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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패배해서 다행이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10. 7. 13:33
일본의 패전으로부터 80년 지났다. 전쟁의 생생한 기억이 해마다 마멸되며 보다 객관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다.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망상적’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1950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어렸을 적에는 어른들이 가끔 지난 전쟁 얘기하는 걸 듣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아직 ‘서사‘로 편성되기 이전 단계의 좀더 생생한, 언뜻 들어서는 이해가 잘 안 될 그런 이야기였다.
그 가운데서도 어린 마음에 가장 깊게 남아 있던 건 부친이 우리 집에 초대한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나직이 “패배해서 다행이잖은가“ 라고 했던 한마디였다. 그 말이 필자에 기억에 여태껏 남아있는 이유는, 그 자리에 있었던 남자들이 잔을 움켜쥔 채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이*였던 입장에서는“패배해서 다행이었다”는 말의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우리집은 가난했다. 애들이 으레 갖고 싶어하는 것을 모친은 사주지 않았다. “왜 안 사주는 거야?” 하고 필자가 투덜대니 “우리집이 가난해서야“라고 대답했다. “어째서 가난한거야?” 하고 재차 물으니 어머니는 “전쟁에서 졌기 때문이야”라고 대답했다. 똑같은 문답이 몇 번이나 거듭 있었다. 그래서, 어린 나는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는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어른인 아버지들은 어린이와는 다른 판단과 언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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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子ども“와 “어른” 사이의 “성숙“은 우치다 다쓰루 철학의 중요한 개념어 – 역주)
‘패배해서 다행이다’라는 말은 곧 ‘만약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일본은 지금보다 훨씬 나쁜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중이 아니고서는 달리 추찰할 수 없다.
아버지는 중국 대륙에 있으면서 정부 관련 일을 했는데, 전황이 좀 나았던 시절의 일본인이, 조선인과 중국인에게 어떤 처사를 보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이상, ‘이런 짓‘을 줄기차게 하다가는 일본인은 언젠가 ‘벌’을 받을 것임을 아마 내심으로는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벌이 내려졌다.
따라서 아버지와 그 동료들과 같은 전쟁 세대는, 조국의 멸망에 한몫했기는 했지만, 이에 따라 ‘하늘의 도‘ 즉 사필귀정의 이치에 이르렀다고 보면, 그 역사적 심판에 따를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패배해서 다행이다”라는 말은, 전쟁 중이었던 일본의 실상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런 감회였다. 적어도 1950년대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면‘이라는 상정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승리에 득의양양하는 일본’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가, 우리에게는 죽은 글, 한정적인 지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쟁 세대의 생생한 언어를 전할 수 있는 건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 사람들도 서서히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런고로 잊지 않기 위해 지면 상에 써두는 것이다.
(시나노 마이니치 신문 8월 15일)
(2025-08-15 08:16)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용기론』 『목표는 천하무적』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조선인 오길비: 이 글에 배어 있는 모종의 숭고함을 얼마나 잘 옮길 수 있었을지 그저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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