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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나쁜 놈 감지 센서
    인용 2025. 7. 13. 09:01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에서 다룬 마토 그로소의 원주민들은 정글에서 무언가가 눈에 들어오면 일단 그것을 등에 짊어진 자루에 던져 넣습니다. 이주하며 사는 그들은 너무 큰 짐은 갖고 다닐 수 없기에 자신이 짊어질 수 잇는 것만 자루에 넣지요. 자, 그럴 때 그들의 '자산 목록'으로 선택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언젠가 어디엔가 도움이 될 법한' 물건입니다. 언젠가 어디엔가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지금 당장은 쓸모를 알 수 없는 것, 즉 지금 당장은 어디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앞으로는 쓸모가 있겠다고 직감한 물건을 자루에 집어넣습니다. 인간에게는 그런 직감 능력이 있습니다. 아니, 그런 능력이 있기에 인간은 도구라는 것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도구 제작은, 먼저 '이런 도구를 만들자'라는 아이디어가 있고 나서 거기에 필요한 소재를 모아 도구를 만들었다......와 같은 순서가 아닐 겁니다. 반대로 '지금 당장은 어디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뭔가 끌리는 것이 눈에 띈다→그것을 주워서 수중에 둔다→어느 날 '그것'으로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퍼뜩 깨닫는다...... 이런 순서였을 겁니다. 물론 제가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그랬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런 능력을 선택적으로 발달시켜 두지 않으면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어찌 됐든 어떤 도움이 됨 직한 것'의 유용성을 선구적으로 직감할 수 있는 능력은, '어찌 됐든 치명적인 리스크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의 유해성을 선구적으로 직감하는 능력과 표리 관계에 있습니다. '지금은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도움이 되겠다 싶은 것'을 감지하는 힘과 '지금은 특별히 위험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언젠가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겠다 싶은 것'을 감지하는 힘은, 같은 능력의 다른 모습입니다.

     

    정글에 사는 원주민은 맹수나 독사가 득시글거리는 환경에서 지내니 '이쪽으로 가면 왠지 나쁜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위기 감지 능력이 매우 높을 겁니다. 무엇보다 그 능력은 유아 때부터 가르칠 수 있습니다. 맹수와 싸우는 기술은 어린아이로서는 도저히 습득할 수 없고, 성인도 월등한 신체능력이 없다면 습득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위험의 접근을 멀리서부터 느끼는 센서의 정밀도를 높이는 것은 아이도 할 수 있습니다. 위험이 접근하면 '근질근질거린다'거나 '소름이 돋는다' 같은 신체 반응은 적절한 프로그램을 정비하면 선택적으로 강화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저는 '무도적'이라는 것을 이 두 종류의 예방적 행동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리스크에 '대증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적'으로 행동하는 것. 보유 자원이 지닌 잠재 가능성을 그것이 현재화・가시화・수치화되기 전에 감지하는 것. 형태를 취하기 전에 위험의 접근을 감지하고, 유용한 것의 유용성을 감지하는 것. 즉 시간을 앞당겨 뒤에 일어날 일을 조금 먼저 경험하는 것입니다.

     

     

    『목표는 천하무적』


    【오길비 생각: That reminds me of a (series of short) stories】

    1. 대표적 대증요법인 '위고비'류를 멀리합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거대 제약사의 비만 치료제)

    2. 전철에서 읽다가 '재미있다 재미있어' 하며 책장을 덮기가 아까운 대목이었습니다. (대부분이 그렇기는 합니다만.)

    3. 여성의 경우, 이런 감각(일본어로 気不味さ)이 보다 발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게 제 가설입니다. (계량하기 힘든 능력이기는 합니다만.)

    4. 일본의 경우, 많은 논자가 지적하듯이, 이른바 '과제 선진국'(현대 사회의 제문제를 다른 나라보다 조금 일찍 경험)으로 일컬어집니다.

    (제가 아마추어이기는 하지만) 일본학을 해서 좋은 점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답니다.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모르겠다, 이것이 일본학의 가장 큰 甲斐(할맛)이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가깝지만 먼 이웃'이란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