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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고민 중독인용 2026. 1. 22. 21:54
원자의 존재에 대한 이러한 낌새와 단서가 데모크리토스에 와서 더욱 구체화됐다. 그는 북부 그리스, 이오니아의 식민지인 아브데라의 출신이다. 당시 아브데라라는 도시는 그리스 인들의 웃음거리였다. 만약 기원전 430년에 당신이 아브데라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면, 틀림없이 상대방은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아브데라는 오늘날로 치면 뉴욕의 슬럼가인 브루클린과 같은 곳이었다. 데모크리토스에게 있어 삶은 세상을 즐기고 온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이해는 곧 즐거움이었다. 그는 “축제 없는 인생은 여관이 없는 긴 여정과 같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데모크리토스가 아브데라 출신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수많은 세계들이 우주에 두루 퍼져 있는 물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태어나 진화를 거쳐 결국 쇠퇴하게 된다고 믿었다. 운석 충돌 때문에 생긴 구덩이의 존재를 아무도 모르던 당시에, 데모크리토스는 이렇게 태어난 세계들이 이따금씩 서로 충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주의 어둠 속을 홀로 헤매는 세계들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개의 태양이나 달을 동반한 세계들도 있다고 믿었다. 그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생물이 원시 습지의 개흙에서 발생했다고까지 주장했다. 우리가 무엇을 지각하는 것도 순전히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고 가르쳤다. 예를 들어 내 손에 펜이 쥐어 있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은 손에 주어지는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자극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생각과 감각은 물질이 아주 세밀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모아졌을 때 나타나는 물질의 속성이지, 신이 물질에 불어넣은 영혼의 속성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어떻게 보자면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는 여자, 아이들, 성(性)과 담을 쌓고 살았다. 자신이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을 그러한 것들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우정을 소중하게 여겼고, 즐거움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으며, 열정의 정체와 기원에 관한 철학적 고찰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런가 하면 소크라테스를 만나러 아테네까지 갔지만 부끄러운 나머지 자기 소개도 하지 못했다. 그는 히포크라테스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물질계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경외했다. 데모크리토스는 독재 아래의 부유한 삶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가난한 삶을 택하겠노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지배하던 종교들을 모두 악이라고 판단했으며, 불멸의 영혼이나 불멸의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원자와 빈 공간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데모크리토스가 자신의 사상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하기야 아브데라 출신이었던 점이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 와서 새로운 견해에 대한 관용의 정신이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더니 종국에는 모두 사라져서, 전통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처벌을 받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그리스의 100드라크마 지폐에 그의 초상이 인쇄되는 등 높게 평가되고 있지만, 데모크리토스가 살아 있을 당시에는 그의 통찰은 억압당했고 그 후 역사에서도 그의 영향력은 의도적으로 과소평가됐다. 신비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칼 세이건, 홍승수 옮김, 『코스모스 보급판』, 356~360쪽,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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