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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오고가는 매도와 저주: ‘공허한 사람’이 거절한 것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5. 6. 5. 09:12
젊은 지인이 나보고 ‘어째서 SNS에서는 사람들이 이리도 다들 공격적인 어투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그러는지, 필자가 알 턱이 없다. 하지만 그 현상의 일부에 관해서는 이런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SNS에서 많은 팔로워를 획득하고 싶다면, 될 수 있는 한 ‘누구나 할법한 말’을 하는 게 첩경이다. 정형적일수록 더욱 좋다. 사실, 정말로 개인적인, ‘자기 말고는 아무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말’을 SNS에 쓰는 사람은 아예 없다. 그 작업을 위해서는 고도의 언어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정과 도리를 다해 독자의 옷소매를 붙잡고 말을 거는 문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누구나 할 법한 말’을 읽게 해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SNS에서 압도적 소수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의 대부분은 정형적인 매도와 저주의 언어이다. 하지만, 그 발언자가 익명에 머무는 한, 읽는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듯 격렬한 매도와 저주를 갖고서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응어리진 ‘정말로 개인적인 것’을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자기 내면에 누구나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사악한, 비도(非道)한 생각’을 품어놓고 있다. 여기에는 예외가 거의 없다. 우리는 매일 자신의 사악함과 비열함, 약함을 마주하고서, 그러한 것들을 품고 있는 자신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내적 갈등이 우리들을 조금이나마 복잡한 인간으로 다듬어준다.
허나, SNS에서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내적인 사악함’을 미리 만들어진 정형구에 실어서 ‘오물’과 같이 기분 좋게 배설해 버리면, 그 사람은 ‘정말로 개인적인 것’과 혼자서 정면으로 마주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자신의 사악함이나 비열함, 천박함과 약함을 가만히 바라보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때, 거기에 ‘구덩이’가 싹튼다.
최근에, ‘공허한 사람’ 이외에 형용할 길이 없는 사람을 뜯어볼 기회가 있었다. 눈 속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마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사악함이나 어리석음, 약함을 마주대하고서,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내적인 공허가 표정이나 발성에까지 역력히 드러나는 것으로 비친다.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용기론』 『목표는 천하무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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