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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물) 믿을 어른 하나 없다❕
    인용 2026. 2. 6. 11:17

    여기서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꼭 지식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삶의 태도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삶에 대한 의지이며 의욕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생명력입니다.

     

    대학입시에 그런 요소를 검증하는 항목이 전혀 없기 때문에 종종 대학에 생명력이 근본적으로 결여된 사람들도 들어옵니다. 무기력, 무관심, 무목적, 도전정신이 전무한 자들 말입니다. 여러분 중에도[도쿄대 수강생들 인용]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전두엽에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고등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 거의 무의미합니다. 또 하나 전두엽에 결함이 있는 인간에게 특징적인 것은 사회성의 결여와 자기 억제력의 결여입니다. 요컨대 인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타인을 존중하는 인간 관계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인간입니다. 대체로 자기 중심적이고 타인이 끼어들면 벌컥 화를 냅니다. 타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주위에도 그런 사람이 많을 겁니다. 지금 도쿄대에도 전두엽에 결함이 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도쿄대 졸업생 중에 관계[고위공무원을 말함. - 인용]나 비즈니스계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불상사를 일으키는 엘리트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들이 바로 전두엽에 결함이 있는 인간의 전형입니다. 사실은 도쿄대도 입시 방법을 조금 바꾸어서 그런 전두엽에 결함이 있는 사람은 애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면 좋은데, 변함없이 학력 중심주의라서, 앞으로도 도쿄대는 전두엽에 결함이 있는 엘리트를 사회에 계속 내보내는 역할을 하게 되겠지요.

     

     

    사회에 나가 보면 주변에 도쿄대 출신이 우글우글합니다. 이른바 유명 기업에는 정말이지 사방에 굴러다닌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그 태반은 별로 쓸모가 없는 자들이지요. 일반적으로는 이른바 물좋은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마련이므로 도쿄대 출신은 역시 대단해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디 쓸 데가 마땅찮은 무능한 도쿄대 출신이 훨씬 더 많습니다.

     

    나는 업무상 여러 조직을 겪어 봐서 잘 아는데, 어디에서나 골칫거리 도쿄대 출신이 잔뜩 있습니다. 실제 인원수를 보면 조직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하는 도쿄대 출신보다 골칫거리 도쿄대 출신이 더 많아요. 후자에 속한 사람은 변변한 업무를 의뢰받지 못합니다. 할 일이 없으면 퇴보합니다. 도쿄대 출신은 나는 도쿄대 출신이라는 프라이드가 강하기 때문에 더욱 빨리 퇴보합니다. 풀이 죽으면 마음이 삐뚤어지고 배배 꼬입니다. 배배 꼬이면 남들한테 배척을 받아 인간 관계가 나빠지고 업무 영역은 더욱 줄어듭니다. 그러면 더 마음이 삐뚤어집니다. 그렇게 마음이 삐뚤어진 도쿄대 출신이 곳곳에 있다는 말입니다. (뇌를 단련하다)

     

     

    다양한 놀이, 새로운 도전, 친구나 지인들과의 깊은 교류. 이런 것들을 통해 키웠어야 마땅한 다양한 능력도 없이, 실제로는 별 관심도 없는 지식을 머리에 쑤셔 박느라 젊음을 말살당한 채 흔히 있는 쓸모없는 고학력자로 전락해 사회라는 무대에서 밀려난 자가 적지 않다.

     

    그들의 특징은 실제 사회에 나가서도 일일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르쳐 주는 자가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한 배우려 들지 않는다. 자신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기본적인 생각조차 없는 탓에, 친절하고 자상한 지도자가 나타나 그 방법을 가르쳐 주면 확실하게 기억하고 빈틈없이 일을 처리할 뿐인 타율적이며 로봇 같은 인간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배운다거나 상대가 다소 귀찮아 하더라도 따라다니면서 묻는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명령할 때까지 한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조금도 이상하다 생각지 않는다. 이상한 것은 늘 타자이지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요행히 번영의 시대였던 지금까지는 그럴 수 있었지만, 앞으로 올 쇠퇴의 시대에는 학력이 마지막 카드가 될 확률은 지극히 작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유치하고 무모한 기준으로 신입 사원을 채용하는 것은 그 회사와 기관에 젊음이 결여된 증거이고, 그런 일터는 죽은 곳이나 다름없다. 그런 회사는 언젠가 도산의 위기를 맞을 것이고, 국가 기관이라면 세금이나 갉아먹는 무용한 부서로 간주되어 통합, 폐지라는 불운한 신세에 처할 것이다.

     

    학력에 매달려 비교적 안정적인 생애를 보낼 수 있었던 행복한 시대가 과거에는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벌써 오래전에 끝나고 말았다. 앞으로의 시대에 문제시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실무 능력이고 순발력 있는 발상이며, 집요하게 요구될 덕목은 격무를 견딜 수 있는 굳건한 체력과 비정상적일 정도의 복종과 충성심일 것이다. (나는 길들지 않는다)

     

     

    불평 무사 계급의 후예나 사회주의자 등을 빼면 당시 일본에서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 교육은 받았지만 일정한 직업 없이 호사가(딜레탕트)로서 따분한 나날을 보내는 그들은 서양을 따라잡고 추월하라’, ‘닥치고 나가자’, 요즘 말로 하면 무엇보다 성장’, ‘성장을 외치던 당시의 가치관에서 보면 쓸모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여튼 그들에게서는 사회적 생산성이나 유용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소세키는 왜 그런 사람들만 주인공으로 삼았을까요. 게다가 당시에는 그들 같은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고도 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역시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주장한 소세키의 말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당시의 국가에 대한 비판 정신, 즉 나는 너희들의 가치관에 부합된 것은 쓰지 않는다, 너희들을 기쁘게 할 만큼 쩨쩨하지 않다는 반골 정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소세키가 그린 근대의 병인, 즉 소세키의 작품 속 주인공들의 마음을 괴롭혔던 고민거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앞에서 말한 행복의 합격 기준과 관련 있습니다. … 먼저 입니다. 당시의 작가들 중에서 소세키만큼 돈과 관련된 번거로움을 집요하게 그린 작가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인연을 끊은 양부가 따라다니며 예전의 은혜를 구실로 돈을 뜯어내는 한눈팔기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자전적 소설이니 소세키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있는지 모릅니다.

     

     

    생각해 보면 인류의 미래, 세계의 행방 같은 것은 애초에 그들의 개인적인 행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런 걱정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인생을 만족하며 살아갔어도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정신이 파탄 나기 직전까지 철저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유별난 정열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그 이유를 생각할 때 자꾸 제 머리를 스치는 것은 거듭나기(twice born)’라는 말입니다. ‘거듭나기는 제임스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중요한 용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사람은 생사의 갈림길을 헤맬 정도로 마음의 병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빠져나간 지경에 도달하고 세계의 새로운 가치라든가 그때까지와는 다른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을 포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건전한 마음으로 보통의 일생을 끝내는 한 번 태어나는 형(once born)’보다는 병든 영혼으로 두 번째 삶을 다시 사는 거듭나기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도 합니다. “한 번 태어난 사람의 종교는 일종의 직선적인 것이고 단층 건물이다. 이에 비해 거듭난 사람의 종교는 이층 건물의 신비라고 말이지요. 이러한 사고는 지금까지의 행복과 고난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재검토하게 하는 것으로서 주목해야 합니다. (강상중)


     

    저에게 첫 지적 방향타를 잡아 주신 스승님은, 당신의 출신교를 말해야 할 때 절대 서울대라 하지 않으시고, 그렇다고 관악캠퍼스도 아닌 항상 “GW”라고 칭하셨습니다. 참된 스승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고학부 출신이지만 (혹은 우치다 선생님처럼 도쿄대 출신이시지만) 결코 최고학부 출신이라는 점을 내비치지 아니한다. 오태규 전 오사카총영사님도 꼭 그러시더라고요. 저는 정말 스승 복은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 아 참참, 의사라고 진짜 화타들만 있는 건 아니더군요. 자세한 얘기는 여백이 부족해서 이만… (오길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