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스 레터) 이해받기 힘든 이야기인용 2025. 5. 10. 18:26
행복은 나비와 같다. 쫓으면 쫓을수록 더 멀리 도망가버린다. 하지만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절로 날아와 어깨 위에 사뿐히 앉을 것이다.
(…) 장서 점검 때만큼은 아니지만 어디에 있는지 도통 모르겠는 도서를 찾을 때도 책을 물체로서 강하게 의식합니다. 도서관 서가는 분류기호, 도서기호, 권차기호 등으로 이루어진 청구기호에 따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정렬됩니다. 하지만 이따금 어떤 이유로 인해 이 정규 배열을 벗어나 서가에서 미아가 되어버리는 책이 있습니다. 책이 정규 배열 속에 있으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어쩌다가 그곳을 벗어나면 사막에서 바늘 찾기가 됩니다.
사라진 도서를 찾을 때, 저는 책 하나하나의 청구기호나 제목을 확인하기보다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어 전체를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시야 한구석에서 찾던 책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 사서 경력이 긴 어느 동료는 “반드시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찾으러 가야 발견할 수 있어”라고 조언했습니다. 이는 정말 맞는 말이어서, 청구기호대로 꽂혀 있어도 그 책의 형식이 학술지나 바인더처럼 일반도서와 다른 경우에는 신입 직원이 아무리 애를 써봤자 서가에서 찾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고참 직원은 경험을 통해 ‘반드시 있다’는 확신을 쌓아왔기 때문에 책을 찾을 확률도 높습니다. 다양한 업무 경험을 통해 책을 철저하게 구체적으로 대하는 자세가 길러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루차 리브로 역시 실재하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찾으러 가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 어쩐지 들어맞는 듯합니다. 저희 도서관은 문을 여는 날이면 ‘인문계 사설 도서관 Lucha Libro’라고 널빤지에 적어서 만든 간판을 숲속 나무에 기대어 세워둡니다. 그런데 가끔가다 “여기는 오래된 민가를 개조한 카페인가요?” 하고 물어보러 오는 사람도 있고, “사설 도서관이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수익은 어떻게 냅니까?” 하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자택을 개방해 만든 사설 도서관이라서 수익을 내는 형태로는 운영하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하지만, 아무래도 납득을 못 하는 경우도 있고요. ‘도서관 안을 둘러보거나 책 라인업을 봐주면 좋을 텐데’ 하고 조금 아쉬워하며 그런 사람들의 뒷모습을 배웅합니다. 아마도 이는 일반 서적을 떠올리며 서가로 찾으러 갔는데 학술지나 바인더가 줄줄이 꽂혀 있어서, 찾는 책으로 인식하지 못해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도서관’의 이미지와 저희 도서관의 모습이 다른 탓에 카페나 상점이라고 착각하거나 끝내 ‘도서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루차 리브로는 ‘여긴 틀림없는 도서관이야’라는 기믹(gimmick)을 공유하는 사람이 아니면 발견하지 못하고, 그 서가에도 당도하지 못하는 숨겨진 마을 같은 장소인지도 모릅니다. 히가시요시노무라 계곡 아래에 있는 지은지 70년쯤 되는 낡은 집을 ‘도서관’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저희지만, 그 기믹을 믿고 찾아와주는 손님이 있기 때문에 이곳이 도서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루차 리브로는 실재하는 장소인 동시에 관념으로 성립하는 장소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반드시 있다고 믿으면서,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어 전체를 바라봐주세요. 그러면 오래된 집을 데이터가 아닌 실물로 존재하는 책으로 가득 채운 도서관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치유의 도서관 '루차 리브로' 사서가 건네는 돌봄과 회복의 이야기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 알라딘
일본 나라현 산촌, 70년 된 고택에 자리 잡은 인문계 사설 도서관 ‘루차 리브로(LUCHA LIBRO)’의 사서가 들려주는 책과 삶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 도서관을 열기까지의 사연부터 책이라는 창문을
www.aladin.co.kr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려읽기) 내의를 벗어 빨았어 (0) 2025.05.11 (가려읽기) 철학.. 하지 않을래요? (0) 2025.05.10 (에디터스 레터) 왜 올드 미디어를 하는가 (0) 2025.05.07 (가려읽기) 노能의 이해: 이것이 다도이다 (0) 2025.04.30 (가려읽기) '무인도 규칙'을 알고 있습니까? (1) 2025.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