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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무인도 규칙'을 알고 있습니까?
    인용 2025. 4. 30. 11:03

    (...) 어째서 자신이 거둔 노력의 성과를 타인과 나누지 않으면 안 되는가?

     

    아니, 그건 내 몫이잖아?

     

    어허, 그게 아니라니까....

     

    오늘날에는 거의 읽히지 않는 "스위스의 로빈슨 가족"이라는 아동문학작품이 있다. 이 소설은 스위스인 일가가 표류 끝에 도착한 무인도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그 첫머리에 무인도에 닿은 뒤 해안에서 모두 어패류를 모아 부이야베스(bouillabaisse)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수프는 다 끓였지만 떠먹을 그릇이나 스푼도 없고, 양도 부족하다. 어쩔 수 없이 모두 작은 굴 껍데기를 돌려가며 수프를 떠먹는다. 그러자 어린애 한 명이 커다란 조개껍데기를 꺼내어 수프를 푹푹 떠먹기 시작했다. 참 요령 좋은 아이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을 본 아버지가 아이에게 묻는다. "넌 커다란 조개껍데기로 먹어야 수프를 더 효율적으로 먹을 수 있다는 걸 알았구나?" 아이는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네, 맞아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왜 너는 가족 수대로 조개껍데기를 주워오지 않고 자기 것만 주워온 게냐? 너한테는 수프를 먹을 자격이 없다."

     

    나는 아홉 살 즈음에 이 에피소드를 읽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하, 그렇구나..., 집단을 이루어 사는 데 '그런 룰'에 따르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구나 하고.... 메모를 해둬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젊은이들 대다수는 이런 에피소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여기에 나오는 아버지가 머리가 좀 이상한 게 아니냐고 물을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경쟁적으로 분배할 경우에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행동하는 게 왜 질책을 받을 만한 일인가?

     

    이 룰을 받아들이면, 이를테면 주식 거래 같은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맞다. 그렇다.

     

    "스위스의 로빈슨 가족"에 나오는 아버지의 룰에 따르면 주식은 거래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의 룰이란 '여러 명의 인간이 무인도에서도 살 수 있는'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점을 기억해두자.

     

    '무인도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룰이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허용되는 특별한 예'일 뿐이다. 그리고 현대의 젊은이들은 그런 '특별한 예'밖에 알지 못한다.

     

    '개인적 노력의 성과는 개인이 점유해도 좋다'는 것은 생존경쟁이 거의 없는 시대, 자원의 분배 경쟁에서 패배하더라도 굶어죽지 않는 안전한 시대에만 적용할 수 있는 '특별한 룰'이다. 이른바 '온실 속의 룰'이다. 패자가 되어도 목숨을 빼앗기지는 않는다는 '편안한' 사회에서만 '자기 이익의 추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삶의 방식을 허용받을 수 있다.

     

    그 이외의 모든 경우에는 노력의 성과를 점유해서는 안 되고, 늘 타자와 더불어 나누지 않으면 안 되는 '무인도의 룰'이 적용된다. 현대 일본처럼 안전하고 풍요로운 시대에도 친족의 구성, 커뮤니케이션, 교환처럼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본질적인 활동에서는 의연하게 인류학적 타성이 작용하기 때문에 '무인도의 룰'이 적용된다.

     

    자기 이익의 추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온실 속의 룰'을 통해 성장한 아이들이 이익을 모두가 나누어갖고 위기는 모두 분담한다는 '무인도의 룰'이 적용되는 장소에 내던져질 때 무엇보다도 '일을 잘할 수 없다'는 현상에 당황하고 만다. 젊은이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보람'이란 말도 '온실 속에서 성장'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그들은 '보람이 있는 일'을 찾아 이리저리 직장을 옮기곤 한다.

     

    이때 그들은 '보람이 있는 일'이라는 말을 '수험 공부와 비슷한 일'쯤으로 생각한다. 한마디로 스스로 선택한 일을 통해 자기가 노력한 성과가 객관적 평가를 얻어 정해진 시간에 다름 아닌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을 가리킨다.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일은 그런 식으로 구조화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보람'을 찾는 젊은이들이 결국 찾아내는 '보람 있는 일'이란 뮤지션이나 아티스트, 작가 같은 '자영업 크리에이터' 계열로 국한되고 만다.

     

    확실히 로큰롤 가수가 천만 인, 개그맨이 천만 인, 만화가가 천만 인인 사회가 되는 것도 신명나고 활기차겠지만, 사회적인 요구도 좀 생각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특히 '자신의 일'과 '타인의 일' 사이에 경계선을 확실히 그었으면(그렇게 하지 않으면 적정하게 성과를 평가할 수 없으니까) 하는 요청은 불가피하게 그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킬 따름이다. 본인들은 그 점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