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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필사의 풍경인용 2025. 5. 22. 09:25
무엇보다도 도서관의 생명은 모아 놓은 책들에 있다. 도서관 관계자들은 세상의 모든 문화와 모든 언어를 샅샅이 뒤졌다. 사람들을 해외로 보내서 책을 사들였고 장서를 확충해 갔다.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한 상선은 관리의 검문을 받았는데, 검문의 목적은 밀수품 적발이 아니라 책 찾기에 있었다. 책 두루마리가 발견되면 즉시 빌려다가 베낀 뒤, 사본은 도서관에 보관하고 원본은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칼 세이건)
원서 사본 회독법
주쿠의 수업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처음 주쿠에 입문한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에게 어떤 식으로 가르치나? 당시 에도에서 번각된 네덜란드 서적은 『그라마티카』와 『신타키스』 두 권이었는데, 초급자에게는 우선 『그라마티카』를 교재로 읽는 법을 가르치고 해석도 들려준다. 이것을 다 읽으면 『신타키스』 역시 그런 식으로 가르친다.
그럭저럭 두 권의 원서를 이해하게 될 무렵에 회독을 시킨다. 회독은 열 명이면 열 명, 열다섯 명이면 열다섯 명의 생도에 회두(会頭)가 한 사람씩 있어서 회독하는 것을 듣고 그 됨됨이에 따라 흰 점이나 검은 점을 찍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하여 원서 두 권에 대한 읽기와 해석이 끝나고 회독도 가능해지면, 그 후로는 오로지 스스로의 능력에 맡겼다. 모르는 부분이 있어도 단 한 글자라도 남에게 질문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고, 또 질문을 시도하는 비겁한 사람도 없었다.
오가타의 장서라고는 물리서와 의학서 그리고 앞의 두 원서뿐이었다. 모두 합해 불과 열 권 정도였다. 원래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원서인데, 한 종류에 단 한 권뿐이므로 문법을 마친 생도라면 어쩔 수 없이 그 원서를 베껴야 했다. 각자 베껴서 그 사본을 갖고 매월 6회가량 회독을 하는데, 여럿이서 한꺼번에 베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누가 먼저 베낄 것인지는 제비뽑기로 결정했다.
당시에는 물론 서양식 종이는 없고 전부 일본종이라서, 이 종이를 잘 문지른 다음 신가키(真書, 속기하기 편하도록 끝을 가늘게 만든 붓)로 베낀다. 그래도 잘 써지지 않을 경우에는 그 종이에 반수(礬水, 백반 녹인 물에 아교를 섞은 것)를 칠하여 깃펜으로 쓰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당시 오사카의 약재상 중에 학의 것인지 기러기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세 치 정도로 자른 새의 깃털을 파는 곳이 많이 있었다. 가다랑어 낚시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값은 아주 쌌으므로 그것을 사다가 뾰족하게 간 다음 날카로운 칼로 그 축을 펜처럼 깎아서 깃펜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먹물도 잉크도 있을 리가 없었다. 일본의 먹통은 갈아놓은 먹물을 솜이나 모전(毛氈) 조각에 적셔서 사용하지만, 우리는 원서를 베낄 때 단지 먹을 갈아서 먹통 속에 넣고 오늘날의 잉크처럼 사용했다.
주쿠에서는 누구 할 것 없이 반드시 원서를 베껴야만 했으므로 차츰 솜씨도 늘어 능숙해진다. 한 사람이 원서를 읽고 그 옆에서 받아쓰는 경우에도 철자를 틀리는 일이 없다. 이런 식으로 읽기와 쓰기를 둘이서 분담하기도 하고 또 혼자서 원서를 보고 베끼기도 하여, 사본이 완성되면 원서를 다음 사람에게 넘긴다. 그 사람이 다 베끼면 또 그 다음 사람이 베끼는 식이었다. 하루에 회독하는 분량은 반지(半紙) 석 장 혹은 너덧 장 정도였다.
혼자 힘으로 하는 공부
그런데 그렇게 복사한 물리・의학서를 회독하는 데 있어서도 해석을 해 주거나 소리 내어 읽어줄 사람은 없었다. 몰래 가르치는 것도 묻는 것도 서생 사이에서는 수치로 여겼기에 절대로 이것을 어긴 자는 없었다. 오로지 자기 혼자서 독파해야만 했다. 그러려면 문법을 토대로 사전에 의지하는 길밖에 없다.
그 사전이라는 것도 주쿠에는 『두프』라는 복사본 사전이 한 권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상당히 두꺼운 책으로, 분량이 일본 종이로 대략 3천 장은 된다. 사본을 한 부 만드는 것도 어마어마한 작업이라서 좀처럼 하기 힘들었다. 이 책은 예전에 나가사키 데지마(手島)에 거주하던 네덜란드의 닥터 두프라는 사람이 『할마』라는 독일어・네덜란드어 대역 원어사전을 번역한 것으로, 난학계 유일의 보서(寶書)라 불렸다. 그것을 일본인이 전사(傳寫, 서로 돌려가며 베끼어 씀)하여, 오가타주쿠에도 단 한 권뿐이었으므로 서너 명씩 그 사전 주위에 모여서 보곤 했다. (…)
사본 생활
『두프』와 관련해 한 가지 덧붙일 이야기가 있다. 당시에 이따금 이곳저곳 번의 다이묘로부터 『두프』를 하나 베껴주지 않겠냐는 주문이 들어오곤 했다. 그래서 그 사본을 제작하는 게 서생들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일부가 되었다. 당시의 필사료는 반지 1매 10행 20자에 얼마라는 식으로 매겼다.
그런데 『두프』 1장은 서양글자가 30행가량으로, 그것을 베끼면 1매에 16몬이고, 일본글자가 포함된 주석을 베끼면 8몬이었으므로 일반 책의 필사본에 비해 수입이 짭짤했다. 1매에 16몬이니까 10매를 베끼면 164몬이 된다. 주석 부분은 그 반액인 80몬이다. 주석을 베끼는 자도 있고 서양문자를 베끼는 자도 있었다.
이런 것을 3천장이나 베끼는 작업이니까 합계하면 금액이 상당해 당연히 서생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수롭지 않은 돈이지만, 그 당시에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백미 1석이 3부 2슈, 술 1되가 164~200몬이고, 서생의 재숙비는 1개월에 1부 2슈에서 1부 3슈면 충분했다. 1부 2슈는 그 당시 기준으로 2칸 400몬이니까 하루에 100몬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두프』를 하루에 10매만 베끼면 164몬이 되니까 재숙비로는 충분한 셈이다.
아마도 보통 책의 필사본을 만들어 그 대금으로 재숙비를 낸다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난학 서생들에게만 한정된 특별한 장사였다. (…)
구로다 공의 원서를 베끼다
지쿠젠(筑前) 고쿠슈(国主) 구로다 미노노카미(黒田美濃守)라는 다이묘는 지금의 화족(華族) 구로다의 할아버지로, 오가타 고안 선생님은 그 구로다 집안에 드나들면서도 지쿠젠이나 에도에 가지 않고 오직 오사카에 있으면서 구로다(黒田) 일가의 주치의를 맡았다. 그래서 구로다의 어르신이 에도로 출부 혹은 귀성할 때 오사카를 지날 무렵이면, 선생님은 반드시 나카노시마의 지쿠젠 저택에 들러 문안을 하는 것이 상례였다.
어느 해, 안세이 3년 아니면 4년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쿠젠 번주께서 오사카에 들른다기에 평소처럼 나카노시마의 저택으로 갔던 선생님은 귀가하자마자 나를 부르셨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니, 선생님이 한 권의 원서를 꺼내 보이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지쿠젠 저택에 가니까 구로다 님이 이런 원서를 입수하셨다면서 보여주시기에 잠깐 빌려왔다.”
그것은 『반더빌트』(Vanderbilt)라는 원서인데, 최신 영어서적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물리서로, 그야말로 최신의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특히 전기에 관한 내용이 아주 상세한 듯했다. 우리가 오사카에서 전기에 대해 조금 공부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겨우 네덜란드 교과서에 군데군데 언급되어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새로 수입된 이 물리서는 영국의 대가 패러데이의 학설을 토대로 하여 전지(電池) 구조법 등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신기한 정도를 넘어 그저 놀라울 뿐, 첫눈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래서 내가 선생님께 “이건 정말로 진귀한 원서인데요, 언제고 빌릴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그럼, 어차피 구로다 님께서는 며칠 간 오사카에 계실 거라는군. 떠나실 때까지 별로 필요도 없겠지” 하고 대답하셨다. “그렇습니까, 주쿠의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하고는 주쿠에 갖고 와서 “어때, 이 원서는?” 했더니, 그 책을 구경하려고 주쿠 내의 서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나는 선배 몇 사람과 상의해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책을 베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책을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보는 건 중단하고, 자 베끼자. 하지만 1천 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을 모두 베끼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뒷부분의 전기에 관한 부분만 베끼자. 모두들 붓과 종이와 먹을 준비하고 한꺼번에 달려들어 시작하자.”
그러나 한 가지 곤란한 점은 구로다 님의 소중한 장서를 분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쪼개서 나누어 작업하면 인원이 수십 명이나 되니 순식간에 끝낼 수 있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가타의 서생들은 사본 제작의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기에, 한 사람이 원서를 읽으면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듣고 받아쓸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은 읽고 한 사람은 쓰기 시작했다. 쓰는 사람이 다소 지쳐 붓놀림이 둔해지면 즉시 다른 사람이 교대하고, 지친 사람은 아침이건 낮이건 즉시 잠을 자는 방식으로 밤낮 없이, 밥 먹는 시간도 담배 피우는 시간도 쉬지 않고 계속했다.
그 결과 대략 2박 3일에 걸쳐 전기에 관한 부분은 물론 그림도 베끼고 교정까지 보았다. 분량은 약 150~160매 정도였다. 가능하면 다른 부분도 베끼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일단 이것만이라도 베꼈으니 고맙게 생각했다.
구로다 님께서 이 책 한 권을 80냥에 구입하셨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가난한 우리 서생들은 그저 놀라움을 금치 못할 뿐이었다. 애당초 나는 책을 사겠다는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드디어 구로다 님께서 떠나시게 되자, 우리는 그 원서를 쓰다듬으며 마치 부모님께 작별인사라도 하듯 아쉬워하며 돌려준 적이 있다.
그 후로 주쿠 내에서는 전기에 관한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여, 당시 일본 전국에서 최고의 수준에 있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우리들이 오늘날도 전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대충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 사본 덕분이다. 그 후에 혹시나 그 원서가 있지 않을까 하고 이따금 구로다 님 댁에 여쭤봤지만, 그쪽도 경황이 없었던지라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102~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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