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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비평적이면서 예의 바른 어조
    인용 2025. 9. 8. 05:41

    나는 신 내무부장이 이끄는 대로 우선 국무회의실에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입문과 맞은편에 김구 주석이 육중한 체구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으로 긴 탁상에 국무위원들이 주욱 앉아 있었다.

     

    모두 그 표정이 괘씸하다는 표정이었고 회의실의 분위기는 흔들리지 않는 공기가 가득한 채 그대로였다.

     

    ()

     

    먼저 장 군의 얘기부터 들어보기로 하지……

     

    김구 주석이 날 넌지시 건너다보며 이렇게 발언하자, 유림 씨는 더 말을 하지 아니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입은 열리게 되었다.

     

    선배 선생님 여러분!”

     

    나는 침착해야 한다는 것을 침을 삼키며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그러나 이것을 자각하자 오히려 대담해지기까지 했다. 나는 잠시 어두를 찾아 망설이다 드디어 말머리를 잡았다.

     

    ……선생님들이 목숨으로 이끌어온 임정을 저도 누구 못지않게 목숨 바쳐 지키고 싶습니다. 이 임정은 우리 온 동포에겐 국내이든 국외이든 유일한 희망의 등대임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주회에서 말씀드린 저의 폭언에 대해서는, 만일 선생님들이 임정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시는 마음으로 책하신다면 어떠한 벌이든지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이 오늘의 기회는 진정으로 저와 또 저희가 기다리던 기회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길지 아니한 단 10여 일 동안, 그동안 우리의 눈에 비친 임정은 결코 우리가 사모하던 그 임정과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잘못 본 것이라면 용서하십시오. 진정으로 여러 선배 선생님께서 이곳 이 땅에서 임정을 사랑하고 있다고 저희에겐 생각되지 아니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한다는 것과 탐욕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탈출해서 기나긴 행군으로 오면서 그리던 임정은 모두 일치단결되어 있는 완전한 애국투쟁의 근본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곳에 오기만 하면 그 단결된 힘으로 오직 잃은 나라 찾는 데만 목숨 바쳐 일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 기대는 지나친 하나의 환상이 아니었나 하는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 회의는 누가 준 것입니까?

     

    조국을 잃고 망명한 입장에서 임정을 세웠기에 임정이 하는 일에는 파쟁이 개재되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잘못 본 것입니까? 아니면 사실입니까?

     

    기대에 대한 회의는 불타던 기대를 풀어지게 했고 그 대신 자학을 우리 가슴에 부어주었습니다. 잃은 나라의 앞날이 너무나 암담하다고 우선 판단했습니다.

     

    왜냐구요? 이후 광복의 날이 와서 귀국하게 된다면 그때도 국내에서 이곳 임정의 타성이 그대로 옮아갈 것을 생각했습니다. 필경 이런 것이 다 두고두고 생각해서 얻은 가정의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이 임정이 왜 필요한 것입니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진정 나라 사랑의 일념이라면, 있어서 안 될 것이 있는 이 실정은 무엇입니까? 진정코 임정을 목숨 그대로 사랑하시는 뜻에서 주시는 벌은 받겠습니다.

     

    그 대신 이곳의 파쟁이라는 인상이 가셔진다면 그 벌은 제가 받아 오히려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건 저의 속마음 그대로의 간곡하고…… 주제넘은 말이 아닌 것으로 생각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입을 닫았다. 가슴이 후련했다. 가득했던 움직이지 않는 공기가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실은 내 가슴에서 무엇인가 빠져나간 것이었지만.

     

    그러나 뜻밖에도 김구 주석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허허……하고 웃으시면서, “장 군, 그만 나가게……하시는 것이었다.

     

     

    장준하, 돌베개


    젊은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무례함’과 ‘비평성’을 혼동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어려운 부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필자 자신 젊었을 적에 이 두 개념을 혼동하였다. ‘촌철살인’이나 ‘쾌도난마’같은 일도양단적 평언(評言)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있어서 그렇게 제멋대로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오래 살고 보니, 무례함의 강도와 언명(言明)의 진리성 사이에 상관관계는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알아줬음 하는 것은 ‘비평적이면서도 예의 바른 말하기 방식’이라는 게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문장을 찾아내어, 될 수 있으면 그러한 ‘말하기 방식’을 몸에 익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곤란한 사업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만한 야심적 목표를 자신에게 부과해도 좋지 않을까. 아직 자기 도야를 위해 쓸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으니까. (우치다 타츠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