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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세계 전략과 일본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5. 2. 09:52
‘트럼프의 세계 전략과 일본’이라는 논제를 쓰라고 부탁받았건만, 애초에 ‘트럼프의 세계 전략’이란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다. ‘전략’이라고 부를 만한 게 과연 트럼프에게 있을까? 그나마 알 수 있는 건, 미국의 통치 시스템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고, 국제 사회에서의 지위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언젠간 대항마의 거동이 트럼프의 폭주를 멈추리라고는 생각하지만, ‘언제’ 그리고 ‘누가’ 그 소임을 맡을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트럼프는 임의의 징벌적인 관세정책을 통해 세계 경제를 혼란시키고 있다. 각국에서 ‘미국 패닉 셀’이 시작되었다. 연방기관은 몇 군데 폐지되었다. 주요 정부기관에도 상부에는 트럼프의 측근들 (그 대다수가 직위에 전혀 적절치 못한 인물)이 낙하산으로 갔다. 트럼프의 위법 행위를 수사하고 있던 FBI 수사관과 검사는 해고당했다. 대학 캠퍼스에서 ‘이스라엘 비판, 팔레스타인 지지’ 운동을 했던 학생을 처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콜롬비아 대학에 정부 지원금을 끊겠다고 협박을 했다 (대학은 굴복했다). 트럼프를 비판했던 남아공 대사는 추방당했고, 학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프랑스인 연구자는 휴대전화에 트럼프를 비판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당했다. 이미 캐나다나 독일, 영국 같은 경우 미국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미국 출국을 일정 기간 자제하라고 자국민에게 공표하기 시작했다. 주가는 하락하고, 외환 시장에서는 달러 처분이 시작되었으며, 높은 관세 때문에 미국 국내 물가가 앙등하고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 제도인 메디케이드 기금조성을 감액했다. “퍼스트”로 대접받았어야 했을 국민이 트럼프 탓에 실직한다든가 의료 혜택을 중단당한다든가 고물가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한편, 트럼프 지지자인 초부유층은 심심한 우대 정책의 은혜를 입고 있다.
앞으로는 더이상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할 수 없다. 미국만이 세계질서의 안정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은 부당하다. 미국은 미국만을 지키겠다. 다른 나라는 자국을 지키라, 하는 것이 트럼프의 ‘세계 전략’이다 (이를 ‘세계 전략’이라고 부르기조차 적이 민망하지만).
분명히 미국인은 종종 부적절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제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과 면담한 뒤에, “성정이 거칠고 용렬하며, 경력을 살펴보면 자유로운 인민을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자질을 증명할 그 어떤 사항도 찾을 수 없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미국인은 그런 잭슨을 재선시켰다.
부적절한 통치자를 뽑고 만다는 건 ‘민주정의 비용’이므로 어쩔 수 없다. 다만, 적절치 못한 인물이 통치자가 된다 하더라도 통치 시스템은 쉬이 무너지지 않는 미국의 복원력을 토크빌은 높이 평가했다. “공무원이 권력을 악용하는 일이 있더라도, 권력을 갖는 기간은 일반적으로 길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복원력은 트럼프 정권에는 아마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통치 기구를 예스맨으로 싹 갈아엎은 뒤, 그는 어쩌면 ‘긴급 사태’를 선언하여, 대통령 선거를 시행할 만한 여유가 없다고 주장하며, 그 지위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퇴직 후에 무수한 죄상으로 말미암아 소추 당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민주주의 지표(완전한 민주주의가 플러스 10, 완전한 독재제가 -10으로 이루어진 21단계 평가 체계)’에 따르면 지금 이미 플러스 5이며 이는 곧 ‘내전 상태 범주’에 들어 있다는 뜻이다. 아마도 다음 평가에서는 더욱 낮은 평점을 받을 것이다. 몇몇 주에서는 연방으로부터의 독립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연방 독립을 지지하는 비율이 지금은 32%에 달한다. 독립하면 인구 3,900명, GDP 세계 5위의 ‘대국’이 된다. 트럼프 아래에 있는 것보다 캘리포니아에 가는 게 ‘미국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거 서해안으로 이동할 것이다. 영화 <시빌 워>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를 포함한 19개 주가 연방에서 탈퇴한 뒤 연방정부와 내전을 벌인다는 이야기인데, 이미 이것은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일본과 관련해 쓸 자수가 그만 부족해졌다. 시급한 문제는 트럼프가 ‘일미 안보 조약의 폐기’라는 카드를 흔들면서, 안보 조약을 폐기하고 싶지 않거들랑, 미국산 무기를 대량 구매할 것, ‘일본국 재정장부상 눈 먼 예산’을 증액할 것, 주일미군기지를 ‘미국 영토’로 명시할 것, 자위대를 미군의 통제 하에 둘 것 등을 요구해 올 사태가 일어난다. 자민당 정권은 트럼프의 요구를 모조리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후 80년 ‘일미 동맹 기축’ 말고는 안전 보장 정책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해 오지 않았으므로 어쩔 도리가 없다.
그 이상으로 찜찜한 것은, 트럼프가 ‘딜 놀음’에 싫증이 난 나머지, 일미 안보 조약을 진짜로 폐기하는 경우이다. 일본인이 스스로 국방 정책을 구상할 적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이란 2차 대전 이전의 대일본제국밖에는 없다. 따라서, 만일 안보 조약이 폐기된다면, 일본은 ‘이웃 나라 모두가 가상적국’이라는 지정학상 가장 부정적인 환경 속에서 바늘두더지처럼 의심병으로 똘똘 뭉친 ‘열화 복제본’과 같은 국가로 귀착할 것이다. 다시말해, ‘돈많은 북한’ ‘넓은 국토를 가진 싱가포르’가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게 뭐가 문제인데?’ 하는 일본 사람들이 지금 상당수 있다. (어쩌면 다수파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필자를 침울하게 한다.
(4월 1일)
(2025-04-03 06:27)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커먼의 재생』 『무도적 사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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