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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1863년은 혼란이 극에 달한 해로…인용 2025. 6. 22. 14:18
분큐 3년(1863) 계해년은 혼란이 극에 달한 해로, 일본에서는 양이론을 내세웠고, 영국 군함은 나마무기 사건과 관련해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하며 막부를 압박했다. 외교적 난국이라는 점에서는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그때 나는 막부 외무성의 번역국에 근무했으므로 외국과 주고받은 서한은 모두 읽어서 상세히 알고 있었다. (…)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 기록을 모두 태워버렸다. 기록을 태워버린 일과 관련해 한 가지 일화가 있다. 그 당시에 정말로 무시무시한 사건이 벌어졌다.
차관이면 상당히 높은 신분이었다. 친척에게 보내는 보통의 편지니 대수롭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저 참으로 뒤숭숭한 시절이라 걱정이다, 부디 명군현상(明君賢相)이 나타나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것이다 운운하는 문장이 있었다. 그런데 이 편지를 본 막부의 관료가 “뭐? 천하가 시끄러워? 부디 명군이 나타나서 해결해야 한다니, 이건 구보(公方, 쇼군의 별칭) 님을 능멸한다는 뜻이다. 구보 님이 사라지고 명군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이른바 모반자다”라는 식으로 해석하여, 즉시 와키야를 막부의 성내에서 포박하게 했다.
그 후로 세상은 오로지 양이론뿐이었다. 조슈의 시모노세키에서는 네덜란드 선박에 발포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후에 미국 군함과 영국 군함에 대해서도 잇달아 발포를 했다. 그 결과 영국・프랑스・네덜란드・미국 4개국이 막부에 들이닥쳐 300만 엔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며 다그쳤고, 옥신각신 끝에 막부는 결국 그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내의 양이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에는 쇄국양이라는 말 대신 새롭게 쇄항이라는 명칭이 고안되었다.
아무튼 계해년을 전후해서는 온 세상이 무작정 과격하게 행동할 뿐이었다. 에도 시중의 검술가들은 막부의 부름을 받아 득세했고, 검술이 크게 유행하는 세상이 되자 그 유행이 사방으로 전염되어 승려마저 변하게 되었다. 먼 옛날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 때 입었고 또 미토의 노공도 입었다고 전해지면서 그런 복장이 무사들 사회 전체에서 크게 유행했다. 이렇게 전반적인 분위기가 완전히 옛날의 무사풍으로 되어버리니, 이래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 몸가짐을 조심하면서, 아무래도 칼은 필요 없다, 어리석은 짓이다, 칼은 팔아버려야겠다고 작정했다. 우리 집에 대단한 명검은 없었지만, 그래도 다섯 자루 내지 열 자루쯤 되는 칼을 신사 앞의 다나카 주베에라는 도검업자를 불러 몽땅 팔아치웠다. 기다란 와키자시로 변모한 대물림 칼집이 하나, 단도로 만든 짧은 와키자시가 한 자루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그렇게 몸을 사리며 지냈다. 그저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고 밤에는 절대 외출하지 않았다. 특히 분큐 연간부터 메이지 5, 6년까지(1861~1873년) 13~14년간은 밤중에 외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당시는 오로지 저작과 번역에만 열중하며 세월을 보냈다.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That reminds me of a story】
한국인이 늘상 통한하기를 그때 우리 조상이 왜 그러했을꼬 하며 개국이다 실학이다를 했어야 했다 하는데 기실 일본이라고 해서 저 유명한 신센구미 뿐만이 아니고 모든 게 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인 바, 거꾸로 한국에는 이른바 ‘들고일어난’ 역사가 면면이 이어진다 하여 스스로도 뽐내기를 주저하지 않건만, 보통 차가 통행해야 할 아스팔트 위에 선다는 것 자체가 심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신다면 자그나마 기쁨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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