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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걸어온 14년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10. 27. 08:24
박동섭 선생은 내 책을 한국어로 번역・통역해주고 있으며, 소개와 해설을 해주고 있거니와, 내가 둔 단 한명의 ‘학술적인 (자칭) 제자’이다. 박선생한테 한국의 모 인문학잡지가 “우치다 선생과 걸어온 14년”이라는 논제로 원고청탁을 했었고, 거기에 기고했던 걸 당자가 직접 일본어로 번역해 보내주었다. 자기 자랑 같아 좀 겸연쩍지만, 어쨌든 채록해 둔다.
스승과 걸어온 14년, 그리고 미래로 ― 어느 제자가 본 한일의 새로운 풍경
정말이지, 일종의 격투기와 같습니다.
경애하여 마지않는 우치다 다쓰루 스승을 모신 한국 강연회는 올해로 정히 14년째를 맞이하였습니다. 이건 숫제, 매년 예사로 있는 순례인지, 아니면 각본 없는 장기 연속 드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2012년에 시작된 저희 지의 제전은, 그저 햇수만 채우는 것만은 아니었답니다. 그 도상에는 솔직히 말해 파란만장 예측불가능한 해프닝이 잇달았습니다. 네, 맞습니다. 단순한 강연회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저와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 그리고 한국 사회가 한몸이 되어 자아내는, 일종의 ‘격투기‘인 셈입니다.
코로나 유행병처럼 보이지 않는 적이 나타난지라, 2020년과 2021년은 인터넷이라는 전장에서 분투했습니다. 2022년에는 선생님의 입국 서류에 설상가상으로 문제가 생겨, 한때는 중단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하지만 극히 공사다망하신 가운데 선생님이 기적적으로 스케줄을 조정해주셨기에 저희는 무사히 당년의 라운드를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최종 라운드에서 역전 넉아웃 승리를 굳힌 권투선수와도 같이, 저희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점을 찍은 건 2024년입니다. 선생님께 예기치 않게 악성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예정된 내한 일정은 당연히 취소되었지요. 너나 할 것 없이 선생님의 건강을 염려하며, 올해 강연은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격투가’셨습니다. 웬걸, 절제술을 하루 앞두신 몸으로, ‘온라인으로 하겠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병상에서, 아니지, 이건 진짜 결전 전날 링사이드에서, 선생님은 저희에게 그렇게 읊조리셨습니다. 그 ‘투혼’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자태에 저희는 할 말을 잃고 그저 감동에 벅찼습니다. 이리하여 우치다 선생님의 강연회 역사에는 또 하나의 전설적인 장면이 새겨진 것입니다.
2025년 강연회는 이렇듯 허다한 드라마를 거쳐 역대급으로 감개무량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느 참가자의 소감을 빌려보면, 그건 마치 “스승과 제자가 나누는 즐거운 대화의 향연“이었으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일본과 한국을 결속하는 지식인의 통찰”이 넘쳐 흐르는 자리였습니다. 이제 14년간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제자로서 그리고 누구보다 선생님의 사상을 사랑하는 자로서 풀어놓고자 합니다.
마르크스주의자(마르크시스트)가 아닌, 마르크스적 인간(마르크시앙)이 되거라
“어째서 한국 사람들은 제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요?”
강연 중간에 선생님은 불쑥 이렇게 속내를 내비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대답의 핵심에 당년 강연에서 말씀하신 ‘마르크스‘ 독해 방식이 있었던 셈입니다.
우치다 선생님은 “마르크스를 읽지 않고서는 19세기 이래 역사를 논할 수 없다“고 단언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학문적 지식 분야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볼셰비키 혁명과 같은 역사의 거대한 파도부터 시작하여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서는 위치까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마르크스는 애써 외면하거나 지나칠 수 없는 ‘컴퓨터 운영체제‘와 같은 것이다, 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치다 선생님은 한국 사회 특유의 마르크스 독해 ‘진공상태‘를 예리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특정 사상이 결여되어 있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상의 골격을 신체로 받아들이고, 혈육화하는 ‘감각’ 자체가 없다는 데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선생님이 제시하셨던 게 ‘마르크스주의자(Marxiste)’와 ‘마르크스적 인간(Marxien)’이라는 선연한 구별입니다. 이는 ‘요리 평론가’와 요리인 사이의 차이와 비슷합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인용하고 분석하며 비평합니다. 말하자면 메뉴를 보고서 식자재나 조리법에 대해 고상하게 의논하는 평론가이지요. 하지만 마르크시앙은 다릅니다. 그들은 마르크스를 ‘살아냅니다.’ 그들 자신의 부엌에서 불을 피우고 땀을 흘리며 식자재와 격투해 나가면서 매일 요리를 ‘만들어내는‘ 조리사 그 자체입니다.
우치다 선생님은 당신을 후자 즉 신체에 마르크스를 통과시켜서 말씀하시는 인간으로 자리매김하십니다. 난해한 개념의 숲을 헤매는 게 아니라, 일상의 실제적 감각(원문 ‘피부 감각‘ – 역주) 이라든가 상념 속에서 사상을 번역합니다. 마치 신들의 언어를 인간의 말로 옮기는 헤르메스와도 같지요.
제가 해를 거듭해 선생님의 저작을 한국어로 번역해 온 것도 다름이 아닌 이 ‘마르크시앙‘이라는 자세에 매료되었단 것 말고는 달리 말할 길이 없습니다. 제가 한국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 서재에 진득이 앉아 있는 철학자의 도통 모를 개념이 아니라, 생활하며 으레 흘리는 땀과 눈물로 다져진, 살아 숨쉬는 사상이랍니다. 우치다 선생님이 한국에서 이렇게나 사랑받는 이유 또한 분명 거기에 있을 거로 생각됩니다. 우치다 선생님의 철학은 머리만 굴리는 것이 아니고, 독자적인 ‘생활론’으로 변환하여, 인생 그 자체로 사상을 체현하는, 아주 드문 ‘요리인‘과도 같은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보여준 난해한 사상을, 마치 딱딱한 돌을 깨어서 누구든지 맛볼 수 있는 기름진 토양으로 화하게끔 하는 것과 같이 한 사람의 생활자로서의 맨몸뚱이로 느낀 신체 감각, 피부로 느낀 실제적 감각의 층위까지 가닿아 말씀하시는 우치다 선생님. 그러한 선생님의 자태는 바로 탁월한 이야기꾼의 그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마치 짙은 안개가 낀 아침에 스며드는 한 줄기의 햇살과 같이, 고등학생이라도 그 사상이 내포한 핵심을 생생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우치다 선생님이 일생동안 스승으로 우러르며 끊임없이 탐구하고 계시는 레비나스의 사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철학을 마치 말라버린 우물에 새로운 수맥을 파내는 것처럼 ‘왜 현대 일본인은 성숙해야만 하는가‘ ‘어떻게 진짜배기 어른의 수를 늘릴 수 있을까’처럼, 시대의 절실하고도 갈급한 질문과 매듭지어 마침내 부활시켜냅니다. 이렇듯 연구자 우치다 선생님의 투철한 사명감에 저는 깊이 감명을 받은 것입니다.
제가 대학 교수였을 무렵 우치다 선생님의 주옥같은 문장을 접한 건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삶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으면서 그 삶과 철저히 거리를 둔 ‘지’란 것을, 마치 팔락팔락 날아다니던 나비를 아주 비좁은 표본함에 무리하게 쑤셔넣는 것과 같이 논문이라는 형식 속에 구겨넣어야 했던 나날이었습니다. 이런 짓거리에 깊은 회의의 염이 밀려든 나머지 저는 대학 강단을 내려와야 했습니다.
참말이지, 이런 제가 대학이라는 상아탑과 이다지도 깔끔하게 연을 끊어버린 데에는 또 하나의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유대인이자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자, 러시아가 낳은 천재 레프 비고츠키란 사람이 있습니다. 쓰쿠바 대학에 유학 중이던 젊은 시절 저는 이 거대한 사상에 흠뻑 빠져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나 조국에 돌아와 보니 이 비고츠키의 진수, 그 정수를 제대로 평가하는 연구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세련된 도시 초밥 장인이 게맛살밖에 모르는 촌구석으로 길을 잘못 든 것과 같은 상황이었던 셈입니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써냈던 논문은 학회에 제출할 때마다 게재불가라는 도장이 찍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운명이었습니다. 한국의 모든 학술 잡지가 제 논문을 ‘우리 가게는 이런 요리를 취급하지 않아요‘ 라고 할만치 냉대했습니다. 물론 학계 주류에서 ‘으뜸가는 비고츠키 연구자’를 자청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의 비고츠키 이해 수준을 봤더니 너무나 일천했던지라 읽는 제가 다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습니다. 이건 숫제 맥주 거품을 핥고서 ‘맥주 평론가‘ 연하는 것과 같아서, 어떤 골계미마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 비극은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비고츠키의 마지막 주요 저서 “사상과 언어“가 영어로 번역되었던 때의 일입니다. 당시 미국은 아시다시피 매카시즘 선풍의 한가운데에 있었는지라 ‘마르크스‘라는 단어를 입에 꺼내기만 해도 ‘빨갱이 앞잡이’라며 돌세례를 받던 시대였지요. 소련과의 냉전도 한창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었으니만큼 미국의 번역자들은 비고츠키 사상의 근간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름이 등장하는 부분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혹은 기꺼이?) 싹둑 잘라내버렸습니다. 이를테면 가장 중요한 고추냉이를 빼먹은 초밥, 고춧가루 빠진 김치와도 같았지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창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몹시 매운 향신료를 살려내어, 사회-문화-역사적 심리학이라는 아주 새로운 요리를 창조해낸 비고츠키의 진면모는, 이렇듯 미국에서 가시가 발려나가, 아무런 특색 없는 ‘따분한 교육만능주의자’로 변모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나중에 미국에서는 비고츠키를 다시 바르게 읽자는 운동이 일어나는지라 새로운 번역이 나온다든지 연구자가 러시아로 직접 건너가 직계 제자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등, 현재로서는 원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연구자들은 날카로운 이빨이 고스란히 드러난 진짜배기 비고츠키와 격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와서 보니! 시곗바늘이 멈춰있었던 것이지요. 1962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거세’당한 교육자 비고츠키의 모습이 2025년 지금도 여전히 마치 첨단 사상인 것마냥 눌러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온 세상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시대에 아직까지 손으로 돌리는 옛날 전화기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있는 거라고나 할까요?
이러한 비고츠키 이해의 불모지대, 아니, 지적 사막에서 저같은 연구자가 살아갈 장소는 대학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막 통감한 차였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대학을 그만둔 것, 나중에 독립연구자로서 집필과 번역의 길을 걷게 된 것도 모조리 스승의 가르침인 ‘수행’의 일환이었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동일한 연구자 집단이라는 폐쇄된 서클 속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이보다 조금 더 잘 할 뿐인, 그런 소모적인 의자 놀이 같은 경쟁에서 내려왔을 때, 제 마음과 신체에는 마치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진 듯한 해방감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택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수행이라는 개념을 응축시킨 한 권의 책, 그것이 『목표는 천하무적』입니다. 이 책을, 마치 소중히 간직해온 씨앗을 한국의 토양에 파종하는 마음으로 십년 이상에 걸쳐 다양한 출판사에 기획서를 들고 다녔건만 그 문은 굳게 닫힌 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원제는 『무도적 사고』이고 출판해준 곳은 조성웅 대표의 유유출판사다. - 옮긴이)
그럼에도 도전을 거듭한 까닭은 이러한 수행이라는 등불이 장차 한국 사회를 비출 하나의 빛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열렬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행히 올해 그 씨앗은 드디어 싹을 틔워 보시는 바와 같이 외국 독자라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수행이라는 이름의 끝나지 않는 여정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이 한국 사회에 통렬히 지적해 주신 또 하나의 갈증, 그것은 ‘무도적 사고’의 결여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 있는 게 수행입니다. 그것은 현대성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그러나 인간으로 살아갈 적에 매우 근원적인 개념입니다.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수행이란 목적 지점을 모르는 채로 그저 스승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어나가는 여로와 같은 것입니다. 합기도가 되었든, 철학이 되었든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우치다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최초의 동기는 어느덧 잊어버렸고 끝은 보이지 않는, 그렇다고 다른 이와의 비교를 통해 달성도를 가늠할 수도 없는 그런 경지입니다.
이 얘기를 성과주의, 승패지상주의, 속도와 효율을 신성시하는 현대 한국 사회(아니, 일본도 마찬가지겠지요)적 측면에서 보면 정신 나간 비효율의 극치와 같이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무엇이 되겠다는 건가요?’ ‘비용 대비 효과는요?’와 같은 목소리가 사방 천지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군요.
하지만 우치다 선생님은 바로 여기에 인간의 자기형성을 위한 왕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무도의 최종 목표가 ‘천하 무적’인 것처럼, 수행의 끝에 기다리는 건 ‘대오각성’, ‘해탈’인 즉,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소실점’에 이르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걷기 시작한 초심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조차 잘 모릅니다. 적어도 10년은 계속해야지만 그 입구에 설 수 있습니다. 여기에 ‘수행의 역설’이 있습니다.
맨 처음 동기가 무엇이 되었건 그것을 계속 해나가는 사이에 동기 그 자체가 사라지고 새로운 목적과 의미가 내면에서 잇달아 생겨나게 됩니다. 다른 이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변용해 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이 ‘과정’의 가치야말로 선생님이 무도 철학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현대 사회를 향한 가장 가열찬 카운터펀치인 셈입니다.
연구자가 아닌 제자가 되어라 – 무지의 지가 아닌, 무지의 기쁨
올해 강연에서 통역을 맡은 제 마음을 가장 설레게 했던 것은 우치다 선생님이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와의 첫만남을 고백하셨던 대목이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 글자도요. 하지만, 이 사람의 제자가 되어야겠다는 건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치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해를 못했냐면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였어요. 인간이 미숙했기 때문에 그랬지요.” 이는 즉, 지식의 깊이를 재는 척도로써 인간적인 성숙도를 통해 가늠해야 하는 선생(* 레비나스? 우치다? 물론 후자도 그렇다는 데 의심의 여지는 없습니다만. – 역주)의 철학을 더없이 명확히 드러내는 삽화였습니다.
여기서 우치다 선생님은 ‘연구자’와 ‘제자’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연구자란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지식의 프레임(상자)에, 대상이 되는 사상을 구겨넣어 분석하는 인간입니다. 한편 제자는 자신의 지식과 정보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받아들이고 그 상자를 스스로 두들겨 부수는 일부터 하는 인간입니다. 자신의 프레임을 파괴하고서, 알 수 없는 다른 이의 세계에, 아무 대책 없이 뛰어드는 겁니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서 좋아하는 사람”. 그것이 제자라고 우치다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사회는 ‘알지 못해서 불안한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하지만 참된 배움이란 그 반대 벡터를 갖고 있지요. ‘아직 내가 모르는 게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고 환희하는 자세. 그것이 제자의 특권이며 또한 기쁨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맥에서 말씀하신 ‘서재’의 정의도 역시 통쾌하기 그지없습니다. 서재에 책을 꽂아 놓는 건 자신이 얼마나 박식한가를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이만큼의 책을 읽지는 않았다.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이토록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거다’ 하는 자신의 무지와 협소한 국량을 ‘가시화’하기 위한 장치라는 겁니다.
무지를 두려워 말라. 무지를 기뻐하라. 이 얼마나 자유롭고 해방적인 사상인가요? 경쟁 사회의 왕도는 ‘적을 때려 부수고서라도 정점에 올라라’ 입니다. 하지만 우치다 선생께서 보여주신 자기형성의 왕도는 ‘경쟁에 등을 돌린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무도가 본래 강약이나 승패, 상대적인 우열을 묻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왜냐하면, 승리가 어떤 경우에는 인간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게 하며, 결과적으로 그 인간은 성장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참된 수업이란,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서, 그저 한결같이 자신을 갈고 닦으며 내면을 깊이 탐구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다른 이를 때려 눕힘으로써 ‘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이와 같이 걸음으로써 ‘나’를 길러가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선생님이 한국 사회에,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제시해 주신, 또 하나의 삶의 방식입니다.
새로운 한일 연대의 탄생 – 제자가 놓는 다리
저는 지금까지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이 쓰신 책을 꽤 많이 소개해 왔습니다. 개중에는 한국에서 먼저 기획 및 출간되어 나중에 저자의 모국어인 일본어판이 나온 기가 막힌 책이 두 권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이런 책을 써 주세요’라고 부탁하여 한국어판이 먼저 나온 겁니다. 말인 즉, 일본에서 사상을 수입하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발주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두 권의 책이 마치 메마른 대지에 쏟아져 내리는 단비와도 같이 순식간에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적셨습니다. 정말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덕분에 선생님의 다른 책에도 호기심의 촉수가 뻗치는 독자가 늘었으므로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우치다 선생님은 농반진반으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네야말로 한일교류에 진력을 다하고 있다네. 만약 훈장을 받는다 해도 놀라지 않을 걸세”. 물론 과찬이기는 합니다만, 이 한 마디에 우리의 관계성을 상징하는 일말의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한국의 일개 연구자가 일본의 위대한 연구자 (그리고 지금은 스승이 되신) 를 만나고, 그 훈도를 받아 성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극히 자연 발생적으로 양국의 학술과 문화의 교류가 생겨납니다. 한 사람이라도 많이 한국의 독자에게 선생님의 살아있는 사상을 전하고자 하는 제자의 애끓는 바람. 그리고,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의 저작을 우선 한국어판으로 읽고, 그것을 계기로 선생님의 사상을 만날 수 있었다는, 일본의 한국어 학습자들의 존재. 그와 그녀들은 말하자면 역수입의 형태로 한국어를 통해 우치다 다쓰루 선생과 만날 수 있었던 셈입니다.
통례의 국가나 정치가 주도하던 교류와는 전혀 다른, 좀 더 인간적이고, 피가 통하는, 새로운 ‘한일 연대’의 탄생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은 강연 마지막에 이렇게 결론을 내셨습니다. 당신은 뭔가 낯선 ‘외래 문물’을 한국에 전하고 있는 게 아니며, 오히려 원래 한국에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그 깊은 장소에서 퍼내올려 빛을 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카이브 안에 잠들어 있던 사고의 감각을 다시 한번 흔들어 깨우는 일.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이 한국에서 필요로 하는 이유이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수행의 철학’입니다.
해독불능의 시대에 길을 잃고 있는 독자들에게 선생님은 ‘걷는 철학’을 제시하십니다. 성과나 효율만을 숭배하는 사회 속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끝없는 배움을 향해 그저 걸어나가는 자세 그 자체가 그것입니다.
이제 강연회를 마치고 강연회장을 나섭니다. 선생님의 시선과 표정이 제 마음에 깊은 잔상을 맺습니다. 그것은 노년의 그것이 아닌 미지에의 무언가에 호기심이 충만한 ‘청춘의 눈동자’였습니다.
여태껏 이어졌던 14년 동안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습니다. 분명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챕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요. 그 길을 저는 한 사람의 제자로서 앞으로도 스승의 뒷모습을 좇으며 걸어나가려 합니다.
(2025-08-15 18:16)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용기론』 『목표는 천하무적』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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