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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두 가지 공백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7. 31. 05:53

    주간 한겨레21에 긴 분량으로 쓰여진 ‘강연평’이 실렸다. 저서가 아니라 강연에 평론이 나왔다는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닐 터이다. 박동섭 선생(* 독립연구자. 교육심리학 및 비고츠키 등의 권위자. - 역주)이 일본어로 번역해 보내주었으므로 블로그에도 그대로 올려둔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나의 책을 독파하였으며, 내가 한국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바를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전하고 있었다.


    (아래)

    “한국에는 두 가지 공백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 학통과 무도의 전통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이 두 세계를 여러분께 가교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일본 사상가, 철학자인 우치다 다쓰루(74)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그가 쓴 책 『목표는 천하무적(박동섭 옮김, 도서출판 유유)』과 『용기론』(박동섭 옮김, RHK)이 같이 나오는 걸 기념하며 강연과 행사가 잇달았다.

    우치다 다쓰루는 에마뉘엘 레비나스, 즉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계 철학자(1906~1995)의 제자인데, 40년 이상 프랑스 문학과 사상을 연구해 왔으며, 또한 50년 동안 합기도를 수련해 온 무도인이기도 하다. 2011년 퇴직하여 자택 겸 도장인 ‘개풍관’이라는 합기도 도장을 열 정도로 진지하게 무도를 수련하고 있다. 학계의 전문용어를 일상의 언어로 능수능란하게 표현하는 그는, 한일 양국의 대중에게 배움에 대한 철학, 신체를 다루는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교사들의 교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노동을 기피하는 젊은층에 대해 쓴 『하류지향』이라든가, 『스승은 있다』 (박동섭 옮김) 등, 시장 논리를 교육에 마구잡이로 적용하는 풍조를 비판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무도인・독자・기자들의 환대

    2025년 5월 28일 저녁,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LG아트센터에서 개최된 ‘우치다 다쓰루 한국 강연’ (UCHIDA TATSURU MOVEMENT)은 감각적이면서도 세련된 환대 가운데 이루어졌다. 뮤지션이자 ‘책방 무사’를 운영하고 있는 요조가 사회자로 나섰다. 일본어 통역은 전 아사히신문 기자로 최근 『지극히 사적인 일본 (틈새서점)』이라는 책을 낸 나리카와 아야 씨와 ‘세계에서 유일한 우치다 다쓰루 연구자’를 자처하는 박동섭 이동연구소장이 함께 진행했다. 두 나라의 언어를 그대로 옮긴다기보다도 ‘우치다 선생을 사랑하는 한일 팬들의 모임’이라고나 할까, 열띤 ‘문화 번역’을 방불케 하는 유별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일본인을 포함해 무도인, 독자, 기자 등이 서로 융・복합을 자아낸 행사였다. 


    이번 우치다 다쓰루 행사를 기획한 IVE의 송주환 대표는 “무도가이자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가 한국인들에게 보낸 신호에 반응해야만 했다고 느꼈고, 만약 한국이 가진 에너지와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만나서 화학적 반응이 일어난다면 두 나라가 이룩할 ‘무브먼트’가 생겨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치다 다쓰루와 14년 전에 처음 만난 뒤 줄곧 그의 사상을 소개해 온 박동섭 소장은 “제자이자 열광자로서 한 사람이라도 팬을 더 늘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스승에 대한 존경의 염을 숨기지 않았다.

    박동섭 소장은 짧은 발표동안 “모항(home port)”이라는 비유를 들었다. 우치다 다쓰루 사범과의 ‘사제 관계’에 대해 말할 때는 피가 끓을 정도라고도 했다. 모항을 가진다는 건 “언제든지 돌아갈 항구가 있다”는 무의식이 있음으로 하여, 더욱 힘차게 항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는 모항에서 훨씬 먼 곳까지 모험의 여정을 나설 수 있다. 그렇게, 우치다 다쓰루 사범은 그에게 “모항적”이라는 것이다.*

    그도 스승의 깊은 뜻을 이으려 “모항”이자 “등대”가 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 박 선생은 항도 부산 출신이며, 우치다 선생 역시 항도 고베에 거주하고 있다 - 옮긴이)
    (** 원문 衣鉢を継ぐ; ‘의발’은 고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오의 - 역주)

    송 대표와 박 소장이 한 시간 남짓 발표를 하고 난 뒤, 드디어 우치다 다쓰루가 관객들의 기대를 정면으로 받으며, 새카만 무대를 배경으로 마치 숙련된 배우와도 같이 여유만만히 등장했다. 짙은 회색 재킷 안에 받쳐입은 새하얀 리넨 셔츠 조합은 무심한 듯하면서도 맵시있었다. 청바지에 맞춘 캐주얼한 신발은 뒤축이 조금 닳아 있었지만, 합기도 7단에 걸맞는 신중한 발걸음이 몸에 배어 있는 듯했다. 탄탄한 어깨,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남성 무도인이 소유한 다부진 손마디가 유연하면서도 다부진 움직임을 나타냈다.


    우치다 다쓰루는 스스로 “마르크시스트가 아닌 마르크시앙”임을 천명한다. 그의 스승 되는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마르크스의 언어로 말하는 인간”을 가리켜 “마르크시스트”라고 불렀으며, “마르크스의 사상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인간”을 “마르크시앙”으로 따로 구분했다. 우치다 다쓰루에 따르면 일본에는 1870년부터 15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마르크스 연구실적이 축적되어 있으며, 개중에는 고난의 시절 또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연구가 항상 지속되어 온, 전 세계적으로 봐도 드문 나라라고 한다. 특히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로 한일 양국에서 익히 알려져 있는 사이토 고헤이가 대표적인 마르크시앙이라고 언급했다.


    마르크시스트(Marxiste)가 아닌 마르크시앙(Marxien)

    “저는 열여섯 살 때부터 마르크스를 읽고서* 그 사상을 혈육화한 바, 일상의 언어로 마르크스의 사상을 논하는 ‘마르크시앙’입니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알지 못하고서는 어떠한 나라의 역사도, 어떠한 현대철학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요. 한국 역시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게 말을 걸어주신 것 같습니다.”

    (* 1960년대. 손꼽히는 명문 도쿄 히비야 고등학교 잡지부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셨다 함. - 옮긴이)


    그의 말마따나, 최근 서울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친 지 35년 만에 수요가 없다는 이유로 강의를 중단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마르크스 강의를 부활시키라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높았으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에 1,500명 넘는 희망자가 몰려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집단무의식적으로 마르크시앙과 만나고 싶다는 마음 속 깊은 열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치다 다쓰루는 말을 이었다.


    우치다 다쓰루는 한국의 독자들이 “무도적인 요소들”에도 결핍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한중일은 200년 전까지 “무도적 사고방식”을 가지고서 서로 교류해 왔는데도, 지금은 그 명맥이 끊겨버린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우치다 다쓰루가 말하는 “무도”란, 한자로 “도를 닦는다는 뜻의 「수修」”자를 쓰며, 한국인이 「수행」이라고 칭하는 심신의 실천을 가리킨다. 이번에 새로 펴낸 『목표는 천하무적』이라는 책에서도 우치다 다쓰루는 “무적이란 적이라고 할만한 정도의 것이 존재하지 않는 평온하고도 너른 경지”라고 썼다. 종교적 용어로 ‘각성’, ‘열반’, ‘해탈’에 가깝다. 한마디로 “득도의 경지에 이른다”는 얘기다.


    “종교적 신앙이나 수행은 모두 무한 소실점을 향해 그저 걸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수행의 ‘수’는 스승의 등 뒤를 바라보며 담담히 걸어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생동안, 지혜와 힘을 함양하는 노력에는 끝이 없다. 스승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단 뜻입니다”


    그는 자신의 합기도 스승인 다다 히로시(95)에 대해서 언급한다. 50년 전, 왜 아이키도를 배우러 왔냐고 스승이 물어보자 젊은 시절 우치다 다쓰루는 “싸움을 잘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스승은 어리석은 제자에게 “그런 이유로 시작해도 된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 후 우치다 다쓰루는 철학적 스승인 레비나스의 이론을 배우면서, 자신의 무지가 프랑스 어학 실력이나 철학 관련 지식 부족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미숙에 따른 것이라는 인식에 이르렀다.


    “레비나스의 제자가 되고 난 뒤, 저는 제가 갖고 있던 정보라든지 지식을 버리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레비나스를 읽어나가며 제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점은 기쁜 일입니다. 무언가를 배우면서 모르는 것과 마주쳤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축이 연구자이며, 기쁨을 느끼는 게 바로 제자입니다. (웃음) 스승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깨달으며 스스로 정진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사제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합기도 스승에게서 얻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수련을 하되 다른 이가 하는 것을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점이었다고 술회한다. 20대 후반 무렵 다른 이를 비판한다고 해서 자신이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치다 다쓰루는, “경쟁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논객으로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치다 다쓰루는 모진 언사로 무장한다든가 상대의 논리를 무너뜨리는 논쟁은 아무와도 한 적이 없다. “논쟁에서 지면 애가 타고, 논쟁에서 이기면 승리했다는 사실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꾸준하게 제 저서를 읽는 까닭도 또한 승리나 경쟁에 집착하지 않는 삶의 방식에 대한 희망과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라고 우치다 다쓰루는 재차 물음을 던졌다.


    “제가 할 수 있는 아주 조그만 역할이란 일종의 건너갈 다리가 되는 것 뿐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축적한 체험 기억 아카이브에서 꺼내가시라고, 반자본주의와 커먼의 재생을 발견토록 하는 매개체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제가 발하는 신호이자 MOVEMENT겠지요.”


    우치다 다쓰루는 ‘신체 사상가’다. 『목표는 천하무적』에서도 무도의 본질은 부단히 자기 쇄신하는 것이며, “다른 이의 심신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촉수를 뻗치는 일”이라고 썼다. 집안일을 해내는 능력은 다른 이가 보내는 구조신호를 몸으로 감지하는 능력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며, 일종의 측은지심과도 통하는 성격이 있다고 설명한다. 다른 이와의 공생을 중시하지 않는 것, 남을 돌보는 일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고방식, 한정된 자원을 서로 빼앗으며 승자가 모두 가져가는 무한 경쟁 같은 것들을 가르치는 교육이 세상을 망치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교육의 위기가 심각합니다. 신체 감각을 둔화시키도록 배우는데, 원래 그들에게 잠재되어 있을 그런 신체 감각을 잃어버린 학생들은 결국 자기 몸에 대한 호기심이라든지 경의를 잊게 됩니다. 기록 경신, 승리를 주안점으로 삼는 스포츠, 정형화된 체육을 강조하는 일본의 학교교육이 그릇된 신체관을 육성하게 되는 것이지요.”


    한국과 일본, 어찌 잘 지낼 수 있을까

    우치다 다쓰루는 제국주의라든지 식민지가 입은 전쟁 피해에 대해 일본에 무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일본의 지식인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에 줄기차게 사죄를 요구하는 이유는 일본이 사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표는 천하무적』)라고 거듭 밝히고 있다. 극우 세력이 만연하고 있는 일본이라는 환경에서 참으로 용기있는 발언이라고 아니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많은 한국인은 신체적 차원에서 일본인한테 느끼는 불안이 있다. 감동적인 일본 영화에 우익 자본이 들어가 있다든가, 좋아하는 브랜드에 우익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다든가 하는 소식을 접하면서 드는 배신감도 이에 못지 않다. 이렇게 된 이상 서로 어지간히 문화를 교류하고 있는 한편 더 나아가 대안적인 삶의 방식과 커먼을 공유하려는 두 나라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서로 이러한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이에 관해 우치다 다쓰루는, 신체 감수성까지 지배하려 드는 이데올로기적 권력작용을 문제시한다.


    “신체적 공포는 이데올로기의 횡포에 대한 공포입니다. 수행을 하려거든 어제의 자신을 버리고서, 연속적인 자기쇄신을 이뤄야 하건만,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에 집착하고 드러누우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 역시 (이데올로기적 폭력과 권력에 느끼는) 혐오와 공포가 있습니다. 그러한 고정관념을 어떻게 해체해 나갈 것인가가 제 연구 주제이며 또한 사명이기도 합니다.”

    (2025-06-07 07:5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용기론』 『목표는 천하무적』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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