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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이거 그러니까 그 이야기잖아!”인용 2025. 6. 19. 12:59
비전문가는 가능한데 전문가는 불가능한 일이 있다. ‘비전문가의 소박한 의문에 철저하게 함께하는 것’이다. 자신이 비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상대로 설명할 때 우리는 가장 인내심이 강해진다. 그야 그렇다.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면 ‘찝찝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자신이 이해한(신경 쓰이는) 것에 관해 비전문가에게 설명할 때 그다지 자상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라는 문구가 그들이 애용하는 정형구인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하에 쓰인 사안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독자로 상정되어 있지 않으니 조용히 구석으로 물러나 있으라는 암묵의 공갈이다.
그리되면 비전문가는 그냥 비전문가인 채로 좀처럼 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 자칫하면 모든 독자가 ‘구석에 물러나 있다가’ 끝나 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읽고 나서도 독자는 전문가 영역에 조금도 가까이 가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문가의 직업적 우위성은 영원히 담보된다.
그런 책은 읽어도 전혀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나는 ‘비전문가도 알 수 있는 미국론’을 스스로 쓰기로 했다. 이럴 때 누구를 독자로 상정할지에 따라서 글쓰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우치다 군은 통속화(vulgarization)를 잘하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려운 학술적 개념과 가설을 알기 쉬운 일상적인 비유로 설명하는 것을 저는 확실히 잘합니다. 이 방면에서는 틀림없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거 그러니까 그 이야기잖아!(これって、あれじゃん! - 인용자)”와 같은 연상에 의해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패턴의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은 저의 얼마 되지 않는 특기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학술적 능력으로서는 전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알기 어려운 개념을 익숙한 일상어로 바꾸어 설명하는 방식은 공부하는 측에서 보면 꽤 도움이 되는 일이겠지만, 학술적으로는 전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이것을 ‘계몽활동’이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습니다. 계몽이라는 것은 ‘몽매함을 깨운다’, 즉 ‘우둔한 자에게 지혜를 전해 준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우쭐한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정말로 한가한 사람은 그런 박애사업과 같은 것을 해도 좋다. 그런데 일류 학자는 비전문가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보면 저는 ‘불문학자’의 간판을 내리고 비전문가를 상대로 푼돈을 벌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전 불문학자’라는 말을 듣는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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