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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무도는 〇스에 도움이 됩니까?
    인용 2026. 2. 8. 21:58
    Q. 무도를 꾸준히 계속하면 육체관계인 섹스에서도 달인이 될 수 있을까요? 여자친구가 꼭 알고 싶어 해서 여쭙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곧장 시작하고자 합니다. (네가 알고 싶은 거잖아 바보녀석. – 인용자)

     

    무도에서는 성화된 신체따위에는 애당초 볼일이 없습니다. 섹스는 환상. 신체와 관계 없습니다.”

     

    예전에 속아서 페미니스트 모임에 강사로 불려간 적이 있습니다. 신체론을 주제로 강연 의뢰를 받았기 때문에 저는 무도가로서 신체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말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참석자가 손을 들고 거칠게 말하더군요. “당신의 신체론은 전혀 성립하지 않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라고 생각하며 상대의 얼굴을 응시하자 그분은 당신이 말하는 신체론에는 성이 없어요라고 하는 겁니다. 그분이 했던 말을 옮겨 보지요. “우리 여성은 이라고 하면 우선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싫어도 의식하게 됩니다. 여자라는 것을 빼고는 몸을 느낄 수도, 말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당신에겐 그런 의식이 없잖아요. 남성으로서의 자기 몸에 안주하고, 그게 성화된 몸이라는 걸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어요. 당신읜 전형적인 남권주의자입니다.” 그분은 이겼다는 듯이 우쭐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조금 놀라고 기가 막혀서 일단 몸을 느낄 때 자신의 성부터 느끼는 사람은 무도가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무도적으로 신체를 움직일 때 나는 미국인이라든가 나는 사장이라든가 나는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먼저 의식해야만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에게 무도는 무리입니다. 제 이야기에 딴지를 거신 분은 아마도 무도적 움직임을 옷차림이나 화장이나 평상시 몸놀림이나 사방을 주의하여 둘러보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생각하신 듯했습니다.

     

    무도가인 저는 성연령인종국적신앙이데올로기 등과는 전혀 관계없는, 장기 레벨분자생물학적 레벨유전자 레벨에서의 제어에 대해 이것저것 궁리하고 있으므로 성화된 신체따위에는 애당초 볼일이 없습니다.

     

    수행의 결과로 삶의 지혜와 힘이 강해지면, 사회성도 높아질 것이고 시민적으로도 성숙할 것이며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수행의 부산물이지 그런 목적을 위해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물며 신체 활용 면에서 남성은 어떻게 되어야 한다든지 성은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든지, 그런 건 아무도 화제로 삼지 않습니다.

     

    그래서 몸 하면 먼저 자신이 여자인 것을 싫어도 의식하게 되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몸 하면 먼저 자신이 미국인인 것을 싫어도 의식하게 되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무도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이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군요. 자연과학의 분야에서 남자(혹은 미국인, 혹은 사장, 혹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연구라든가 남자(혹은……이하 동문)는 할 수 없는 연구같 같은 게 있으면 곤란하니까요.

     

    질문에 대답을 드리자면, 섹스의 90퍼센트는 문화입니다. 문화라고 하면 좀 애매한가요. 그럼 환상이라고 단언해 버립시다. 섹스는 90퍼센트가 환상입니다. 인종이라든가 직업이라든가 종교와 같은 뇌의 현상입니다.

     

    포르노그래피라는 게 실제로 있지 않습니까. 포르노그래피는 신체적인 자극은 제로인데도 그걸 보면서 흥분하는 거잖아요. 그저 이미지와 언어일 뿐이잖아요. 말로 괴롭힌다든지 이 교복을 입어 달라든지 하이힐을 신고 밟아 달라든지 촛농을 떨어뜨려 달라든지, 의미를 모르는 것투성이죠. 신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전부 뇌의 환상이거든요. 그러니까 섹스가 즐겁디즐거워 어쩔 수 없는 사람은 뇌에 성적 환상이 꽉 차 있는 것이지 기본적으로 신체와는 무관합니다. 신체 같은 건 없어도 성적 환상은 무한으로 끌어낼 수 있고, 무한한 쾌락을 끌어낼 수도 있지요.

     

    실제로 라마찬드란 박사의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인데요. 성기가 없어도 성적 쾌감은 잃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고나 병으로 성기를 잃어 생체기능으로서의 성기능은 없어졌다 해도, 성적 욕망과 성적 쾌감은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신체기관이 결손되어도 원래 연결되지 않는 신체 부위 사이에 다리가 형성되는데, 하체를 관장하는 뇌의 부위가 무려 성기의 감각까지 커버해 준답니다. 그래서 발도 쾌감을 느낄 수 있고, 더군다나 엄청 좋다는군요.

     

    육체관계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섹스는 95퍼센트가량이 환상관계이므로 신체의 생물적 기능을 제어하는 무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목표는 천하무적)


    장 르누아르의 <위대한 환상(La Grande Illusion)>(1937)은 제1차 세계대전 때의 프랑스인 포로를 다룬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는 독일인 귀족(폰 슈트로하임)이 자국의 무식하고 난폭한 독일인 군인보다 도리어 자신과 계급이 같은 프랑스인 귀족(피에르 프레네)의 학식과 취미에 깊은 친근감을 나타내는 도착이 스토리의 날줄이 된다.

     

    아마도 이런 일과 비슷한 국경을 넘는 동종의식이 유럽에는 전통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일 것이다. 어쩌면 EU와 같은 정치적 구상이 가능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EU의 원형을 이루는 아이디어는 이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1930년에 저술한 대중의 봉기에서 그려냈는데, ‘나와 비슷하게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탁월한 지성은 국경을 넘어 연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프랑스어에는 ‘Republique des Letteres(학지의 공화국)’란 말이 있다. 학문을 갖춘 인간들은 국경을 넘어 라틴어를 통해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다는 중세 이래의 지적 네트워크를 가리키는 말이다.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계급의 차이/지성의 차이/취향의 차이가 때때로 국경선보다 훨씬 강고하며 배타적이었다.

     

    만에 하나 아시아 공동체도 성립할 수 있다면, 아마도 EU의 모델을 답습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경우는 아무래도 국경을 넘어 부자끼리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자국의 가난뱅이에 대한 동향 의식보다 우선하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안타깝게도 아시아의 나라들은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Hommes des Letters, 지식인이 국정을 이끄는 국민국가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래할 아시아 공동체는 Republique des Bourese, 지갑 공화국같은 것이 될 것이다. , 전쟁보다는 낫지만 말이다.

     

     

    이기자! 이기자! 목이 터지게 외치는 것은 좋지만 결국 승리하는 측과 패배하는 측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되는 것이다.

     

    백전백승이란 병적 망상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백전백승을 거둔 군대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귀납법적인 추론이 가능한 지성인이라면, 전진훈의 내용이 기도일 수는 있어도 전투를 위한 매뉴얼로서는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전진훈의 문장에서 일본군이 일찍이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군대일 수 있다는 개연성을 증명하는 말은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다.

     

    그 결과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생생하게 그려낸 그대로다. 백전백승을 거두어야 할 일본군은 실제로 국지전에서도 형편없이 패했다.

     

    전쟁이기 때문에 패배할 수도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별히 수치스러운 일도, 그렇다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일도 아니다. <대탈주>의 등장인물들처럼 권토중래를 기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 포로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포로로 잡힌 순간 인격이 표변해버렸다. … 잊어버린 분이 많은 것 같으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는데, ‘강자계속 승리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 몇 번이고 패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자를 말한다. 한편, ‘약자한 번의 실패도 용납되지 않는 막다른 궁지에 몰린 인간을 가리킨다.

     

    인간의 강약은 궁극적으로 승률이 아니라 지는 여유’(이런 말은 존재하지 않지만)에 의해 정해진다. 마작을 해보면 그 점을 잘 알 수 있다.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


    오길비 잡소리

     

    한국의 무술인들에게도 일본의 아이키도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실전성에 의문을 가지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관절을 비틀고 꺾어서…”라고 했더니, “그럴 거면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하는 게?” 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아이키도는 거, 왠지 장풍이라도 쏠 것 같은 유현(幽玄)함이 느껴져서…”가 일반적인 시각인가 봅니다.

     

    <목표는 천하무적>(원제: 무도적 사고), 많이 많이들 사 주세요. 제가 일전에 유유출판사 조 대표님하고 번역가 박 선생님과 교류하다 보니,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 실은 잘 안 팔려서 나름대로 고민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유유에서 펴낸 마치바의 독서론을 으뜸으로 삼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매상고로 따지면 시원찮다는 거예요. 도서관~같은 메가히트작도 좋지만, 한국의 출판계를 위해서라도 많이들 사주셔야 할거로 생각됩니다. 제 블로그는 안 보셔도 됩니다.) 알라딘 고고!

     

    매일 찌무룩한 뉴스들뿐이지만, 세상은 분명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어요. <창가의 토토>의 구로야나기 여사님도 원래는 이 작품의 영화화라든지를 일절 거부하신 거로 알고 있었는데, 근년에는 쾌히 허락하시고 내래이션에도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우리 선친이 하지 못했던 것을 우리는 하려고 했다. 그리고 자네들도 해주기를 바라네.” 이것이 지난 전쟁 경험 세대의 간곡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살 이유가 생겨버린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