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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돈이 없다면...
    인용 2025. 10. 12. 04:12

    코페르, 어른이 되어 갈수록 조금씩 알게 되겠지만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의 환경에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단다. 자기가 입고 있는 초라한 옷과 자기가 살고 있는 낡은 집과 날마다 먹는 변변찮은 음식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지. 가난해도 긍지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훌륭한 사람들도 많지만 이 세상에는 돈 있는 사람 앞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는, 마치 자기는 그런 사람들하고는 신분이 다르다는 듯 쓸데없이 굽실거리는 사람도 많아. 이런 사람이라면 절대로 좋게 봐줄 수 없지. 돈이 없어서가 아니란다. 근성이 비굴하기 때문이야.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이나, 집이나, 먹는 음식으로 증명되지 않아. 값비싼 옷과 호화스런 집에 살아도 어리석은 인간은 어리석은 짓을 하게 돼 있어. 그런 사람이 좋은 옷을 입고 훌륭한 집에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높아질 수는 없단다. 반대로 마음씨가 고결하고 인격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라면 비록 가난할지라도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인물이 되는 법이란다. 그러므로 자신의 가치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바라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우리도 가난할지라도 그 때문에 스스로를 낮추지 않고, 또 부유하다고 해서 마치 위대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면서 살아가야 할 거야. 가난해서 열등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아직 사람답게 성장하지 못했다는 증거란다.

     

    코페르, 방금 외삼촌이 한 말, 가슴에 깊이 새겨 두기 바란다. 만일 풍요로운 네 환경을 조금이라도 자랑하고 싶다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우쭐거리고 싶어진다면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될 거야.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딱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는 거란다. 다행히 너는 우라가와네 집에서 조금도 이런 기분에 젖지 않았어.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네 안에 없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어. 문제는 지금 같은 마음이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네 안에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란다. 이번 기회에 그런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면 좋겠구나. 네가 이 세상을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그런 마음이 중요해질 거야. 아니, 이 세상을 바로 알기 위해서라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마음이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난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란다.

     

    우라가와네 집에 찾아가면서 우라가와네 집과 네가 사는 집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차렸을 거야. 우라가와가 너보다 가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런데 세상에는 우라가와보다 가난한 사람이 훨씬 많단다. 그 사람들 눈에는 우라가와 정도면 감히 가난하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환경에서 사는 거야. 네가 이런 말을 듣는다면 깜짝 놀라겠지.

     

    그렇다면 우라가와네 두부 가게에서 일하는 젊은 종업원을 생각해 보렴. 그 사람들은 몇 년이 지나 우라가와의 부모님처럼 독립해 가게를 차리는 게 희망일 거야. 우라가와네 집이 가난하다고는 해도 아이들을 중학교에 보내고 있어. 아마도 젊은 종업원들은 초등학교만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을 거야. 우라가와네 집은 두부를 만드는 기계가 있고, 원료인 콩을 살 돈이 있고, 젊은 종업원에게 월급도 주는 엄연한 기업이야. 하지만 가게에서 일하는 젊은 종업원들은 자기 몸밖에는 생계를 꾸려 나갈 밑천이 없단다. 온종일 몸을 움직여야 먹고살 수 있어. 이런 사람들이 불치병에 걸려 일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노동력 하나만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굶어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안타깝게도 세상에서는 몸이 망가지면 가장 곤란할 사람들이 몸이 망가지기 쉬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단다. 모자라게 먹고, 비위생적인 곳에 살면서 피로를 푼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쫓기듯이 힘들게 일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그런 법이 어딨어."

     

    너는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 맞아, 분명히 잘못된 일이야.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은 거짓이 돼. 모두가 똑같이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은 거짓이야. 정직한 사람이라면 이 생각에 반대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우리가 정직하게 생각해도 세상은 정직해지지 않는구나. 인류는 진보했지만 그 진보가 사람들 마음속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어. 그 때문에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아주 많단다. 가난 때문에 생긴 참혹한 일들과 가난 때문에 불행해진 수많은 사람들, 가난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 이야기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 너에게 별로 들려주고 싶지 않구나. 굳이 지금 알려 주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그 모든 진실을 알아야만 할 때가 올 거야.

     

    그렇다면 세상이 이처럼 발전했는데도 여전히 힘들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기는 까닭이 무엇일까? 왜 세상에서 불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네 나이에 이런 문제들을 똑바로 판단하고 이해하기란 무척 어려워. 다만 네가 지금 당장 알아야 할 것이 있단다. 이처럼 불공평한 세상에서 너는 별다른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껏 공부하면서 네가 타고난 재능을 조금씩 키워 나가고 있는데,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다는 거야. 코페르! '고마움'에 담긴 진짜 뜻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렴. 흔히들 '고맙다.',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는 뜻으로 '고마움'이라는 말을 쓰고는 하는데, 그 말은 본디 '그렇게 되기 어렵다.', '웬만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는 상황에서 쓰는 말이란다. 나는 본디 이렇게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분, 그게 바로 '고마움'이라는 마음이란다. 고마운 마음이 '고맙다.'라는 말이 되어 나타나고, 그 말에는 고마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드러나는 거란다. 이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지금의 너를 되돌아보면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네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은 하나같이 많은 사람이 노력해서 만든 것이란다. 너도 그걸 알게 되었지. 그런데 너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니. 이 넓은 세상에서 모든 사람과 알고 지낼 수는 없겠지. 그렇더라도 네가 먹는 음식, 네가 입고 있는 옷, 네가 사는 집처럼 너에게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실제로 노력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고생한 덕분에 편히 살아가고 있는 네가 언제 어디에서나 늘 남일 수밖에 없다는 건 네가 느꼈던 감정보다 더 이해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이해되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란다. 사람과 사람은 지구를 감싸는 그물코처럼 서로 얽혀 있지만 그 관계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완벽하게 사람다운 관계는 아냐. 이만큼 문명이 발달했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다투고 있고, 돈 때문에 남을 고소해 하루도 빠짐없이 재판을 하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면 전쟁마저 서슴없이 하고 있어. 네가 발견한 "인간 분자의 관계"에도 이런 현실이 비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질의 분자와 분자 사이에 맺어진 관계처럼 인간 분자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분자 사이의 관계일 뿐 사람과 사람의 따뜻한 관계는 아닌 것 같구나.

     

    하지만 코페르, 현실이 이렇더라도 사람은 언제나 사람다워야 한단다. 사람들이 사람다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는 건 아쉬운 일이야. 너와 상관없는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당연히 분자와 분자가 교류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따뜻하게 만나야 한단다. 지금 당장 네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야. 단지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기를 바랄 뿐이란다. 사실 이 문제는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해 오면서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란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사람다운 관계란 어떤 것일까?

     

    네 엄마는 너를 위해 무슨 일을 하든 너에게 그 보수를 바라지 않으셔. 네 엄마는 너를 위해 애쓸 수 있다는 것이 기쁘기 때문이지. 너도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해 무언가 착한 일을 하고 나면 보답받지 못하더라도 기분이 좋을 거야. 사람이 사람에게 좋은 감정으로 친절을 베풀고, 그것을 기쁨으로 삼는 것처럼 아름다운 관계는 이 세상에 없단다. 나는 그것이 진정으로 사람다운 인간관계라고 믿는단다. 코페르, 너도 그렇게 생각하리라고 믿는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