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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무도가는 의심하지 않는다
    인용 2025. 7. 20. 19:11

    무도가는 회의하지 않는다

     

     

    무도가는 회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 명제가 성립할지 어떨지는 몰라도 왠지 그런 생각이 든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어도 의심의 눈초리로 “그런 일을 인간이 무슨 수로 해”라며 인간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무도에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무도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은 인간의 신체능력을 계측하고 싶어 한다. 근육의 힘이라든지 움직임의 속도라든지 관절의 휘어지는 각도라든지, 어쨌든 수치로 나타내고 셈할 수 있는 것을 ‘신체능력’이라고 판단하고 그것을 선택적으로 개발하려 한다.

     

    하지만 그런 훈련법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실제로 수련할 때 우리가 동원하는 신체 자원은 거의 무한하며 그중에서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얼마 없기 때문이다. 눈길을 어디에 둘 것인가, 무게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 체축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손발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피부의 감도를 어느 정도로 설정할 것인가, 심지어 엄지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리는 움직임이라도 거기에 관여하는 신체 부위나 기능은 무수히 많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중추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우리의 신체 부의 대부분은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그러한 무수한 움직임의 복합적인 효과로서 ‘기(; 일본어 “와자” - 인용)’가 성립한다.

     

    복수의 요소가 관여하며 오케스트라처럼 중첩되어 성립하는 움직임에서, 그중 한 가지 요소만을 분리해 수치로 나타내 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기’의 성립에 가장 많이 관여하는 것이 상완이두근의 직경인지, 심폐 기능인지, 시냅스의 통전(通電) 속도인지, 그런 건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특정 신체 부위의 특정 기능만 분리해서 그걸 선택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애당초 불가능하다.

     

    무도를 수련할 때 ‘미리 계획을 세워 이런 능력을 선택적으로 개발하자’고는 할 수가 없다. 애초에 ‘어떤 능력’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지, 그것이 무도적으로 어떻게 유용한지 사전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된 뒤에야 “세상에, 이런 걸 할 수 있다니”라며 스스로도 깜짝 놀란다. 수련이란 그런 거다. 그런 부위가 있는 줄 몰랐던 신체 부위를 움직여 그런 움직임이 있는 줄 몰랐던 움직임을 해내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수련의 성과다. 수련을 시작하기에 앞어 ‘일정표’ 따위를 일일이 작성하고 단계적으로 달성해 나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게 되고파서 수련하는지 나 자신도 모르니 ‘일정표’ 따위는 만들 방법이 없다.

     

    그래도, 이 어디를 목표로 하는지 모르는 오리무중의 수련 과정에서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있다. 바로 ‘고수’나 ‘달인’에 관한 이야기다. “옛날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는 초인들에 관한 에피소드가 수련을 할 때 가장 신뢰할 만한 지침이다. 천리안이든 공중부양이든, 뭐든 좋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일단 믿는다. 그리고 그런 능력의 ‘단편’이나마 내 안에 잠재할지도 모른다, 수련을 거듭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그러한 능력이 부분적으로나마 발현될지도 모른다는 오픈 마인드로 수련에 임한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

     

    어떤 특이한 재능이라도 ‘그것이 가능했던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일단 잠자코 받아들인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긴다. 그리고 어떤 수행을 하고 어떤 종류의 능력이 발달해야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될까, 그 구체적인 과정을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한다고 잃어버리는 것은 딱히 없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잠재 가능성을 믿고 수련하든 믿지 않고 수련하든, 매일의 수련에 할애하는 시간과 수고에는 변함이 없다. 어차피 같은 시간 동안 수련한다면 ‘그런 신기한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고 믿고 수련하는 편이 즐겁지 않겠는가.

     

    ‘일단 뭐든지 믿는’ 수련자와 ‘그런 일을 인간이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전부 꾸며 낸 이야기다’라고 내치는 ‘과학주의적’ 수련자가 10, 20년 수련을 계속했을 때 도달하는 수준은 상당히 다르리라고 본다.

     

    그렇기에 ‘인간의 잠재 가능성에 대한 낙관성과 개방성’은 무도가에게 상당히 중요한 자질이 아닐까 싶다.

     

     

    『목표는 천하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