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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d seine Augen hatten den Ausdruck der Erwachsenen — den die Kinder nie lieben — ein wenig traurig mit Blitzen von Spott darin.
(2015년 이와사키 나쓰미. 「야간비행」 게재)
호리에 다카후미 씨가 만든 ‘755’라는 앱으로 호리에 다카후미 씨와 얘기했다. 오늘은 그 대담 자리에서 떠올렸던 것에 대해 써보겠다.
그 떠올렸던 것이라 함은, ‘어째서 대다수 일본인(특히 청년)들은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었다. 이 의구심은 내가 진즉에 품고 있었기는 하나, 이번을 계기로 강화된 모양새가 되었다.
호리에 씨를 따라다니는 젊은 세대 팬들이 많은데, 똑부러지게 말해서 그들 대부분이 호리에 씨를 오해하고 있다.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가 하면, ‘호리에 씨가 새로운 길을 열어 젖혀 능력주의 사회를 개척함으로써, 현재 고령화 세대에게 짓눌려 있는 자기들에게도 모종의 기회가 돌아올지 혹시 아냐’ 하는 식이다.
정신 차려야 할 게,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호리에 씨가 지향하는, 그러니까 개척하려고 하는 건,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 제3세계로부터, 능력이 있고 담력(guts)도 있는 젊은 엔지니어나 기업가가 쇄도하여, 세계 경제 지도를 수정해 나가는 그런 세상이다. 이렇듯 지역 격차가 시정되고, 전 세계 다양한 곳에서 쓸모 있는 인재상이 꽃피는 미래다.
그리고, 그렇게 제3세계에 기회의 맹아가 늘어나게 되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이제까지 기득권을 누려온 선진국 일본에 돌아갈 기회의 맹아는 줄어드는 것이다.
그야 호리에 씨한테는 물론 세계구급으로 비겨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능력과 배짱이 있으니만큼, 오히려 그런 미래가 두근거리고 기대가 되기에 그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개혁가다. 설령 그로 인해 자신이 불리해질지언정, 수평적이고 공정한 세상을 희망한다. 될 수 있는 대로 순수한 경쟁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호리에 씨는 첫째로 경쟁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경쟁 자체를 즐긴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경쟁사회를 맞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일본에 사는 대부분의 젊은이는 경쟁력도 없거니와 경쟁에 그리 익숙지 않다. (익숙지 않다 함은 와和 문화라든가 공고한 신분계층이라든가 장기침체의 영향을 시사하는 듯 – 옮긴이)
호리에 씨가 하는 식으로 말해보면 ‘누구나 평범하게 노력하면 경쟁력 따위 간단히 지닐 수 있다’가 되겠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나, 그럼에도 일본의 많은 젊은이는 그 보통이란 것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경쟁을 꺼려함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것에조차 엄청난 저항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경쟁력 없는 젊은이가, 이상하리만치 호리에 씨의 언동을 접하고 난 뒤 ‘일본의 기성 세대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나같은 젊은이에게 유리한 세상이 올지도 모르지 않냐’ 하고 착각한다.
하지만, 기성 세대에게 고통받고 있다면서 그렇다고 경쟁력은 없는 젊은이가, 전 세계가 라이벌이 되는 진짜 경쟁 사회에 던져졌을 때, 거기서 이길 가능성은 만분의 일도 없다. 공정한 경쟁 사회가 되면 될 수록, 반드시 활력 넘치는 제 3세계 젊은이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호리에 씨를 비판하는 기성세대가 오히려 호리에 씨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야 자신들이 기득권을 잃으면 큰일나겠으므로, 경쟁 사회는 위험하다는 논리다.
그러면 어째서, 젊은 세대는 호리에 씨를 보고서 착각을 하는가? 그 이유는 거의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기득권을 누리는 측’이라는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가장 싫어하는 기득권층과 사실 같은 카테고리에 소속되어 있는 인종이라는 상상을 못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호리에 씨 소식을 정기적으로 접할 수 있는 청년은,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으면서 인터넷에 별 부담 없이 접속할 수 있는 환경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애초에 기득권이며, 기회의 단초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정보가 돌아다니고 있다. 인터넷이 가지는 최대의 이점을 말해보면, 그 팽대한 정보에 스트레스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살려서 뭔가를 알아본다든지, 배울 수 있는 것이다. 학습의 도구, 교과서가 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요즘 나는 카메라와 사진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20년 전에는 사진 전문학교라든지 관련 업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접해볼 수 없었던 지식이나 기술이라는 것을,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어디 발품 팔지 않고서도, 상상 못할 기세로 흡수한다. 그렇게 해서, 현재로서는 수익을 벌어들일 가늠조차 하고 있다. 프로 사진가가 이런 거구나 하는 감을 잡은 거다.
그것을 습득하는 데 들였던 시간은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다른 본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 중간중간 남는 시간에 공부했는데도 여기까지 이르렀다. 하여튼지간에, 인터넷의 압도적인 정보량에서 비롯된 요술이다. 요 기회라는 것이, 일본인 대다수가 갖고 있는 스마트폰 속에, 거의 무한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폭넓게 펼쳐져 있는 셈이다.
다만, 인터넷 써먹는 법을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들은 그저 자기들이 위로받으려고 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써만 시종여일하지, 공부의 도구로는 일절 활용하지 않는다.
나는 인터넷을 어떻게 공부에 보탬이 되게끔 하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젊은이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서부터 정보를 끄집어낸다든지, 학습을 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향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이를 어떻게 익힐 것인가, 혹은 어떻게 키워나갈까 하는 것이, 인생의 커다란 갈림길로 자리매김하게 될 수밖에 없다.
(시라이 사토시 정치학자)
정치의 기본은 ‘수탈’과 ‘보호’이고, 이는 동전의 양면이다. 여성은 가부장제 때문에 수탈당해 왔으나, 가부장제가 사라지면 그것이 제공했던 보호도 잃는다. 가부장제 아래서 여성의 인격이 인정받지 못하고 물건 취급 받았다 함은 곧, 물적인 ‘일가의 재산’으로서 보호받아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부장제가 무력화되어 보호와 동시에 속박을 잃은 여성은 ‘자유’가 되었으나, 그 자유는 파멸할 자유이기도 하다. 유흥업이 어찌어찌 돈벌이가 안 되었는지 아니면 그걸로는 수입이 부족했는지는 몰라도, 해외 원정을 나간다든지, 행방불명 상태가 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무자비한 폭력 피해를 입고서, 결국에는 끔찍하게도 가축의 사료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보호의 사각 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옮긴이)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해방된 여성이 얻는 자유란, 이 경우 잠정적으로는, 성을 사고팔 자유이다. 보통 뭔가를 산다 함은, 우선 뭘 팔아서(노동력, 즉 근로시간을 말하는 것임. - 옮긴이) 화폐를 얻은 연후에야 무엇을 사기 마련이다. 하지만 호스트바 매니아가 되어 남자의 성을 사고 나서는 끝내 소프랜드로 자신의 성을 팔러 가는 그런 경로는 순서가 거꾸로 되어있으므로, 이는 참으로 이상해 보인다 아니 말할 수 없다.
호스트바 측은, 천지분간도 못 하는 스물 될까 말까 한 여성에게 마수를 뻗쳐 일종의 로맨스 스캠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 수법이 목불인견이기는 하지만서도, 걸려드는 쪽 역시 좀 뭣하다는 얘기를 아니 할 수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물불 안 가리고 사회의 온갖 분야를 ‘자유화’ 해버리면 극단적으로 말해 우둔하거나 혹은 운이 나쁜 자가 일정 수 파멸하는 게 섭리라는 것이다. 그래놓고서는 이제와서 그들이 불러일으킨 그 파행을 막아보겠답시고 로맨스 스캠의 범위를 (애초에 각자도생을 직간접적으로 부추긴 - 옮긴이) 지배층과 국가 권력이 정하겠다는 말씀인가? 웃기고들 자빠졌다.
(괜히 한말씀 드립니다: “부르주아 계급에 속하는 지식인이 자신의 서가에 마르크스 책을 꽂아두는 행위란, 더없이 냉소적인 짓이기도 하거니와, 사회지도층에게 기대되는 규범을 명백히 어기는 것으로서, 결코 권장되지 않았을 것” 이 구절, 인상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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