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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주의와 “악당들”의 전성시대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10. 12. 16:30

     

    ――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혼란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우치다  세계적으로 권위주의가 세를 얻고 있으며, 제대로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할  있는 나라는 현저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 지수 8.0 이상 되는 완전 민주주의 국가‘는 세계의 15%까지 축감했습니다.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 (민주주의 지수 7.0 이상)까지 포함하면  세계적으로 42.5% 해당합니다. 나머지는 강압적인 독재제에 가깝습니다.

     

    중국, 러시아, 터키는 권위주의적인 체제를 통해 대국화하고 있으며, 서양에서도 배외주의적인 극우 정당이 대두하고 있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입법부와 사법부를 힘으로 억누르는 국왕‘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리폼 UK, 프랑스에서는 국민연합( 국민전선), 독일에서는AfD(독일을 위한 선택지) 세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스트당의 흐름을 계승하는 FDI(이탈리아의 동포) 소속 멜로니 당수가 최초의 여성수상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참의원 선거에서 나타난 참정당의 급성장도 마찬가지 맥락에서의 사건이라 봐도 좋습니다. 자민당이 소수 여당으로 전락하여, 국내 정치가 다극화한동시에, 전망이 불투명해졌습니다. 이렇듯 기성 정치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역시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지 않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난  아니라, 심각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는 얘기입니다. 트럼프는 원인이 아닌 결과이며, 문제가 아닌 해답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좋습니다.

     

     

    ―― 이러한 상황 가운데, 우리는 현재 어떤 역사적 전환기에 들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우치다 현재 정국은 글로벌 자본주의가 종언으로 치닫고 있으며, 후기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역사적 전환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옮겨 가는 시기에 권위주의라든가 극우정당이 대두하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어째서 전환기에 극우 사상과 편협한 국수주의(nationalism) 등장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이러한 사상이 토착‘적이며, 독특한 신체성을 갖추고 있기때문이라는   진단입니다.

     

    자본주의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입니다. 거기에는 신체도 없고, 생명도 없습니다.  점이 지금까지의 통치 시스템과는 다릅니다. 예를들어, 중세 봉건제는 물론 비민주적이고 비인도적인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지요. 영주와 농노의 관계는, 지배하는 인간과 지배당하는 인간 사이에피어나는 생생한 권력관계였습니다. 영주는 딱히 경제적 이익을 위해 농노를 수탈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의 신체와 영혼을 싸잡아  모든  소유하려 들었습니다.

     

    한편 자본주의를 살펴보면, 분명히 노동자의 신체가 창출하는 가치가 수탈당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관계는 중세적인 주종관계가 아닙니다.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시장에 파는  자본주의의 행위자(player)이며, 부르주아들도 또한 자본주의라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의 일개 톱니바퀴’인지라,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조작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무덤을 파줄 사람을 만들어낸다. 부르주아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는 불가피하다“라고 썼습니다. 이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하지만 부르주아가 자본주의 시스템의 인형술사‘가 아니라, 인형술사가 조종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옳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확실히 자본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수익을 보고 있지만, 수익자가 시스템을 통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항상 드는 예시인데, “바람이 불면 통발이 잘팔린다”라는 일본 속담을 살펴봅시다. 그래서 통발장수가 기상현상을 조작하는 초능력을 갖고 있다는 추론은 논리적으로 잘못되었습니다. 수익자가 반드시 조작자를 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익을 거두는 지위(position)‘에 일개 톱니바퀴’로 박혀 있을 뿐입니다.

     

    시스템은 인간의 의식이라든가 감정과 관계 없이 증식합니다. 후기자본주의로의 이행(shift)이라는 극적인 변동의 예감을 품는 사람들은, 이제까지의 지배자 대 피지배자‘라는 인간끼리의 제로섬적인 다툼이라는 도식(scheme)이 아닌, ‘비인간적인 시스템과 맨몸뚱이를 가진 인간 사이의 전쟁’, ‘무생물과 생명체 사이의 투쟁‘이라는 도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이러한 보조선을 그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뒤덮는 과정에서, 기성 정당은 정책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우선했으며, 국민 생활에 대한 배려를 게을리했습니다. 그 결과, 선진국에서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한 줌에 불과한 초부유층과 다수의 빈곤층으로 사회가 양극화되어 버렸습니다. 안티 글로벌리즘은 이러한 양극화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왕년에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지위(status)를 되돌려 놓으라는 르상티망(ressentiment)’에 따라 안티글로벌리스트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단순한 정치적인 반동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일종의 생명주의‘를 내건 점에 흥미로운 특징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비인간적이고 비생명적인 시스템에 대적하는 인간의 반란’, ‘생명의 반역‘이라는 도식을 그들은 채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자각 없이 그러는 것일 테지만, 직감을 느끼는 촉은 좋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인 극우 운동의 통주 저음* 역할을 하는 건 ‘시스템보다 생명을 중시하자’는 구호(message)입니다. 일본의 ‘참정[]당’이라는 집단은 ‘일본 사람 제일주의(first)’를 기치로 내걸고 있습니다. 단번에 유권자를 사로잡았지요. 그 이유는 인간 제일주의‘, ‘생명 제일주의’ 등 내놓고는 말하지 않는 생명주의적인 표어를 유권자들이 알아차렸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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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orough bass, basso continuo. 바로크 시대에 성행했던 음악기법임. 표면에는 드러나지 않으나 일관적으로 어떤 사물에 영향을 지속적으로 끼치고 있는 요소. 배음overtone도 참조하시오. 합기도 수련의 일환인 ‘배음성명’의 실감적 체험에서 연유된 어휘인 것으로 추측됨. 최근 5년 간 우치다 선생 텍스트에 한 번 이상 등장한 단어. – 역주)

     

    생명주의는 무엇보다도 원시적인 생명력에 가치를 둡니다. 사회제도의 억압을 풀어헤치는, 벌거벗은 생명력을 찬미합니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지성과 덕성보다도, 생명력과 동물성을 우선시합니다. 권위주의와 극우정당을 이끄는 지도자들 전원에게 공통되는 사항이 바로 지성과 도의성을 가벼이 여기는 태도,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남성적 정력과 본능적인 언동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트럼프, J.D. 밴스, E. 머스크, 아베 신조, 하시모토 도오루, 다치바나 다카시, 가미야 소헤이 같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조건에 해당된다고 나는 봅니다. 트럼프는 5, 머스크는 14명을 자녀로 두고 있습니다. 이 또한 다산‘을 동물적인 생명력의 표상으로 받아들이는 유권자에게는 매력적으로 비치겠지요.

     

    일본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생명력이 넘쳐 흐르는 자태를 악‘으로 형용해 왔습니다. 여기에는악한 ‘겐타’ 요시히로, 악한 시치뵤에‘ 가게키요, 악한 사후’ 후지와라노 요리나가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악‘이라는 호칭에 사람들이 거는 기대란 힘세고, 호쾌하며, 용맹, 비범’과 같은 외포와 칭찬의 염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는 악당의 시대‘라고 말해도 될 법합니다.

     

     

    전 세계 어딜 가나 수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아래에서 수탈당하고 억압당하며 앞날에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머리 좋은 인간이나 경우 바른 인간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규칙(rule)을 거리낌없이 짓밟는 과감함과 직감력을 가진 인간에게 끌리기 마련입니다. 이행기적 혼란이란 상황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악에 끌립니다‘. 제 경험상으로 봐도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악당의 시대‘에는, 야만적이고도 방약무인한 언동이야말로 민심을 끌어들이는 정치적 자원(resource)으로 자리매김합니다. 리버럴들은 국민 여러분의 생활을 편하게 해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원하시나요?’ 하는 식의 상승형으로 의중을 취합합니다. 하지만 애초에 국민 스스로 대체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게 바로 혼란적(chaotic) 상황이란 녀석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라고 물어봤자 답이 궁합니다. ‘응, 그럼 돈 줘’ 정도 쯤은 말할 수 있겠지만, 리버럴 정치인은 돈 같은 것 안 줍니다. (자본가들과 한통속이라는 뜻  역주) 그래 이제는 군말 없이 그냥 따라오기나 하시오‘ 하고 하향식으로 명령하는 정치가를 신뢰할 수 있겠거니 하게 됩니다. 자기들한테 이정도로 위세를 부릴 정도면 그는 분명 나아갈 길’을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실제로 2012년 아베 신조가 집권하고 나서 자민당은 국가가 국민에게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가 아닌, ‘국민이 국가에 무엇을 바쳐야 하는가’ 하는 의제를 집요하게 떠들어댄 덕분에, 일본 헌정 사상 최장기간의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유권자는 아무 설명도 없이 잘난 듯 명령하는 정치가‘가 좋았던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힘센 사람’한테 따르라고 귀따갑게 주입당한 탓에, ‘유권자의 동의조차 구하지 않고서 제멋대로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가‘를 보고서는 아 저 사람은 저만치 힘이 있구나. 그러니 저 사람을 따르자’ 하고 추론해버립니다.

     

     

    ―― 생명주의가 트럼프와 같은 악당을 탄생시킨 셈이로군요.

     

     

    우치다 맞습니다. 악당[badass]의 본질은 생명력인 것입니다. 이러한 악당들은 인위가 아닌 야생의 무언가로부터 가치를 찾아냅니다. 그래서 예방접종 반대론, 무농약, 유기농, 대체의료에 친화적입니다. 동시에, 정치적 엘리트, 관료, 언론, 대학 지식인에 엄청난 반감을 느낍니다. 왜 그러냐면, ‘지성은 생명을 억압한다. 지성은 본질적으로 반생명적이다‘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명주의가 쉬이 배외주의로 전락한다는 데 있습니다. 생명력을 찬미했던 정치운동의 대표격은 나치주의입니다. 그들은 민족의 순결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외래종 식물을 먹지 말 것, 희지 않은 빵을 먹지 말 것, 유기농법과 자연요법, 독일의 산야를 걸어다니는 완더포겔‘을 장려했으며, 최종적으로는 열등 인종’을 말살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조국의 토양에서 자라난 순결한 것만을 섭취하여 순결한 심신을 가꾸자‘는 사상과 유대인, 로마, 장애인 등을 말살하는 홀로코스트 사상은 순화’라는 의미에서 동형적인 셈입니다.

     

    현대의 불량배들도 역시 애국주의를 고취하고, 외국인을 배격하고 있습니다. 머잖아 자신들을 반대하는 자에게 비국민‘, ‘반일’이라는 딱지(label)를 붙이고서는 배격하게 되겠지요. 편협한 국수주의(nationalism) 네이션(국민)’의 개념을 한없이 축감하여 순화시키려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운동은 분파[sector]와 축감이 숙명입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강한 구심력을 발휘하기는 합니다.

     

     

    ―― 생명주의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요?

     

     

    우치다 어려울 겁니다. 우리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편입되어 있으며, 이미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있습니다. 시스템의 일부가 시스템 전체를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가능한 건 뭐냐면, 시스템 내부에 속한 우리의 손이 닿는 범위 안쪽에서 결함을 수정하고, 시스템의 폭주를 어떻게든 감속시키는 그런 일 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정도 작업을 하는 데에도, 소정의 계량적인 지성이 꼭 필요합니다. 생명력만 갖고 덤비려다가는 시스템이 꿈쩍도 안 합니다.

     

    생명주의는 감정적 반발이므로 시스템을 파괴할 수도, 수정할 수도, 물론 관리할 수도 없습니다. ‘시스템 대 생명체‘ 라는 도식은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이를 파시즘으로 전화시키지 않고서 사상적, 정책적으로 전개하는 일은 무척 어려워 보입니다.

     

    (월간 일본에 기고한 원고 일부, 8 14)

     

    (2025-08-15 09:41)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합기도 개풍관 관장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용기론』 『목표는 천하무적』 .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