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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이 책은 페미니스트인 내가 읽기에…인용 2025. 6. 22. 13:00
글쓴이도 털어놓았지만 남성우위 사회, 특히 성적 능력이 남성다움의 특권적인 구성 요소로서 숭배되는 사회에서 남자가 자신의 불감증을 고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여성의 몸에 대한 동경을 밝히는 일은 더구나 위험하다. 글쓴이 스스로 우려하듯 당장 모욕적인 인신공격에 노출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모리오카 교수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런 비범한 용기를 바탕으로 남성에게 정면으로 묻는다. “솔직히 내 섹슈얼리티는 이런 모습인데 당신은 어때?”
많은 남성은 곤혹스럽겠지만, 저자의 느낌과 생각에 동의를 하든 안 하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내가 얼마나 여자들을 만족시키고 있는가에 집중된 권력지향적이고 스테레오타입화된 시각이 아니라 내가 정말 어떻게 느끼고 있고 왜 그런가를 새롭게 살피는 자기성찰적 시각 말이다.
이 책은 남자가 썼지만 페미니스트인 내가 읽기에 거의 ‘전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거슬리는 부분이 없었다. 아마도 남성인 글쓴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여성의 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주제넘은 설교를 늘어놓기보다 남성 자신의 성을 진지하게 성찰한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글쓴이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즉 자신의 구체적인 체험에서 시작하는 ‘경험읽기’ 방식도 낯이 익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자기의 내밀한 경험을 드러내고 분석하는 ‘경험읽기’는 진정한 여성의 욕망과 목소리를 찾기 위해 페미니즘이 애용해온 중요한 방법론 가운데 하나다. 그 때문인지 글쓴이가 자신의 남성학은 페미니즘을 정면에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했다는 대목을 접했을 때 ‘역시!’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발언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남성이 자신의 아픔을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일’에서부터 남성학이 시작된다고 보는 글쓴이의 생각에 적극 동의한다. 가부장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억압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글쓴이의 거리낌 없는 고백과 심리 분석은 페미니스트인 나 자신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계기도 제공했다. 남성과 여성, 양성 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말로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면서도 실제로는 지배자/예속자, 가해자/피해자, 누리는 자/빼앗긴 자의 이분법적 구도 아래 제한된, 그리하여 빈곤하고 경직된 내 시각이 드러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책의 내용에 그렇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결국 ‘나’로부터 출발하는 진솔한 고백이야말로 가부장제가 규정해 놓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을 넘어 서로에 대한 이해로 가는 지름길이자 여성학과 남성학이 만날 수 있는 통로임을, 그 방법론을 통해 일깨우고 있는 셈이다. (김신명숙)
(인용자: 모리오카 마사히로 『남자도 모르는 남성에 대하여』의 한국어판 초판인 『남자는 원래 그래?』의 추천사 일부를 발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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