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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 세이쿄를 논한 소회」 (월간일본誌 인터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6. 16. 16:37
ーー 최근에 쓰신 『일본형 코뮌주의의 옹호와 현창: 곤도 세이쿄 그 인물과 사상』 (한국어판 가제 - 역주) 속에서, 우치다 님은 20세기 초중반 아시아주의・농본주의를 주장한 대표적인 일본 사상가 곤도 세이쿄의 아이디어를 재평가하고 계십니다.
우치다 곤도 세이쿄는 ‘성왕(聖王)과 양민’이 중간적 권력 장치를 배제하고 직접 결부되는 ‘군민 공치’ ‘사직 자치’를 이상으로 삼는 정치사상을 제창했습니다. 정치 사상 자체로는 완성도가 결코 높다고 할 수 없지만, 일본인이 외래의 사상에 기대지 않고서 자력으로 탄생시킨 독창적 정치 사상이라는 점은 틀림없습니다.
여느 국민 집단이나 자신들의 존재 이유, 존재 근거를 밝히는 고유의 ‘서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현실의 정책이 그 서사와 합치되어 있으면, 그것은 강한 현실변성력*을 갖는데, 서사와 어우러지지 않는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현실을 바꿀 만큼의 힘은 갖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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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実変成力. 우치다 선생이 지어낸 말 – 역주)
현재 일본은 심각한 국난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구구한 정치적 입장의 다름이나 계급의 차이를 뛰어넘어, 국민적 규모의 차원에서 하나로 수렴하는 정치적 사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의 고유한, 토착 사상이어야만 합니다. 바깥에서 ‘다 만들어진 정답’을 갖고 와도 쓸모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곤도 세이쿄의 정치 사상은 분명 이론적으로 그리 정밀하다 할 수 없거니와, 현실 정책에 반영하기에는 너무나 관념적입니다. 하지만, 틀림 없이 일본의 토양에서 태어난 사상입니다. 국난적 위기가 들이닥치는 때에, 거대한 정치적 에너지를 일깨우려면 곤도와 같은 토착 사상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ーー 우치다 님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위기를 어떻게 보십니까.
우치다 세상은 틀림없이 대혼란에 빠져있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마구잡이로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일종의 방향성이란 게 있습니다.
또렷하기로는 초강대국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잃는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정권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며 유엔을 중심으로 한 세계 2차 대전 이후 국제질서로부터 퇴각하려 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이래 미국의 80년 리더십은 꽤나 기만적인 구석이 있기는 했어도 ‘민주주의 전파, 인권 옹호, 과학기술 진보’라는 ‘대의명분’만큼은 어떻게든 붙잡아 왔습니다. 그 속내가 ‘미국만 좋으면 만사가 좋다’ 할지라도, 대의명분상 ‘세계와 인류를 위해 미국은 희생하겠습니다’ 하는 ‘솔선수범’*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러한 ‘위선’을 일소에 부쳤지요. 세계 모든 나라가 자기 국익의 최대화만 바라보고 멋대로 행동하고 있는 마당에, 어째서 미국만이 ‘전 세계를 위해’ 돈을 내고,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되냐는 거예요. 어찌하여 미국은 ‘불량 국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인가. 그럴싸한 겉치레를 내팽개치면, 미국은 틀림없이 ‘세계 최강의 불량배 국가’가 됩니다. 글로벌 리더가 되기보다도 내멋대로 하겠다, 트럼프가 하는 말은 결국 그것입니다. 그 조포(粗暴)한 본심에 미국 유권자의 과반이 지지를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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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은 痩せ我慢. - 역주)
홉스, 로크, 루소 등 근대 시민 사회론이 갈파했던 내용에 따르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세상에서는, 아무리 강한 개체조차 안정적으로 자기이익을 확보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정말로 인간이 이기적으로 처신하고자 한다면, 애써 사적 권리의 일부를 양도하고, 사적 재산의 일부를 공탁함으로써 ‘공공’을 닦아나갈 것이다, 그런 이로(理路)가 있었습니다. 유엔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기관은 그런 아이디어를 국제사회에 적용했던 결과물입니다. ‘모든 나라가 서로 모든 나라끼리 싸우는’ 상황을 멈추기 위해서는, ‘공공’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발상에서 유엔과 유엔군이 창설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는 바와 같이, 이러한 아이디어의 현실화는 시민 사회의 그것만큼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연맹,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연합, 이렇게 두 번의 국제 협조주의를 해보았지만, 둘 다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근대 시민 사회 모델을 국제 정치에 적용하는 건 아무래도 어렵나보다 하고 인류는 학습했습니다. 이렇게, 20세기 이전처럼 ‘제국 주도의 세계 질서’로 회귀하기를 작정했습니다. ‘역사의 서랍장’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국제 사회가 나름대로 질서를 지니던 스킴(scheme)을 살펴보자니, 그것밖에는 찾아낼 수 없었던 거예요.
제국이 와해하여, 국민국가로 분할되었던 건 19세기 말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렇듯 제국이 해체된 가장 큰 이유는 ‘제국 모델을 갖고서는 국민국가를 상대로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을 나폴레옹이 증명해냈기 때문입니다. 제국 모델로는 ‘총력전’으로 싸울 수가 없습니다. 정부와 군대 뿐만이 아니고, 재계, 학계, 언론이라든지 후방의 시민 모두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모델은 국민국가밖에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유럽 사람들은 앞다투어 제국을 해체하고, 국민국가 체제를 정비했습니다.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이유도 이와 비슷하게, 제각기 번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276개의 정치단위가 병립하는 ‘제국 모델’ 비슷한 막번 체제 그대로 갔다가는 타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까딱 열강의 식민지가 될거라는 실존적인 위기감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홀번이었던 조슈가 영불미란이라는 4국연합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사쓰마가 영국과 전쟁을 벌여 패배한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분명히 국민국가로 거듭난 일본은 전쟁을 잘했습니다. 열강이 시도하던 식민지화를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국민국가 모델이 되고 보면 나라끼리 다툼이 일어났을 때 이를 조정하고 중재하며, 시비를 가릴 ‘상위 심급’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을 유엔의 기능불량으로 말미암아 톡톡히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국민국가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민국가 이전의 스킴으로 돌아가야 한다... 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내 추리입니다.
앞으로 세상은 옛 중화제국, 옛 러시아 제국, 옛 신성 로마 제국(유럽연합), 옛 무굴 제국(인도), 옛 오스만 제국(중근동), 신미 제국 등 여섯 개의 제국권으로 재편되어 갈 것이란 게 내 생각입니다. 미제국이 몰락해가고 있는 지금, 혼자서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제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국은 상호간 국내질서에는 간섭하지 않고서, 제각기 세력권을 정해 ‘영역 나누기’를 할 겁니다. 그렇게 잠정적으로는 ‘지금보다 나은’ 세계질서가 도래하겠지요. 아마 이러한 전망을 많은 사람들이 하게 된 걸겁니다.
제국의 세력권이 확정될 때까지 과도기에는 소규모 전쟁이나 국지전이 이어지겠지요.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연합 제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의 세력권 확정을 놓고 다투는 충돌이거니와, 대만에서 사태가 터질 경우 이는 곧 미제국과 중화제국 사이의 세력권 확정을 둘러싼 충돌의 형태로 일어날 겁니다.
ーー ‘제국의 재편’이라는 상황 속에서 일본은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까?
일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우선 ‘계속 미국의 속국이 된다’, ‘중국의 속국이 된다’, ‘독립한다’ 이렇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층은 첫 번째 선택지밖에는 머릿속에 없습니다. ‘일미 동맹 기축’ 말고는 국가 전략을 생각해본 적이 없으므로, 어쩔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현재로서는 ‘트럼프 황제’의 자의적인 명령에 따라 국방 예산을 차곡차곡 증액해 미국산 무기를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주일 미군 기지 관련 ‘눈 먼 예산’을 증액하며, 헌법 9조를 폐지하여 자위대를 미군의 ‘2선’으로 파견하는…… 그런 식으로 오로지 미국의 심기를 살피며, 실질적으로 나라를 조금씩 조금씩 팔아먹는 것 말고는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자민당이라면 두 번째 선택지도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일지 모릅니다. 일본은 화이질서 속에서 ‘고도의 자치를 허가받은 동이 속령’이었습니다. ‘친위왜왕’이라는 관직명을 하사받은 히미코부터 ‘일본국왕’을 자처한 아시카가 쇼군, ‘일본 대군’을 내세운 도쿠가와 쇼군까지 1600년 동안, 메이지 유신 때까지 일본의 위정자는 형식적으로는 오랫동안 변경 자치구의 ‘왕’이었습니다. 일본이 화이질서로부터 이탈한지 아직 150년밖에 지나지 않은 셈입니다. 애초에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 자체가 ‘중국에서 봤을 때 동쪽’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좋다고 나라 이름으로 해놓았어요. 막부 끝자락 때는 ‘일본’이라는 국명을 폐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독립을 이룰 수 없는 법이라고 주장했던 교격(矯激)한 지사도 있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찬동하여 ‘일본이라는 굴욕적인 국명을 폐하라’ 하는 지사는 뒤를 잇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화이질서 코스몰로지는 일본인에게 깊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시진핑이 ‘천황제와 민주정에는 손을 안 대겠다’고 약속해 준다면, 일본인은 비교적 선뜻 중화인민공화국의 변경으로서, 중국에 ‘조공’하며 사는 길을 모색할지도 모릅니다.
가장 바람직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제 3의 선택지입니다.
예전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일본을 중화문명이나 서구문명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 문명권으로 취급했습니다. 헌팅턴이 책을 썼던 1990년대에는 일본에 그만한 잠재 국력이 있을 거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미국의 속국 신분에 매우 익숙한 나머지, 이제 홀로 선 제국을 창건할 만큼의 기개나 실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이 어떠한 제국에도 귀속하지 않고, 독립을 이룩하기를 바란다면, 고유의 지정학적 포지션을 활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제국의 ‘서쪽 변경’, 중화제국의 ‘동쪽 변경’이라는 애매한 위치를 살려서, ‘제국의 틈새’를 기화(niche)로 삼아 살아남을 기회도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일 양국은 지정학적 측면에서 운명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립을 하겠거든 ‘한일 동맹’이 ‘베스트’ 방책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한일 양국 공히 보태면 인구 1억 8,000만 명, GDP 6조 달러(세계 3위)에 달하는 거대한 경제권이 탄생합니다. 군사력을 살펴봐도 현재 일본이 세계 8위, 한국이 5위이므로 미중 양대 제국의 틈새에 매몰될 우려는 없습니다. 그리고, 미중과 등거리 외교를 전개하여 중립 지대를 형성합니다. 제국과의 동맹이라는 ‘연횡’책이 아니라, 중규모 국가가 규합한 ‘합종’책을 취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열강의 지배에 맞서 한일 양국이 손을 맞잡자’ 하는 서사는 일본인 입장에서 낯익을 것입니다. 옛날에 곤도 세이쿄, 우치다 료헤이, 스즈키 덴간, 다루이 도키치, 미야자키 도텐 등은 조선의 전봉준이라든지 김옥균 등과 함께 일한동맹을 도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아시아주의자들은 ‘일한동맹’의 본뜻을 잃고서, 열강을 흉내내 조선을 ‘병합’하는 우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애초의 동기에는 순수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금 ‘일한동맹’의 가능성을 타진하려면, 메이지 20년 무렵까지 되돌아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가 『일본형 코뮌주의의 옹호와 현창』을 쓴 이유는, 곤도 세이쿄를 도구삼아 ‘한일동맹’ 구상을 그 원점에서 음미하기 위해서입니다.
ーー 제국의 재편과 함께, 일본 국가도 해체가 될 우려가 다소간 있습니다.
우치다 일본 역시 경제 양극화가 확대되고, 지역・혈연 공동체가 붕괴되어 개인이 원자화되며, ‘공공’이 빈약해지고, 국가적 통합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국민적 통합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공공을 넉넉하게 하는 즉, ‘커먼의 재생’이 불가결합니다.
곤도 세이쿄는 ‘성왕과 양민’이 중간적 권력 장치를 배제하고 직접 얽히는 ‘군민 공치’ ‘사직 자치’라는 일본형 코뮌주의 속에서 일본 부활의 길을 찾았습니다. 나는 이 아이디어가 기본적으로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체의 중간권력장치를 폐한 ‘군민 공치’라는 정치 체제는 과거 일본에서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현 불가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상으로 목표로 두는 것만은 가능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실현 불가한 이상을 가져야지만 현실을 바꿀수 있는 법입니다.
곤란한 이상을 내건 사람을 ‘비현실적이다’ 하고 비웃는 사람이 있는데, 아무런 이상도 가지지 않고서 그저 현실을 추인할 뿐인 인간은 결코 현실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후수에 걸려든’ 인간은 반드시 집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정치 세계에서 ‘선수를 잡는다’ 하는 것은, 실현 곤란하다 할지라도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이상을 내거는 것입니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우직히 걷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길 한복판에서 쓰러진다 하더라도 아무런 아쉬움이 없습니다.
‘일본형 코뮌주의’란, 사이즈가 각기 다른 사직, 즉 코뮌이 열도에 병립하는데, 그것을 천황이 상징적으로 느슨하게 통합하는 통치 모델을 이릅니다. 태고적 기원을 갖는 천황제와 근대적인 입헌 데모크라시를 양립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지난한 과제입니다. 과거에 유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딘가에 이미 만들어진 ‘정답’이 있어서 그것을 적용시키면 되는 그런 게 아닙니다. 세상의 누구도 우리 일본인을 대신해 ‘이렇게 하면 돼’라고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일본인이 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빙탄 불상용’한 두 통치 원리를 양립시키기 위해 갈등해 나가는 그런 정치 단위로 살아간다는 건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닙니다. 미국이 바로 그렇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원리적으로 양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든 절충하려는 노력을 통해 미국은 스스로 국력을 증대시켜 왔습니다. 지금 미국이 몰락하고 있는 이유는 ‘자유와 평등이 양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하나를 포기한다)’는 단순한 통치 원리에 사람들이 매달리기 시작한 탓입니다.
사람은 갈등을 통해 성숙합니다. 이는 집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갈등은 싫답시고 단일한 원리로 통치하려 들면 그 나라는 쇠퇴합니다. 해밀턴과 매디슨 등이 쓴 『연방주의자 논고』와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을 나란히 놓고 보면, ‘자유와 평등의 갈등’을 온전히 받아들였던 건국의 아버지들이 지닌 정치적 견식의 깊이와, 현재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단순한 초자유주의(이긴 자가 모두 가지고, 패배한 자는 노변에서 객사함으로써 사회는 가속적으로 변화해 나간다)가 내포한 유아성이 대비되는 나머지 경탄할 지경입니다.
우리가 곤도 세이쿄식 사직공동체의 이상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코뮌을 통합시키는 기능은 수행하면서도, 결코 중간권력화하지 않는 통치기구’를 구상해 내야만 합니다. 이때에 나는 해밀턴 등의 연방주의자들이 내걸었던 정치적 이상이 그 참조해야 할 토대가 될 것으로 봅니다.
독립 선언 이후, 합중국 헌법이 제정되기까지 11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던 이유는, 독립된 13주 주정부에 원래 있었던 정치적 실력을 맡길 것인가, 아니면 연방정부에 상비군을 포함한 거대 특권을 위탁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페더럴리스트(연방파)는 연방 정부에 커다란 권한을 맡기라고 주장했는데, 많은 국민은 자신들에게 친숙한 주정부가 정치적 실력을 유지하고, 연방은 그저 형식적인 연합에 머물기를 바랐습니다.
해밀턴은 이때 연방파를 대표하여, 가령 버지니아 주에 영국군이 침공했을 때에, 코네티컷 주가 ‘옆나라(state)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돈을 쓰고 피를 흘릴 도의적 의무는 없다’는 얘기를 그제야 꺼내면 어떻게 합중국의 독립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공상적인 가설이 아니라, 일본에서 실제로 막부 말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조슈 번을 4개국 군대가 쳤을 때도, 영국이 사쓰마 번에 쳐들어왔을 때도, 다른 번들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했습니다. 여느 정치 단위를 통합한 정부(연방 정부/메이지 정부)가 없으면 나라를 보전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일본형 코뮌주의에서도, 열도에 퍼져 있는 여러 코뮌을 통합하는 통치기구가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인터 코뮌 가번먼트’(공동체를 통괄하는 정부)입니다. ‘임금[君]’과 ‘백성[民]’ 사이에, ‘결코 권력화하지 않는 관[官]’이라는 역설적인 정치 기구를 세워야만 합니다. ‘군민 공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그러한 ‘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럼 그것은 어떠한 모양새를 갖추어야 할까요.
이에 대해서도 해밀턴은 깊은 통찰이 담긴 발언을 남겼습니다. 주정부는 동질성 높은 주민들에 의해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질, 종교, 생활문화 측면에서 서로 친근한 사람들끼리 모여있습니다. 주란 것이 공감과 동질성에 바탕을 두어 이루어졌기에, 피가 통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한편, 연방 정부는 관념적인 공작물입니다. 독립전쟁이라는 위기를 넘기 위해 잠정적으로 만들었던 체제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에서 의견의 대립이 일어난 경우에, 대부분의 주민은 ‘사안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주정부 편을 들어 총을 들고 연방 정부와 싸울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정부에 군사력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해밀턴은 논합니다. ‘권력은 사람들이 마음을 허락하는 자의 손바닥에 있는 것보다 사람들이 의심의 눈을 가지고서 지켜보는 자의 손바닥에 있는 것이 무난하기 때문이다’ (제25편). 애초에 코뮌은 세계 어디에나 있었습니다만, 일본형 코뮌의 특징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건 정치적으로 성숙한 사람밖에는 말할 수 없는 지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뮌의 상위에 있으면서, 그것을 통합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정부를 사람들은 항상 ‘의심의 눈을 가지고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통치기구는 ‘공감과 동질성’이 아니라, ‘사회 계약’이라는 ‘관념적인 직조물’ 위에 놓여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로는 곧장 ‘군민 공치’에서 말하는 ‘관’에도 역시 맞아떨어진다고 봅니다. 인민에게 코뮌은 ‘신뢰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인터 코뮌 가버먼트는 ‘의심의 눈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시스템입니다. 다르게 설명하면, 코뮌 즉 사직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유기적 공동체이지만, 인터 코뮌 가버먼트는 사회계약에 바탕을 둔 의제(擬制)라고 해도 좋습니다.
곤도 세이쿄는 ‘그저 아름다운 것만을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에게 ‘군’과 ‘민’은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관’은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군민 공치’의 이상을 염두에 둘 바에는, 중간 권력기구라는 ‘부정한 것’을 놓고서, 그 ‘부정함’을 최소화하는 데 유효한 방법을 지속적으로 사량(思量)해야만 합니다. 그 작업에는 끝이 없지요.
ーー 코뮌과 유사한 개념이 전 세계에 존재합니다만, 일본형 코뮌이란 어떤 모델입니까?
우치다 ‘가부장제’입니다. 에마뉘엘 토드는 ‘가족관계가 정치적 관계의 모델로서 기능하고, 개인의 위신에 대한 관계를 규정한다’ ‘이 메커니즘은 자동적으로 작동하며, 윤리 이전의 차원에서 기능한다’라고 주장합니다. 가족이 곧 국가 모델이라는 메커니즘은 ‘윤리 이전의 차원에서 기능’하기에, 의식적으로 이를 바꿔쓸 수는 없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직계 가족’ (맏형이 가산을 상속하고, 다른 자녀는 자원 분배에서 배제되는) 메커니즘인데, 여기서 일본식 가부장제가 도출됩니다. 1950년대 이후 일본에서 가부장제는 ‘타파(원문 廢絶 - 역주) 해야 할 누습(陋習)’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부장제를 이론적으로 비판하더라도, 국가 모델을 송두리째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를 대신할 국가 모델을 일본인은 단 한 번도 구상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부장제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이설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애초에 ‘세상 만사를 조종하는 강대한 <아버지>가 있다는 것인데, ‘우리의 운명은 그 간섭에 의해 좌우된다’ 하는 상상 그 자체 가운데 가부장제적 사고는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아버지>에 맞설 것인가, <아버지>에 굴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로 생각하는 발상 그 자체가 가부장제를 재생산하고 있는 셈입니다. 진정으로 ‘탈ー가부장제’적인 사고가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 가족이 어떠한 것인지 우리는 해상도 높은 이미지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게 당연하게도, 우리는 그런 가족을 문학, 영화, 만화, 티브이 드라마 같은 곳에서, 단 한 번도 목도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미지가 없다는 게 결여라고 생각해본 적조차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세상에 다양한 가부장이 있는데, 어떠한 가부장이라도 ‘가족 성원 한 명 한 명에 대해 그 <욕망의 소재처>를 숙지하고 있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자신은 가족의 <욕망의 소재처>를 모른다’는 점을 알고 있는 가부장도, 그 사실을 모르는 가부장도 양자 사이의 ‘정도 차이’가 역력히 존재합니다.
자신의 무지・무력을 자각하고, 자신의 주된 임무를 ‘가족의 부양과 보호, 그 시민적 성숙의 지원’에 한정하며, 그 이상 가족의 내면에 깊이 발을 내딛지 않는 절도를 가진 가부장은 ‘비교적 괜찮은 가부장’입니다. 반대로, 가족에 대해 권력자처럼 굴며 가족을 지배하고, 관리하며, 그 능력을 심사하고, 그 삶의 방식을 공연히 간섭하며, 기대를 충족시키기 못한 가족에게 처벌을 가한다면 그것은 ‘쓸모 없는 가부장’입니다. 똑같은 가부장이라도 그 정도의 차이는 각 가정에 따라 상당히 결정적으로 벌어집니다.
일본형 집단은 선택의 여지 없이 가부장제 모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된 이상 일본형 코뮌 역시 내재된 가부장적 성격과 타협을 해야 합니다.
무슨 얘기인고 하면 가부장의 역할은 뭐니 뭐니 해도 ‘맏형’이 되어 독점적으로 상속한 자원을 밑천 삼아 다른 가족을 비호하기로 못박혀 있는 겁니다. ‘맏형’은 다른 가족을 부양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맏형이 맡은 일이란 게 가족을 줄세우기해서 자원을 차등분배하는 게 아닙니다. 설령 문중에 생산성이 전혀 없는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있다 하더라도, 당연히 그 경우 역시 똑같이 부양 의무가 있습니다. 구성원(member) 모두를 ‘깡그리 보살펴주겠다’는 게 가부장의 마음가짐(mindset)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부장제의 기본적 구조는 ‘사제관계’에 그대로 전사됩니다.스승은 선인에게 이어받은 지식과 기술을 제자에게 ‘증여’합니다. 대가를 바라지도 않거니와, 제자를 놓고서 그 상대적 우열을 논하지도 않습니다. 배워가는 모든 자들에게 똑같이 자원(resource)을 나누어 줍니다.
가부장의 으뜸가는 본분은 ‘증여’입니다. 만약 가부장에게 정녕, 형제에게 굴욕감을 안겨줄 권리가 있다든가, 그들의 자유를 제한할 권리가 있다든가, 그들에게서 수탈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자는 직계 가족의 가부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똥에 꼬이는 파리 비슷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부장은 힘이 셀 필요가 없습니다. 오즈 야스지로가 감독한 『고하야카와 댁의 가을』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방탕함에 빠져 살던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가족이 경영하던 술도가가 순식간에 기울게 되었고, 남은 가족이 ‘못미더운 줄로만 알았기로소이 글씨, 그라도 울 아빠 땜시 고하야카와씨 집안이 돌아갔던 거나 마찬가지였던 겨’ 하고 나지막이 내뱉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즈 감독은 이상적인 가부장의 한 모습을 보여준 셈입니다.
가부장은 약해도 됩니다. 친절하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일본형 코뮌주의자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이고의 본질은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자기가 지닌 목숨을 포함해 모든 것을 아낌 없이 바쳤다는 점에 있습니다. 가부장은 다른 구성원(member)보다도 다대한 윤리적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도야마 미쓰루와 곤도 세이쿄가 자기조형을 할 적에 그들은 사이고를 본땄습니다(modeling). 의탁해 오는 자들을 차별 없이 환대하는 ‘친절한 가부장’ 역할을 그들은 스스로 따랐습니다. 사이고가 그리 했기에, 모방한 것이었지요. 그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정치적 차원에서 그게 깊은 의미가 있을 수도 있었음을 충분히 음미한 형적(形迹)이 없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마치 물과 기름 같습니다. 이를 아우르기 위해 프랑스 혁명 당시 지도자들은 ‘우애’라는 제 3의 통치 원리를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우애가 왜 필요한지 철저하게 고찰해야 마땅했는데 민주정 하에서 사람들은 애써 그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자유와 평등은 필수였겠지만, 우애는 ‘별첨품’ 같이 가볍게 여겼던 셈이지요. 하지만 그러면 안 되었습니다. 우애 없이는 자유와 평등 사이의 갈등이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군민 공치’를 내세우는 일본형 코뮌주의에서도 주어진 숙제는 마찬가지입니다. 권력 장치이기도 한 가부장제는 불가피하게 권력화합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독성’을 희석하기 위해서는 ‘우애’라는 정치적 가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안정적인 ‘군민공치’ 모델이란 건 존립하지 않습니다. 군민공치에다가 ‘가부장이 가족에게 주는 무제한적인 우애’라는 감정적인 자원이 끊임 없이 공급*되지 않는 한 일본형 코뮌은 존립하지 않습니다. ‘친절한 가부장제’라는 말에 내가 거는 기대는 그런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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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은 備給. 정신분석 용어 Besetzung/cathexis를 일역한 것임. 리비도 또는 정신적인 에너지가 특정한 대상 또는 관념에 집중되는 상태, 또는 그 발현. 감정자원 및 유책성 등에 관한 논의는 우치다 선생의 노작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을 참조할 것. - 역주)
ーー 에마뉘엘 토드에 따르면 일본은 국제관계를 직계가족 모형으로 투영하기에, 2차대전 이전에는 아시아의 ‘맏형’ 노릇을 자처한 한편, 이후에는 미국의 ‘동생’처럼 굴었던 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치다 가족이 곧 국가로 이어지는 일종의 모형은 무의식적으로 제각기 국민국가의 대외 정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2차대전 이전의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는 ‘연대’에서 ‘지배’로 매끄럽게(seamlessly) 이행하고 말았지요. 이는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도 우애라는 감정자원의 중요성을 아시아주의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았던 바의 귀결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가부장 시스템 그 자체는 방치할 경우 반드시 가부장의 권력화를 초래합니다. ‘절도있는 가부장’보다도 ‘쓸데없는 가부장’ 노릇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쉽게(용이容易하게 - 역주) 휩쓸립니다. 그런 자연적 경도를 그치고서, 되도록 ‘괜찮은 가부장’이 되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우애와 유책성을 그 예로 들 수 있는 가부장 입장(side)에서의 ‘과도한 의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가부장은 친절한 사람이어야 할 정치적 의무가 있다’는 명제는 그간 부차적이었으며, 온전히 공표(announce)된 적이 없었습니다. 사이고 다카모리, 도야마 미쓰루, 우치다 료헤이, 미야자키 도텐, 곤도 세이쿄 등의 개인이 지닌 ‘독특한 개성’ 이라는 층위(level)에서만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우애와 유책성이라는 뒷받침 없이는 가부장제 모형은 즉각 억압적인 권력장치로 화하고 맙니다.
중일전쟁 때 등장했던 표어(slogan)가 ‘폭지(暴支) 응징’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일본인이 ‘말 안 듣는 동생을 형이 흠씬 패서 선도한다’는 식으로 국제정세를 이해하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명백히 메이지 20년대까지 일본인은, 주관적으로 아시아에 가부장의 친애스런 정을 갖고 있었기는 했지만, 그것이 ‘가정폭력’으로 훌쩍 비화할 리스크가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우애와 유책성을 겸비할 의무를 진지하게 고찰했어야 했는데 그게 결여되었다 보니 결국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는 데에 이르렀던 셈이지요.
ーー 팔굉일우라는 표어 역시 ‘군민 공치’라는 이상을 세계구급으로 확대하려던 것이 혹 아닐는지요. 향후 일본이 아시아, 특히 한국하고 연대하려는 경우에 같은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치다 주목해야 될 점이 한국의 국가관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직계 가족’이라는 점입니다. 한국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6・25 전쟁으로 말미암아 어려서 부친과 생이별하는 순간, 아버지로부터 “아바이가 죽게 되면 그때부턴 네가 우리 집안의 가장인 기라” 하는 당부를 듣고서 가족의 운명을 짊어진 주인공이 일생에 거쳐 가족을 지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도 곰곰이 따져보면 아까 말씀드린 『고하야카와 댁의 가을』과 똑 닮은 ‘연약한 가부장’ 이야기라는 거예요. 다 늙은 주인공이 자신보다도 젊은 나이에 촬영한 부친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서 “아버지,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라고 읊조리는 장면은 눈물을 금치 못하게 하지요. 근데, 그 장면에서 감동을 받는 건 일본인과 한국인 뿐인지도 모릅니다. 서구의 관객은 어째서 맏형이 자기 인생을 희생하면서까지 동생들을 끔찍하게 위하느냐, 그 동기를 이해하지 못하고서 ‘유별난 사내군’이라 여길지 모릅니다.
아시아 가운데에서도 일본과 한국은 하나의 ‘직계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무의식의 층위에선 가족이 곧 국가라는 모형을 공유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일한 양국이 ‘똑같은 국가 모형이라는 꿈’을 꿀 수 있다면, 일한관계는 더욱 확고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제창하는 ‘한일 동맹’ 구상은 ‘직계 가족’이라는 문화적 기반에 바탕을 두었을 따름임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직계 가족’은 맏형이 가산을 상속하는 거라서, 일한 관계에서는 ‘누가 형인가’ 하는 형제 다툼이 발생할 위험성이 잠재해 있습니다. 실제로 2차대전 이후 일본과 한국은 ‘미국의 맏딸’ 자리를 놓고서 다툰 사례가 있습니다. 이를 어찌 조정해 동등한 붕우로서 동맹관계를 맺을 것인가, 여기에는 한일 양국민의 정치적 성숙이 필요할 것입니다.
ーー 일본이 이상이라든가 국가 목표를 잃고서 표류하고 있는 오늘날, 곤도 세이쿄가 꿈꿨던 이상은 시사하는 바 큽니다.
우치다 곤도 세이쿄의 사상에는 더러 그르친(파탄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환기력(喚起力)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 고유의 토착 사상에 뿌리를 둔, 일본의 사상적 토양에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착 사상은 신토불이입니다. 이 책을 읽은 젊은 독자 가운데 차세대 사상가가 태어나 새로이 일본의 고유한 정치사상이 연성(鍊成)되기를 나는 바라겠습니다.
(『월간일본』 4월 14일, 대담자 杉原悠人)
(2025-05-13 08:4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용기론』 『목표는 천하무적』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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