿐이다. 어린애가 성숙한 것보다 도리어 미숙한 채 남는 것이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고 믿는 인간의 수가 한계를 넘어버렸다는 것이다.

     

    어린애들이 더러워짐으로써사회에 이익을 가져올 거라는 건 인류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러워진아이들, 성숙을 위한 추동력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이윽고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될 것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 사회는 무너져갈 것이다.*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이 예언은 실현된 듯 보입니다. 저는 말해야겠습니다. – 인용주)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의 죄가 아니다.

     

    그들이 성숙하도록 하기보다 눈앞의 이익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죄일 따름이다.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


    당신의 젊음을 말살한 그 최초의 적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유아기와 유년기에 부모가 당신에게 쏟은 사랑이다. 특히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이다. 어머니와 야생동물 어미의 사랑은 다르다. 후자는 새끼를 자립시키기 위한 순수한 사랑인 데 반해 전자는 자식을 자신의 생애와 공생하는 상대로 간주한 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조와 살인만큼이나 큰 차이다.

     

    전자는 마치 보험에 들고 투자를 하는 것처럼 어디까지나 자기 본위로 하며, 철저하게 계산적인 의미의 파트너를 만들려는 불순하기 짝이 없는 애정도 아닌 애정으로 당신 젊음의 싹을 애당초 송두리째 뽑아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당신 자신도 그렇지만, 어머니 또한 그런 자각이 전혀 없을뿐더러 자신의 몰염치한 본성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나에서 열까지 자식을 돌보고 보살피는 것이 부모 애정의 궁극적인 모습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며, 그것이 생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까지 느낀다.

     

     

    곤란한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엄마와 의논해라. 다른 사람들은 너를 버려도 엄마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진정한 부모 자식 관계란 그런 거란다.”

     

    그렇게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는 어머니 역시, 그 젊음을 오래전에 잃어버린 상태이다. 자기 신뢰 덕에 과거에는 다소나마 남아 있던 젊음마저 자식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완전히 씨가 말라 버린 것이다. 남편이나 아들과 다르게 어머니만 기운차게 보이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젊음에서 비롯된 활기가 아니라 죽음을 향한 유혹과 비슷하며 노골적인 본능이 발하는 번들거림, 한마디로 괴물녀의 끔찍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양쪽을 혼동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대부분의 남자가 결혼할 자격도 없으면서 그저 이 세상의 관습에 따라 결혼하고, 남편으로서 자격이 없으면서 아내를 얻고, 아비의 자격이 없으면서 아이를 낳고 만다. 그러니 가정 안에서 소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편이 되고부터 진정한 남편이 되어 가고, 부모가 되고 나서야 진정한 부모가 되어 간다는 실천주의를 부정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성숙한 남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초를 닦아 온, 자립한 젊음을 체득한 남자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일을 하고 수입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남편이라고, 아버지라고 할 수 없다. 가정을 견실하게 꾸려 나가며 자식에게는 자립의 길을 열어 주고, 구체적인 방안을 그때그때 가족들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남편이며 아버지라 할 수 있다. 또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거기에서 벗어날 경우에는 단호한 태도로 질책하고, 때로는 주저 없이 손찌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스스로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한국에서 한때 창가의 토토 읽기 붐이 일었는데, 저는 여기에는 틀림없이 난주샘의 유려한 번역이 한몫 했다고 믿습니다. 저는 마루야마 겐지, 스물 다섯 무렵까지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어요. 남자인 저도 읽기가 이렇게 버거운데, 여성인 김난주 선생은 이 대목을 번역하실 때 어떠셨겠습니까?)


    note

     

    이것은 도쿄라는 지루한 거리에서 나고 자라 평범하게 망가지고 만 여자(젤다 피츠제럴드처럼?)

    사랑 자본주의를 둘러싼 모험과 일상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가 "모든 일은 매춘이다."라고 말한 적 있죠. 동감합니다.

    옳은 말이에요. 그걸 알고 하는 사람, 모르고 하는 사람,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사람기타 등등이 있지만

    다시 말하겠습니다. "모든 일은 매춘이다."

    그리고 모든 일은 사랑이기도 합니다. , 사랑이요.

    사랑은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안락하고 따뜻한 것이 아니에요. 그건 분명합니다.

    사랑은 힘겹고 매섭고 두려운 잔혹한 괴물입니다자본주의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헤엄을 못 치는 아이가 수영장 앞에서 겁을 집어먹듯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면 꼴사납겠죠.

    두려워하지 않고 훌쩍 다이빙하면 말이죠, 참 신기하게도 헤엄이 쳐집니다.

    《물장구 치는 금붕어》의 가오루처럼 자세는 엉망진창일지라도.

    오늘날 도쿄에 사는 모두는 평범하게 행복을 느끼며 사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이 두렵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타고난 도쿄걸이거든요.

     

     

    그리고 이 이야기의 소재를 제공해준 여동생 게이코(본인은 모르겠지만). 게이코는 현역으로 활발하게

    일하는 회사원으로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엔 관심이 없고, 저 역시 동생의 생활상이나 취향 등에 전혀 흥미가

    없지만 우리는 사이가 좋습니다. 게이코는 노느라 얼마나 지쳤든 간에 매니큐어만큼은 빠짐없이 챙깁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손톱은 언제 봐도 참 아름답더라고요.

     

    1989 9

    오카자키 교코


    그러나 나는 그와 반대로 몸의 또 다른 절반이 이미 풍요로운 사회의 도덕성 (각자 자기 생각대로 살면서 자아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획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우치다 씨는 필시 다른 사람의 배 이상, 그런 경향이 강했습니다. 한마디로 같은 베이비붐 세대의 제멋대로인 인간과 비교해도 훨씬 앞서 나가는 슈퍼 유아독존 인간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너희들 같은 멍청이하고는 함께 못 해먹겠다는 종류의 젊은이였겠지요. 아니, 분명 그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가 유효성을 상실한 다음에는 구조주의에 고개를 들이밀고 자신의 유아독존을 뒷받침해줄 만한 해방의 사상을 추구했을 것입니다.

     

    왜 그런 사정을 아는가 하면, 바로 내가 그런 유아독존 인간이며 똑 같은 경로를 통해 구조주의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우치다 씨는 독신이었던 학창시절에 구조주의의 저작을 탐독했고, 추상적으로는 구조주의가 이야기하려는 바를 대체로 이해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사회와 조우할 때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던것입니다. 가족과 갈등을 겪으면서 비로소 아아, 레비나스, 레비스트로스, 라캉, 푸코가 말한 것은 이런 것이구나하고 마치 눈이 확 뜨이는 것처럼 깨달았을것입니다. 그리고 깨달았을뿐만 아니라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브리콜라주[bricolage]같은 도구로 쓰기 위해 어디를 어떻게 자기 나름대로 개량하면 좋은지 계속 암중모색했을 것입니다. …

     

    이 또한 어떻게 사정을 잘 아는가 하면, 나 역시 똑 같은 경로를 통해 글을 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나는 레비나스가 아니라 발자크였습니다만).

    이렇게 우치다 씨의 사상은 가족 문제뿐만 아니라 노동 문제나 인구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범용성이 높은 사상입니다. 아마도 이론과 실천을 가로지르는 가족이라는 싸움터를 통해 얻은 사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신적 존재가 있다면 신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욥에게 시련을 준 것처럼, 우치다 씨에게 가족이라는 시련을 주고 그 경험을 통해 사유한 사상을 일본 사회를 위해 보편화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가시마 시게루)

     

     

    좀 이해가 안 가는 말이지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일단 막다른 끝까지 가보고 나서 돌아온사람이 처음부터 거기에 있던 사람보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볼 때 확실합니다. 젊을 때 노세노세 젊어 노세하며 무절제하게 향락을 즐기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땀을 뚝뚝 흘리며 일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하고 말하면, 뭔가 진지함이 더 돋보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역설적인 이야기가 됩니다만, 일본에서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자를 만들어내기 위한사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숙한 어른을 만들어내는 데 주도권을 휘둘러온 앎이었다고 봅니다.

    (우치다 타츠루)

     

     

    기억하고 계신지요? 그날 학장실 책상 위에 일본도가 몇 자루 놓여 있었지요. “이게 다 뭔가요?” 하고 여쭈었더니 우치다 선생님은 칼을 한 자루 뽑아 드셨어요. “연습용이라 날은 서 있지 않아요하면서 무서운 표정의, 평소에 뵙지 못하던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무사 집안 출신이신 우치다 선생님의 기품이 은연중에 드러난 것이었겠지요? 제 가슴 쪽으로 칼을 스윽 들이미신 그 순간 저는 속으로 벌벌 떨면서 새삼스레, ‘, 이 분은 역시 위험인물이야 하는 것을 느꼈더랬습니다(웃음).

    (이시카와 야스히로)


    오길비: 저는 우치다 선생님 저서를 처음 접하던 무렵부터 일찌감치 동류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이 선생님은 따라가도 된다(この先生なら、就いてもよい)”는 것이었지요.

     

    , 저도 정말 골칫덩이인 한국의 2030MZ남자입니다만, 그래도 정말 견실하게, 결혼을 결행하는 저희 나이 또래 남자들도 분명 일정 수 존재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조차도 깜짝 놀랐어요. 실제로 제가 여럿 알고 지냅니다. 정말 귀한 부류니까, 축의금은 듬뿍 내려고 합니다.

     

    (추신: 일본 여행 기념으로 오사카판 아사히신문을 한 부 가져왔는데, 신문을 접으면 떡하니 보이는 1면 톱기사가 다름 아닌 성구매자도 법적 처벌키로 검토더군요. 일본을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이건 좀했습니다. 간사이 공항은, 오사카 인권 기구의 홍보대도 눈에 띄는 곳에 있고 해서,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간사이의, 일본의 얼굴이니까요.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집안에 빚쟁이가 찾아오곤 해서, 돈이 뭘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곤 합니다. 남들은 돈을 어떻게 버나 그게 궁금한가 본데, 저는 돈 자체에 관심이 있습니다.

    1 111시쯤 되어, 서울 을지로의 뒷골목을 돌아다녀 보면 재밌습니다. 선남선녀가 쌍쌍이 뭔가 죄라도 지은 듯 마치 바퀴벌레처럼 꼭 붙어 조용히 다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