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버 어치버와 언성 히어로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6. 17. 15:59
젊은 연구자와 기술의 미래에 관해 대담할 기회가 있었다.
상대가 되어준 분은 호세이 대학 준교수인 이순지 씨. 소수의 플랫포머가 시장과 사고를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인 ‘테크노 봉건제’로부터 어떻게 이탈하여 민주제와 커먼을 재생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 기술적인 방법에 관해 귀중한 지견을 들을 수 있었다. 젊은 사람과 얘기하다 보면 이 외로운 노인의 머릿속에도 ‘킥’이 들어오니 참으로 자극적이다.
도중에 ‘어떻게 커먼을 착수할 것인가’ 하는 실천적 화제로 이어졌다. 이 화제에 관해선 필자도 조직인으로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경험지의 축적이 있으므로 생각 나는 점을 말했다.
조직을 만들면 반드시 ‘남보다 많이 일하는 사람’과 ‘남보다 적게 일하는 사람’이 생겨난다. 이는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이때 ‘무임승차자 색출’을 해서는 안된다. ‘집단에 공헌하는 분량 이상으로 분배를 받아가는 자는 누구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서는 안된다. 왜 그러냐 하면, 무임승차자를 찾아내서 처벌하고 배제한다 하더라도, 집단의 산출물(outcome)은 조금도 향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 못 하는 녀석’을 애써 찾아내고자 그 심사에 들이는 ‘조직 관리 비용’은 어떠한 가치도 내놓지 못한다. 순수한 소모이다. 이것은 오랜 시간 조직의 관리직을 맡아왔던 인간으로서 자신감을 가지고서 단언할 수 있다. 그럴 여유가 있다면 ‘남보다 많이 일하는 사람(over-achiever)’이 더욱 기분 좋게 일하도록 환경을 정비하는 게 훨씬 집단의 퍼포먼스를 향상시킨다.
가만히 보면,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술지(技術知)*에 관해 가지각색의 언설을 섭렵해 보았건만, 여태껏 ‘오버 어치버’라는 문자열을 목도했던 기억이 없다. 무임승차자를 낱낱이 가려내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다양한 (그리고 험악한) 아이디어가 제안되고 있는 반면, 오버 어치버가 더욱 기분 좋게 일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주면 좋은가에 관해선 일본의 경영자가 지혜를 짜낸 형적(形跡)이 없다. 어째서일까?
(* 우치다 선생이 지어낸 말 – 옮긴이)
아마 오버 어치버는 ‘자기 개인의 업적 향상’이 아닌 ‘집단 전체의 퍼포먼스 향상’을 목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오버 어치버는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동료들을 넘어뜨려서라도 눈에 띄려고 하는 그런 인간 부류가 아니다. 언제나 그 사람 주위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고, 다양하고도 기발한 창안[創意工夫]이 속속 제안되는 기분 좋은 장[場]을 만들어내는 인간을 가리킨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평가’라든가 ‘심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전부 개인 대상으로 하는 성적에 관해서다. 그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집단 전체가 구석구석 향상되는* 활동 (실무에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은 애초에 심사할 항목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 원문 底上げ – 역주)
이전에, 후쿠오카 신이치 선생으로부터 ‘언성 히어로(칭송받지 못하는 영웅 unsung hero)’라는 단어를 배웠던 적이 있다. ‘칭송받지 못하는 영웅’이란, 그 사람의 아주 작은 배려 덕분에 집단이 파멸적인 피해를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 공적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본인도 모르는) 그런 사람을 이른다. 그 사람이 지나가다 제방에 조그마한 구멍이 난 빈틈으로 물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서, 발 밑의 작은 돌을 거기에 꽂아넣어 두었다. 그 덕분에 태풍이 왔을 때 그 제방은 무너지지 않고 버텼으며, 마을은 재난을 면할 수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작은 돌을 주워서 구멍을 막았던 사람은 자신이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집단의 존립을 좌우하고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경쟁 사회에서 ‘칭송받지 못하는 영웅’은 말 그대로 ‘칭송받지 못하는’ 까닭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보다는 자신의 공적을 큰 소리로 떠벌리는 인간이 높은 점수를 획득한다. ‘오버 어치버’와 ‘언성 히어로’ 모두 일본어에 적절한 번역이 없다. 따라서, 이 두 키워드로 조직을 말하는 지적 습관이 현재 일본 사회에는 없다.
이순지 선생과 테크놀로지의 미래에 대해 대화하며 그 점이 불안해졌다. 이 두 개념을 빼놓은 채로 기술과 공동체의 미래를 말하는 게 과연 가능할 것인가.
(야마가타 신문 「직언」, 5월 1일)
(2025-05-16 17:00)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용기론』 『목표는 천하무적』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드리고 싶은 여러 말씀】
○ 제방을 막은 이야기는, 물론 비슷한 유가 많을 것이지만, 유럽 어느 설화였던 것으로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일 가능성이 높겠지요? 게르만 쪽이었는데요. 소년 이야기였습니다. 그 소년은 칭송받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정보기술과 금융(이른바 소규모 개인 투자자 ‘개미’와 그들의 일반적인 심성을 포함합니다)은 서로 친화성이 몹시도 좋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사실 제가 한 말이 아니고, 故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탁견입니다.)
○ 우치다 선생님은 근자에 고베여학원 평의원으로 취임하셨습니다. 💐
아시다시피 우치다 선생님 텍스트를 한국어로 번역한 책은 현재 시점에서 쉰 권이 넘습니다.
개중에는 우치다 선생님을 고베여학원대학의 ‘학장’으로 소개하는 책도 꽤 많았던 것으로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학장은 총장에 상응합니다’라고 자상하게 설명한 경우도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진노 아키토 씨의 ‘우치다 다쓰루 연보’에 따르면, 선생님께서 학장을 지내셨던 형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교무부장으로 오래 재임하신 사실이 분명합니다. 저는 그걸 알고 무심코 화가 났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고베여학원은 우치다 선생님께서 퇴임하실 때까지 작정하고 부려먹은 것 아니냐 하고요.
아무쪼록, 이번 일은 모두가 축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여러분 알고 계시죠? 제가 진심으로 존중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보기와 다르게 엄청 건방지죠. 아, 싫어라.)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국 헌법의 주체 (0) 2025.06.20 친절한 가부장제 (0) 2025.06.19 【선착순】 구소련 「다ー차」가 하나씩! (0) 2025.06.17 사가판 일본헌법론 (0) 2025.06.17 「곤도 세이쿄를 논한 소회」 (월간일본誌 인터뷰) (0) 202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