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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물) 진보는
    인용 2025. 5. 15. 19:54

    진보는 보수보다 우월한 가치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진보가 없었더라면 인류는 아직도 크로마뇽인의 단계에 머물렀을 터이기 때문이다. 보수는 진보의 이익을 관리하는 것이며, 그리고 더 많은 진보가 보수의 이익을 배반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에 대한 공격은 배반당할 이익이 많은 사람들이 취하는 자기 방어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이 보수 대반격이 별로 신기할 것이 없다. ‘학회평론’에 보내는 나의 관심은 우선 그 진보 지향에 있다. 그것이 질기고 튼튼하지 않다는 따위의 걱정은 잠시 접어두자. 당신들이 몰두했던 진보에의 신앙이 먼 훗날 한낱 허깨비로 판명되더라도, 지금은 그 진보를 수호하는 노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배반의 기록이 낭자하며, 전설의 “You too, Brutus?”는 우리의 영원한 화두이다. 진보든 ‘학회평론’이든 우리는 그 부르투스를 신용하는 수 밖에 없다.

     

    혹시 진리라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 진리가 이긴다는 미련은 버려야 한다. 시대가 암담할수록 한층 결연한 각오가 필요하다. 일제의 주구들이 명월관 기생의 장고 소리를 들으며 대동아 공영을 뇌까릴 때, 풍찬노숙을 마다 않고 왜경의 총검을 겁내지 않던 독립지사들은 조국 광복에 몸을 바쳤다. 제국주의가 지구를 분할하던 그 암흑 시절 투쟁의 전망으로 말하자면 친일파의 정세 판단이 앞섰을지 모른다. 결국 어떻게 사느냐는 문제는 삶의 고비고비에서 싸우느냐 마느냐를 선택하는 것이지, 그 싸움의 결과로서 이기느냐 지느냐를 판정하는 것이 아니다. 투쟁의 집합으로서 역사의 승부는 중요한 관건이나, 그 투쟁의 모든 국면에 승리를 ‘보장’하라는 주문은 매우 무모한 요청이다. 앙가주망(engagement)은 흔히 참여로 번역되지만 그 본래 의미는 구속이다.

     

    관악에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있지만, 내가 공부한 루뱅에는 아고라 광장이 있었다. 희랍 민주주의를 상징하던 광장은 벌써 이윤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변했고, 고뇌와 분노와 함성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아크로폴리스 역시 이방인의 침노에 무너진 옛 성터처럼 피 흘린 용사들의 노래만을 전하고 있다. 그게 어디 아크로뿐이랴. 한때 부흥회를 연상할 만큼 빽빽히 들어찼던 강의실은 이제 썰렁할 정도로 자리가 비고, 캠퍼스의 백가쟁명을 알리던 대자보의 치열한 언어도 빛을 잃었다. 사물을 대하는 관점과, 그것을 전하는 대화 내용도 예외가 아니다. 잉여가치 이전의 국제적 메카니즘이 ‘경쟁력 강화’로 설명되고, 자본주의 전일 체제에의 편입은 ‘세계화’가 대신한다. 그것은 매우 편리한 변신이지만, 문제의 핵심을 호도하기에 위험한 함정이다. 세계화란 생산조건이 상이한 국가에 단일한 교환기준을 적용함으로써 부등가교환을 강화하는 절차이며, 국적을 폐지하여 자본의 활동영역을 확대하려는 노력인데, 이것이 시대의 새로운 우상으로 등장했다. 우상에는 공물을 바쳐야 하고, 그 공물은 인간의 노동 이외에 달리 없는데 말이다.

     

    푸른 하늘을 나는 노고지리가 자유롭다는 시인의 노래가 수정될 만큼 혁명은 고독하고, 또 엄격한 것이어야 한다. 사실 우리는 혁명을 너무 희화적으로 대했다. 자신의 힘을 과신하다가 어이 없이 저지른 실패에 진지한 반성 절차를 거치기도 전에, 이번에는 상대의 힘을 과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문민’의 구호는 이들의 과거 청산에 기막힌 구실을 제공했다. 근래에 이 사회 일각에서 줄지어 일어난 전향 서약의 작태를 보노라면 마치 변절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문민을 날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마저 든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혁명을 믿지 않으면서도 혁명을 외친 이유는 그 자리가 다른 어디보다도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리라”는 어느 학생의 고백을 아주 귀하게 받아들인다. 남을 위한 혁명이 아닌 자기를 위한 혁명이란 역설이 매우 당돌하게 들리지만, 그러나 아주 정직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혁명이 아닌 퇴각의 시대이며, 이런 퇴각의 테르미도르에는 그처럼 ‘이기’에서 출발한 자기 검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ー 정운영, 「과객過客의 부賦」,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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