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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소리와 배음Harmonics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6. 21. 15:31

    얼마 전에 초등학교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히라카와 가쓰미랑 내가 함께 졸업한 도쿄의 초등학교로부터 초청받은 것이다. 6학년 학생들 앞에서 ‘63년 전에 자신들과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할아버지 두 명’이서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게 된 셈이다.

     

    히라카와나 나나 초등학생한테 강연한 건 처음이다. 대체 뭘 이야기해야 하나 궁리도 해보았건만, 결국 늘상 하던 대로 하자고 합의 봤다. 듣는이의 연령에 따라 화제를 바꾸지 마라, 강연 상대에 따라 화법을 바꾸는 건 못할 짓이니 일관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강짜 부리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는 ‘인간이 잡(雜)’하다 보니, 이래저래 미세조정이란 게 귀찮을 따름이다.

     

    난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 학생들은 12세가 다됐다. 이제까지 어른들이 하는 말 잘 들으라고 배웠을 것이다. 맞다. 세상 어른들은 자기들이 하는 말을 믿으라고 우리 학생들에게 사회화를 시킨다. 이 세상의 갖가지 것들은 본디 바람직하다는 전제 하에 사회화가 시작되기 마련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열두 살이나 되었으면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만 한다. 뭔고 하니, “세상에는 절대로 믿어서는 안되는 어른이 있다”는 점을 알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믿을 수 있는 착한 사람과 믿으면 안되는 나쁜 사람이 있다. 이를 구별하는 힘을 익혀버릇 할 것. 이게 사회화의 제 2단계다.

     

    이렇게 말하니 학생들은 눈이 뚱그래져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시간이 없으니까 가장 중요한 점 한 가지만 알려준다. 그것은 “목소리에서 배음이 나오는가의 여부”다.

     

    배음이란 게 당최 어떤 것인지 여러분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단어가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걸 우선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배음이란, 합창이나 합주할 때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것만 같은 ‘아무도 내지 않은 소리’를 이른다. 고대에는 ‘천사의 소리’라고 불렸다. 파형 모양이 깔끔한 주파수 배음이 있는 한편, 파형이 흐트러지고 울렁이는 ‘비정수차 배음’이라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인간 한 명이 내는 목소리에서도 배음이 들리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목울대나 혀, 그리고 그밖의 신체부위, 머리뼈 코뼈, 복강 장기가 진동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마음에 스며드는 말”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비정수차 배음이 나오는 경우에 그렇다. 비정수차 배음은 말하는 사람한테서 깊은 감정의 움직임(moving)이 있을때, 입에서 터져나오는 말 말고도 다른 신체부위에서 발생한 진동이 약간의 더딘 시간차를 두고 겹치는 때에 발생한다(아마 그럴 것이다).

     

    진정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발해지는 말에는 뼈나 근육, 장기가 ‘찬의’를 표하는 법이다. 어떤 말을 들었는데, 게서 비정수차 배음이 들린다면, 그 말은 거짓이 아니다. 어지간히 숙달된 사기꾼이 아니고서야, 혀끝에서 나오는 거짓은 다른 신체 부위를 공진시킬(resonating)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신체는 잔재주가 안먹힌다.

     

    앞으로 여러분은 이런저런 어른들로부터 ‘이거는 하고, 저거는 하지 마라’라고 명령이나 지시를 받게 된다. 그 내용의 참 거짓을 판정할 수 있을 만한 힘이 여러분에게는 아직 없다. 그래도, 배음이 과연 들리는지는 귀를 기울여 보면 알 수 있을 게다. 일본어 속담에 ‘마음의 귀를 기울이면 소리 없는 소리가 들린다’라는 말이 있다. ‘소리 없는 소리’는 아마 배음을 이르는 것이렷다.

     

    어려운 주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여러분이 큰 타격을 입지 않고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참된 어른의 목소리를 듣고서, 그 말에 따라야 할까 말아야 할까 판단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라고 이야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이 보낸, 그리고 마음이 담긴 ‘소감’을 받아볼 수 있었다. 필자의 말이 그들의 ‘마음의 귀’에 닿았는가 보다.

     

    (주간금요일 5월 21일)

     

    (2025-06-05 10:23)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용기론』 『목표는 천하무적』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독자 참여 코너: 혹시 요즘 한국 중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가르칠 때 ‘비정수차~’에 해당하는 정확한 용어를 아시는 분은 댓글 주세요. 혹심한 ‘수포자’라서요. 🥺 일본에서 건너온 여러 학술 용어가 그간 바뀌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일본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 님이 어딘가에 남기기를, “만약 당신이 젊고, 우치다 타츠루를 읽는다면, 나는 당신이 매우 부럽다고 아니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똑같은 말을 누군가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습니다. 아 그리고요, 제가 출판업 관계자로서 거기에 임석했다면, 체면 불구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자네들에게』를 즉흥적으로 홍보했을 텐데요. 아니면 한국 싱어송라이터 요조 님처럼 신앙 간증(??)이라도 했어야 했을 판입니다.

     

    (인간이 잡상인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도대체 낫세 얼마나 되었다고 잘도 이런 소리를 하는지? ☺️)

     

    다음 글은 길어도 “일생에”! 한번쯤 꼭 읽어볼 가치가 있어서 소개드립니다.

    스피커와 음향에 관한 글인데, 언급된 배음에 대한 설명도 있습니다.

    배음이 그토록 신비한 현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딱딱한 과학적 이론을 적게 차용하고도, 정말 신체로 느낄 수 있으면서,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가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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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세이노 선생 글을 자주 소개드리는 까닭은… 약 십년 전 군대 시절 “뭔가 다른 형”이 항상 푸르스름한 표지의 제본책(정식출간 이전이지요)을 끼고 있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친절의 표본과 몸소 교류한 경험이 있어요. 말년 때 하루에 세마디도 못 하고 살았을 정도인데, 그 형이 말도 걸어주고 책도 많이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알랭 드 보통, 마이클 샌델, 제레미 리프킨, 빌 브라이슨, 소설 제노사이드.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형이 저한테 한 번도 세이노 책 읽으라고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항시 소중히 간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을 따름입니다. (병실 스테이션 당직 서면서 읽었으리라 추측합니다.)

    돌이켜보면, 글쓰기와 책 권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너무 부족한 저에게 근무 시간에라도 책을 읽으라고 해주신 저희 대위님도 그렇구요…

    ‘오길비의 자료기지’는,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의 호의가 지나는 통로와 같은 것입니다. (우와, 저도 이렇게 멋진 말을 할줄 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