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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하품 학원인용 2025. 7. 26. 08:31
지는 방법을 습득하기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친다. 모든 언론이 '이기는' 방법을 소리 높여 가르쳐 준다(주식 투자로, 경마로, 연애 게임*으로). 그것이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의 풍조인가 보다. 그러나 현실 생활에서 우리는 결코 이기거나 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 지고 또 지고 있다.
(* 2000년대 당시 대유행이었던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ギャルゲー"이라는 이상한 비디오게임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비디오 게임은 대부분 공략집이 있습니다. - 인용주)
첫째, '궁극의 승부란 생사를 건 승부'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순간도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 다가올 것이 확실한 패배를 향해 가고 있다. 이 패배에 예외는 없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패자다. 그 사실에 기초하여 승부라는 것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승부에 열중하는 것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적절한 패배' '의미 있는 패배'를 습득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여름 고시엔에는 4천 곳이 넘는 고등학교가 참가하지만, 승자는 단 한 곳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패자이다. 이 이벤트에 어떤 교육 효과가 있다면 그것이 '이기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런 효과를 얻는 것은 매년 전국에서 한 학교뿐이기 때문이다. 그만큼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면서 그 정도 효과밖에 거두지 못한다면 이처럼 비용 대비 효과가 나쁜 교육사업도 없다.
그러나 고교야구가 효과적인 교육사업이라는 데에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 거의 모든 참가자가 패자인 이벤트가 교육적일 수 있다면, 그것은 '적절하게 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패배'의 첫 번째 조건은, 패인은 모두 나 자신에게 있다는 단호한 자기반성이다. 동료의 실책이나 감독의 형편없는 지휘 때문에 졌다고 발뺌하는 선수는 누구의 경의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이 패배로 개선해야 할 부분을 많이 알게 됐다는 자각이다. 지고 나서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더 이상 노력할 여지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패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셈이다.
세 번째 조건은, '졌지만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유쾌한 기분으로 패배를 기억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분개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당연한 얘기'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오늘날 일본을 보면 정계에서나 재계에서나 언론에서나 갖가지 불상사가 잇따른다. 그 어떤 정밀한 시스템이라도 '버그'를 피할 수는 없기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후에 '이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단언하고, '개선해야 할 점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교훈으로 받아들여 오류를 신체화하면서, 지금까지 수고해 준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패배'를 총괄하는 사람은 좀처럼 보지 못했다. 아마도 그들은 결코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삶이라는 당대의 시류를 따르는 것일 테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모든 승부에서 계속 이길 수는 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패배의 날이 닥친다. 그때 누구의 경의도 기대할 수 없고,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그저 불쾌한 뒷맛만 남기는 무의미한 패배를 떠안아서야 되겠는가. 때로는 이기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패배가 있다. 그런 패배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어른의 중요한 책무가 아닐까.
『목표는 천하무적』
(책좀 사주세요. 19만원보다 더 가치 있는 단돈 1만 9천원입니다.
홍대 구경도 할 겸, 요조 씨의 "책방무사"를 들러보시는 건 어떨까요?)
韓国では今、全国民を対象にするいわゆる民生給付(UBIの実験)が行われてお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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