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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노能의 이해: 이것이 다도이다인용 2025. 4. 30. 20:01
우선 첫째로 다실에서 주객이 한몸이 되어 ‘이치자〔一座〕’를 만들려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모두 배우가 되어야만 한다. 다도의 시작은 그 연기부터 몸에 익혀야 되는데, 주인이 하는 연기는 ‘데이슈부리(亭主ぶり)’라 하고, 손님이 하는 그것은 ‘갸쿠진부리(客人ぶり)’라고 한다. ‘데이슈부리’는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기 위해서 물건을 나르고 차를 끓이고 또 그것을 치우는 하나하나의 행동을 시나리오에 맞추어 연출하고 진행해야 된다.
즉 행주〔帛紗〕로 찻잔을 훔치는 것, 찻잔을 들어 올리고 놓는 것, 차를 따르는 것, 심지어 그릇을 헹군 물을 내버리는 것까지도 모두 ‘다테마에〔建前〕’라는 복잡한 양식에 맞추어 행동해야 된다. 그것은 ‘시구사(しぐさ)’라 불리는 노〔能〕의 연기와 똑같은 것이다.
손님은 관객이고, 다실의 다다미는 무대이고, 도코노마에 놓인 꽃이나 족자는 무대장치이다. 물론 주인은 연기를 하는 배우인 것이다.
명연기를 하기 위해 주인〔亭主〕은 평소에 ‘와리게이코(割り稽古)’라는 피나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차를 준비하고 끓이는 그 양식(樣式), 특히 도구를 운반할 때의 걸음걸이는 노아미〔能阿弥〕가 고안된 것인데*, ‘노〔能〕’ 춤을 출 때의 발동작을 도입한 것이라 한다. 이 사실 하나만 가지고 보더라도 다도가 연극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니, 연극 이상의 것이다. 왜냐하면 극에서는 관객과 배우가 엄연히 둘로 분리돼 있지만, 다실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손님 앞에 찻잔이 놓이면, 지금까지 관객 역할을 하고 있던 손님이 이번에는 배우 노릇을 하게 된다. ‘오테마에 조다이 시마스(차려주신 차를 마시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대사에 맞춰 외우면서 오른손으로 찻잔을 잡고 왼손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기본 동작으로부터 연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차 한잔 마시는 일이라고 깔보아서는 안 된다. 찻잔을 바깥쪽에서 손 앞으로 한 바퀴 반 돌린다거나 혹은 차를 마실 때 생긴 입술자국을 손가락으로 씻고 손가락은 주머니에 마련해 간 종이(이것 역시 연극의 소도구와 같은 것이다)로 닦는다거나 하는 꽤 복잡한 연기이다. 그러면 조금 전만 해도 배우였던 주인이 이번엔 관객이 되어 차를 마시는 연기를 조용히 감상하는 것이다.
이런 연기를 통해서 주인은 손님에게 정성껏 차를 달였다는 환대의 정을 보이고, 손님은 그러한 주인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그러한 다실의 시나리오와 연기에 의해서 주인과 손님은 깊은 일체감, 다른 용어로 말하면 다삼매경(茶三昧境)에 몰입, 융합되는 것이다. 더구나 다실의 연기는 무대의 그것보다 한층 더 진지하다. 무대 위의 연기는 허구(虛構)이기 때문에 마치 나무칼을 들고 싸우는 것 같지만, 다실에서 진짜 차가 왔다 갔다 하는 그 연기는 실제로 끓이고 마시는 것이므로 진짜 칼로 시합하는 것과 같다. 그야말로 ‘신켄〔真剣〕’이 안 될 수 없다. 연극 무대는 넓고 관객은 멀리 떨어져 있으나 다실의 그것은 좁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모두 건성건성 해치울 수 없는 것이다.
이어령, 『축소지향의 일본인』, 279~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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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로는 비문인데, 아마도 ‘노아미’가 인명인 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이 원고가 쓰이던 무렵에는 개인용 컴퓨터를 여간해서는 쓸 수 없었다. 또한 일본 문화를 거의 총망라한 노작이므로 상세사항의 증보는 응당 후학의 몫이 될 것이다. -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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