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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국 헌법의 주체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6. 20. 11:14

    고등학생을 상대로 비대면으로 헌법 수업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아주 그냥 고등학생들한테는 영 생경할 이야기를 해주마 마음먹었다.

     

    논점은 단 하나. 일본국헌법의 특수성이다.

     

    일본국헌법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헌법 제정 과정에서 어떠한 의논이 있었길래 아직까지 이러한 조문을 남겨놓았는지 거기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군정[GHQ]의 법무담당관이 며칠만에 휘갈겨 써서 일본에게 강요한 헌법이라고 해석을 한다. 호헌하자는 사람들은 헌법 전문을 근거삼는데 “일본국민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하며 이에 헌법을 제정한다”라는 문구에 따라 헌법을 기안하고 제정한 주체는 ‘일본국민’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이러다보니 국민적 합의가 될 리 없다.

     

    미합중국 헌법을 살펴보면 제정되기까지 독립선언 이래 11년이라는 세월을 필요로 했다. 그 이유는 합중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 것인지 ‘건국의 아버지’들 사이에 합의가 쉽지 않았고, 엄청난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어떤 조항이 어떤 의논 끝에 지금과 같은 문언에 이르렀는지 그 경위가 알렉산더 해밀턴 등이 쓴 『연방주의자 논고』에 상세히 쓰여 있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일본국헌법의 경우 이러한 기록이 없다. 어떠한 경위로 이런 문언이 남았는지 이유가 불분명한 것이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일본인은 헌법에 ‘상유’라는 것이 마치 소도구처럼 붙어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상유가 뭔고 하니 “짐은 일본국민의 총의를 바탕으로 신일본 건설의 초석이 다져진 것이 매우 기쁘며, 추밀원 고문의 자문 및 제국 헌법 제 73조에 의거해 제국 의회의 의결을 거친 제국헌법의 개정을 재가하며, 차제에 이것을 공포케 하였다”라고 쓰여 있는 부분이다. 신구 두 헌법의 법적 연속성이 담보되기 위해서는 천황이 국민에게 ‘주권 이양’을 제국 헌법의 절차에 따라 행했다는 의제(擬制)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상유’를 읽고서 ‘오호라. 이게 헌법 제정 과정의 진상이었구나!’ 하고 수긍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이 헌법을 놓고서 제국 측 정치가들과 미군정 사이에 있었던 불꽃 튀는 논쟁이 국민의 역사적 인식 차원에서는 공유되어 있지 않는다는 점 뿐이다.

     

    호헌파의 아킬레스건은 ‘일본국민’에 상응하는 존재가 헌법 공포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시점에 존재했던 것은 ‘대일본제국 신민’이며, 그들은 주권자가 아니었고, 물론 헌법을 기안할 권한이라든가 견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 현행 헌법에서 비로소 출현한 ‘일본국민’이 정작 헌법을 제정했던 때에는 ‘자기 머리카락을 붙잡고서 대롱대롱 매달리기’ 쯤 되는 배리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세상의 선언이라는 건 많든 적든 ‘그런 것’이므로 아주 목에 핏대를 세우며 화를 낼 정도는 아니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공산당 선언, 인권 선언, 독립 선언, 초현실주의 선언 모두, ‘자기 머리카락을 붙잡고서 대롱대롱 매달리는’ 곡예의 산물이다.

     

    일본국 헌법은 아주 훌륭한 헌법이다. 이런 헌법을 ‘일본국민’이 기초한 것은 명백히 아니다. 그래도 탁월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렇다. ‘너희 스스로 이상으로 삼는 헌법을 써보렴’ 하는 말과 함께, 백지와 연필을 넘겨받았을 때, 현행 헌법과 같은 것을 자기 머리로 생각해서 기초부터 써낼 수 있을 그런 일본인을 앞으로 길러나가자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했다.

     

    (주니치 신문 5월 24일)

     

    (2025-06-05 10:1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용기론』 『목표는 천하무적』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