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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스 레터) 한신은 평민이었고, 가난했고 ...
    인용 2025. 12. 21. 15:21
    한신은 평민이었고, 가난했고 더욱이 방종했다. 벼슬을 할 수도 없었고, 장사를 해서 먹고 살아갈 능력도 없었다. 항상 남을 따라다니며 얻어먹었기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광문(廣文)이라는 자는 거지였다. 일찍이 종루(鍾樓)의 저잣거리에서 빌어먹고 다녔는데, 거지 아이들이 광문을 추대하여 패거리의 우두머리로 삼고, 소굴을 지키게 한 적이 있었다.

     

    하루는 날이 몹시 차고 눈이 내리는데, 거지 아이들이 다함께 빌러 나가고 그중 한 아이만이 병이 들어 따라가지 못했다. 조금 뒤 그 아이가 추위에 떨며 숨을 몰아 쉬는데 그 소리가 몹시 처량하였다. 광문이 너무도 불쌍하여 몸소 나가 밥을 빌어왔는데, 병든 아이를 먹이려고 보니 아이는 벌써 죽어 있었다. 거지 아이들이 돌아와서는 광문이 그 애를 죽였다고 의심하여 다함께 광문을 두들겨 쫓아내니, 광문이 밤에 엉금엉금 기어서 마을의 어느 집으로 들어가다가 그집 개를 놀라게 하였다. 집주인이 광문을 잡아다 꽁꽁 묶으니, 광문이 외치며 하는 말이,

     

    나는 날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 온 것이지 감히 도적질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영감님이 믿지 못하신다면 내일 아침에 저자에 나가 알아 보십시오.”

     

    하는데, 말이 몹시 순박하므로 집주인이 내심 광문이 도적이 아닌 것을 알고서 새벽녘에 풀어주었다.

     

    (중략)

     

    광문은 외모가 극히 추악하고, 말솜씨도 남을 감동시킬 만하지 못하며, 입은 커서 두 주먹이 들락날락하고, 만석희를 잘하고 철괴무를 잘 추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서로 욕을 할 때면, “네 형은 달문(達文)이다.”라고 놀려댔는데, 달문은 광문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광문이 길을 가다가 싸우는 사람을 만나면 그도 역시 옷을 홀랑 벗고 싸움판에 뛰어들어, 뭐라고 시부렁 대면서 땅에 금을 그어 마치 누가 바르고 누가 틀리다는 것을 판정이라도 하는 듯한 시늉을 하니, 온 저자 사람들이 다 웃어대고 싸우던 자도 웃음이 터져, 어느새 싸움을 풀고 가버렸다.

     

    광문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머리를 땋고 다녔다. 남들이 장가 가라고 권하면, 하는 말이,

     

    잘생긴 얼굴은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다. 그러나 사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비록 여자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나는 본래 못생겨서 아예 용모를 꾸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였다.

     

     

    (박연암 광문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