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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인간이
나는 되려 한다
도쿠시마현 출신으로 오사카의 대나무 숲에 집을 지어 ‘대나무 숲의 은둔자’, ‘대나무 숲의 현인’이라고 불렸던 작가 후지 마사하루는 전쟁 중 여러 해 동안 대륙의 전선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때 다음과 같은 전쟁터 생활신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지에서 살 때도 삶의 의미다운 것을 무엇 하나 찾을 수 없었던 내가, 출발을 앞두고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주마 하고 결심한 것은 무엇에 대한 반발일까. ……그리고 출발에 임하여 내가 세운 전쟁터 생활신조는 다음과 같다.
전시 강간은 하지 않는다. 슬프거나 괴롭거나 힘들 때도 잘 먹는다. 기쁠 때(그럴 일은 전혀 없겠지만)도 잘 먹는다.
전시 강간을 하지 않겠다는 이 결심은 1부터 3까지의 이야기 후에 내가 내린 결론이기는 하지만 결코 윤리가 아니다. 오히려 취향이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나의 이 결심과 규정을 어느 정도 지켰다. 그리하여 지금, 1950년인 지금 살아서 일본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다.
ー후지 마사하루, 『후지 마사하루』
*이 장 앞에서는 후지가 전시 강간을 가까이에서 보고 듣는 내용이 나옵니다.뒷날 후지는 “이 허무적으로도 보이는 시각만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상명하달이 당연한 전쟁터에서 이러한 신조를 지키는 일은, 후지의 담담한 어투에서 느껴지는 것보다 훨씬 힘든 실천이었겠지요. 저는 실제 전쟁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삼나무 숲의 평범한 사람’일 뿐이지만, 들쭉날쭉한 저로 살아감에 있어서 후지의 신조에 깊게 공감했습니다.
그는 남들과 다른 시선을 가진 탓에 결코 출세는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자기 나름대로 마음속에 그리는 ‘인간’이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요. 후지는 이에 대해 “결코 윤리가 아니다. 오히려 취향이라 해야 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후지는 전쟁터에 있든 대나무 숲에 있든 변하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는 사람의 그릇이랄지 바탕 같은 것을 갖추었던 듯합니다. 본인 역시 이렇게 썼습니다.
이런 나의 둔감함, 냉담함, 닥치기 전까지 깨닫지 못하는 태평함 같은 성질은 전쟁이 끝난 후에 표면으로 드러났지만 실은 전쟁 중에 길러진 것이 틀림없다는 느낌이 든다.
ー후지 마사하루, 『후지 마사하루 작품집』저도 출세하지 않아도 좋으니 다른 사람을 억눌러서 자신의 가치를 느끼거나 난폭하게 상대를 시험해보려고 하는 관계로부터 거리를 좀 두고, 제 나름대로 마음속에 그리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애초에 ‘출세出世’란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세상에는 이미 태어나 있는걸요). 또 이번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말고, 후지처럼 제 나름의 신조에 따라 움직여보고 싶습니다. 전쟁터에서도 변하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는 바탕은 이제부터 책을 많이 읽으며 연마해보기로 하고, 앞으로도 삼나무 숲에 틀어박혀 있겠지만요.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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