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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언 2023・ 후쿠오카식 ‘두줄 서기’ 운동을 실천하자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5. 5. 14. 11:43

    ■ ‘두줄 서기’ 운동을 확산하자

     

    도쿄에서 후쿠오카로 출장갔을 때, 에스컬레이터에서 승객이 한 쪽을 비워두지 않고 멈춰 서서 두 줄로 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걸 에스엔에스에 올렸는데 그때 비로소 후쿠오카 지하철 당국이 작년 11월부터 캠페인을 벌였음을 누군가로부터 알게 되었다.

     

    실제로 후쿠오카 시내의 지하철에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으면 위험합니다’ 하는 안내문이 천장에 걸려 있고, 3년 동안 54건의 사고가 일어났다는 점, 계단보다도 한 칸의 높이 차이가 크다는 것, 옆을 휙 지나가기에 위협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또한, 어린 자녀와 함께 손을 잡고 탈 수 있다는 점, (일본은 좌측 통행이기에 - 역주) 오른손잡이가 손잡이를 잡기에 불편하다 하는 등의 이유로, ‘(한국 기준) 왼쪽에 서고자 하는 사람, 왼쪽에 설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러한 후쿠오카에서도 아직 완전히 정착되지는 않았다고 하나 그럼에도 거의 성공한 것에 다름없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구태의연한 습관이나 제도를 변혁하려면 소규모의 성공 사례를 모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서도 후쿠오카를 벤치마킹할 일이다.

     

            ■        ■

     

    도쿄에서도 분명 역에 들를 때마다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걸어서는 안됩니다’ 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는 걸 보았다. 역 관계자가 에스컬레이터 부근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거의 모든 승객이 지시대로 ‘걷지 않고’ 타는 것이다. , 왼쪽을 비워두고 오른쪽에만.

     

    결국, 아무리 혼잡하더라도 오른쪽 한 줄만 타기에 긴 대기줄이 생기는데, 그럼에도 왼쪽만 텅텅 비어 있는 멍청한 상태가 발생하게 된다. 인파에 밀려서 왼쪽에 서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그대로 서서 타고 싶지만, 그러면 뒤에서 위협 운전 하는 것마냥 압력이 들어오기 때문에 마지못해 걸어갈 수밖에 없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인만큼 유아 및 어르신 동승 승객에게도 불편을 초래한다.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경우조차, 무리하게 오른쪽 한구석에 간수하는 등 모두가 고생이다.

     

    급한 날에는 에스컬레이터의 옆줄을 통해 걸어다니고자 한다는 생각도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런 논리라면, 그 사람 뿐만이 아닌 모두가 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왼쪽을 비워두지 말고 꽉꽉 채워 타야 할 것이다. 승강기 부근의 혼잡이 해소되면 열차 승강장에서의 위험도 그만큼 경감될 것이다.

     

    애초에 에스컬레이터는 서서 타는 것을 기본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이 시점에서 원천적으로 걸어서는 안 된다. 위험할 뿐더러 실제 사고가 일어나는 이상, 이 점에 관해서는 의논의 여지가 없다.

     

            ■        ■

     

    도쿄 당국의 ‘서서 타기’ 캠페인이 효과적이지 않은 이유는, 구호만 외칠 뿐 후쿠오카처럼 왜 서서 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에스컬레이터 사례 뿐만이 아니고, 사회 제도를 바꾸려는 경우에도 근본적인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이용자 한명 한명이 의식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다만 후쿠오카 사례를 보듯이, 현실적으로 설득해야 할 이용자가 너무 많다는 점, 열차 승강장의 안전을 기본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철도 회사의 협력을 기대하고자 한다. 누군가가 왼쪽을 막고만 있으면, 자연스레 두줄 서기가 실현되므로, 역 직원이 솔선수범해서 에스컬레이터의 왼쪽에 탑승하여 주의를 환기하는 게 어떻겠는가? 좀 지나서 다시 한줄이 되면 또다시 두줄 만들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름 정도 집중적인 캠페인을 벌이고서는, 후쿠오카 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호응하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본다.

     

     

    (히라노 게이치로・소설가)

    출처: https://www.nishinippon.co.jp/item/1123188/


    독서회 때 한 방 먹은 듯한 충격을 받은 이유는, 눈앞에서 소지품을 뒤지며 “책은 의사 선생님 허가를 받고 나서 보세요” 하며 서적을 임시로 압수당했을 때 왠지 모르게 정상화 편향(normalcy bias) 같은 느낌으로 스스로를 납득시켰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건 별일 아니야. 상상했던 범위 안의 일인걸’ 하고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을 봉인한 채 잊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폭력성’이 존재했고, 그 순간 관리하는 쪽과 관리당하는 쪽 사이에 지우기 힘든 선이 그어졌습니다.

     

    저는 관리하는 쪽이 제 눈앞에서 선을 그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조차 내비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폭력성을 시인하고, 폭력성을 내포한 장소를 강화하거나 함께 구축하는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훗날 독서회 때 깨달았습니다. 저는 책을 압수당한 것에 대해 더욱 반발하거나 슬퍼하거나 화내는 등 제대로 반응해야 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다 이해한다는 양 잠자코 받아들임으로써 그 폭력성이 다음에 올 다른 누군가에게도 발현되리라는 점까지 생각해야 했다고 후회했습니다.

     

    ー 아오키 미아코,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144~145.


    우치다 선생님 한말씀: 왜 두줄서기가 정착되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이 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적절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곧,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을 부적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에스컬레이터 한켠을 비워두고서 긴 줄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히라노 소설가가 말한 것처럼 제가 멍청하다고 본다는 건 아닙니다. 순수하게 무서울 따름이지요.

     

     

     

    오길비: 제가 유심히 보니까 적어도 수도권 전철에 “여긴 꼭 두줄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몇몇 장소가 있습니다. 7호선 숭실대입구역 개찰구 방면, 6호선→3호선 약수역 지하환승통로 등이 그렇습니다.

     

    현재 무술 도합 13~14단이신 우치다 선생님조차 왼쪽(일본에서는 오른쪽)에 서셨다가 두어 번 시비 걸렸다고 하시더라구요.

    저처럼 몸집이 작아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집적거리는 경우에는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도 선생님은 트위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라고는 하지만.

    私は弱虫のようにいろんな所で勇気がまだ足りない。😰 (전 겁쟁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