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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게 식사하던 신사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5. 5. 19. 18:08
(...) 아사쿠사 고마가타에서 목격한 '단정하게 미꾸라지탕 식사하던 신사' 일화를 소개할 걸 깜박했습니다.
40년도 더 된 일인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입국한 겐이 조카 가족을 데리고서 도쿄 아사쿠사에 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일본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기에 서민 음식을 맛보도록 한 것이지요. 그 자리에서 중년 남성 한 명이 미꾸라지탕을 들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더군요. 그저 미꾸라지탕 냄비를 앞에 두고서 호리병에 든 더운 사케를 둥근 술잔에 따른 뒤 먹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딱 그것 뿐인데 '흠잡을 데 없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식사하는 동작이 완벽했습니다. 고기와 우엉을 집어서 대파와 '시치미' 양념을 얹은 뒤, 입 안에 넣고 술을 한잔 마시는 것이었어요. 이러한 동작을 담담히 되풀이하고 있었던 겁니다.
움직이는 모양새에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어요. 침착하니 여유로이 식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석양볕이 비치는 따스한 다다미방 안의 낡은 방석 위에 정말로 그 모든 것들과 한 몸이 되어 있었어요. 저희 자리에 냄비가 나와서 잠시 신경이 그쪽으로 가는 바람에 다시 쳐다보려 했는데 그새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미꾸라지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중년 어른이 과연 될 수 있을까?' 하고 당시에 갈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길비: 저는 우치다 선생님의 갈망을 갈망합니다.
어디선가 분명히 "내가 어렸을 적에, 아니 서른 즈음이었으니 어린 것도 아니었지..." 하고 쓰신 것을 한번 보고서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알게모르게 내심 계속 시각화한 덕분입니다.
이 일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계속 원하고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제 손으로 소개드릴 수 있어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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