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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식주의와 본질주의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5. 5. 13. 14:35

    일본에서는 ‘본질’보다도 ‘형식’을 더 중시한다. 일본의 뿌리 깊은 악습이다.

    ‘머리가 세 가닥 나는 발모제’를 놓고서 ‘완전한 효과라고는 말 안 했을 뿐 일정한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하는 게 ‘형식주의’다. ‘실질적으로는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는 게 ‘본질주의’이다. 의학・의료계에서는 물론 본질주의로 가야 마땅하다. 1mmHg밖에 혈압이 내려가지 않는 고혈압약을 ‘일정한 효과가 있다’고 하는 건 궤변자이자 사기꾼이며 한마디로 ‘거짓말쟁이’다. “허 나 참. 거짓말이라고는 안 했잖소? 혈압이 내려가잖아.” 같은 식으로 말하는 작자는 전형적으로 ‘형식주의적인’ 거짓말쟁이인 셈이다.

    형식주의자는 볼 것도 없이 궤변을 농하는 사기꾼이자 거짓말쟁이지만, 또한 ‘겁쟁이’기도 하다. 갈수록 논점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입으로만 진지하게 의논하는 척 하는가 하면, 끝끝내 얼렁뚱땅 무마해 버리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일본에서는 이러한 형식주의가 보편적이다. 요즘들어 이런 풍조는 한층 더 악화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일본 뿐만이 아니고 해외에서도 이러한 풍조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이 그 대표격으로, 어리석은 정책을 떠올려서는 주변을 혼란에 빠트리고, 경제와 외교 상황을 악화시켜놓고는 변명조로 ‘나는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하고 아까 전까지 했던 말을 물리는데, 이를 협상의 ‘기술’이올시다, 라며 뻔뻔한 얼굴을 하는 것이다. 참으로 궤변가이자 사기꾼, 거짓말쟁이이며 겁쟁이이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효고 현 사람들이 선출한 지자체장도 똑같다는 점은 두말 하면 입 아프다.


    하지만, 아주 일부의 경우 ‘형식주의’가 필요한 때가 있다. 이를테면, 예방 접종의 부작용 판정과 그 피해의 보장에 관해서다.

    이 문제를 ‘본질’ 차원에서 논할라치면, 전후관계(상관관계 - 역주)와 인과관계를 서로 준별하는 일이 어렵다. 백신 접종 후 일어난 현상이 ‘백신을 원인으로 하는 현상’인지의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집단적 리스크로 놓고 보면, 비교군과 대조하여 확률을 산출해내기라도 할 수 있다. 허나, 단 한명 ‘당신’에게 일어난 현상이, 백신 탓인지를 의사 입장에서 직언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못하겠으면 안하는 것이 맞다. 자동차 사고났을 때 보험금 문제와 똑같다. ‘이러이러한 상황에서는 지급한다’ ‘저러저러한 경우는 주지 않는다’고 완전히 매뉴얼화하고, 형식화하면 된다. 그러면 손해사정이 신속해지고, 네가 옳네 마네 하는 일도 없어진다. 형식이 필요한 때는 본질적 추구가 곤란한 예외적 사례 뿐이다.

    궤변만 늘어놓으며 사람을 질리게 하고 또한 자신을 추레하게 만드는 일은 이제 관두자. 슬슬 일본도 본질주의로 키를 돌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와타 겐타로 (고베대학교 의학연구과 감염치료학분야 교수)
    출처: https://www.jmedj.co.jp/premium/ieye/data/iwatakentaro/


    우치다 선생님의 한말씀: 이거 엄청 중요한 논점입니다. 감염의학과 전문의 이와타 선생이 말한 ‘본질주의’란 것은 철저하게 실용적인 태도입니다. ‘유한한 시간 안에 유한한 한 줌의 자원으로 뭔가를 해야 할 때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는 의료 현장에서 너무나 중요한 판단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이와타 선생이 언급한 ‘형식주의’란 건 ‘무한한 시간이 있고, 무한한 자원이 있는 경우에, 무엇을 하는게 가장 이득인가’ 하는 의논입니다. 물론, 그러한 의논 자체는 사고실험 격으로는 대단히 유용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상황 자체가 현실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