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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사, 평가 그리고 스승, 수행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4. 20. 16:13

    사람은 어째서 ‘저주하는 말’을 잔뜩 먹어가면서까지 에고 서치를 하는가에 대한 그간의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짓도록 하겠다.

     

    그 이유는 젊은 사람들이 ‘객관적이고 엄밀한 심사’라는 현실에 자신을 방치하는 것을 사회적인 의무로 느끼도록 훈육 (세뇌) 받은 탓일 거라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 자신은 타인한테서 받는 평가에 관심이 없다. 스승으로 우러르는 분들의 평가는 신경 쓴다. 하지만 스승이라는 존재는 ‘용기를 주는 말’을 보내는 경우는 있어도, ‘가슴을 후벼 파는 평언’은 결코 꺼내지 않는 것이다. 스승은 필자의 성장을 바라고 있을지언정, 필자가 자신에 대한 자기평가를 엄밀히 얻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만약 평가가 필자의 성장에 들어가는 노력의 인센티브를 저해하는 질의 것이 맞다면, 스승은 아마 ‘우치다 군 그런 평언은 몰라도 돼’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심사’의 반대 개념은 그럼 과연 뭐냐고 묻는다면, 다들 생각에 빠지느라고 대답거리가 궁할 것이지만, 필자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질문도 아니다. ‘심사’의 반대는 ‘수행’이다. 선달을 따라 길을 걷는 것. 이것만큼 사정과 동떨어진 소업은 없다.

     

    수행을 함에 있어 자신이 전 과정의 어드메까지 왔는가 알고자 하는 자란 없다. 자신이 답파했던 거리나 거기에 들었던 시간을 다른 수행자와 비교해서는 ‘이겼네 졌네’ 하고 소란을 피우는 자도 없다. 자신이 해온 수행이 어느 정도의 레벨인지 100점 만점으로 심사해 달라고 스승에게 간원하는 자도 없다. 수행을 하면서는 아무도 상대적인 우열을 다투지 않는다. 수행을 어지간히 한 자가 초심자보다도 더 많은 자원을 분배받고서 ‘깨소금 맛’이라고 여기는 일도 없다 (자신이 떠맡는 과제의 난이도가 높아질 뿐이다).

     

    필자는 25세 때부터 무도 수행자로서 살아왔다. 누구와도 상대적인 우열을 겨루지 않고, 그저 스승의 뒤를 걸어왔다. 나중에 필자는 연구자가 되고, 책을 쓰며, 문인을 길러 왔으나, 그중 어느 것도 다른 사람과 우열을 다툰다든지, 경쟁에서 이기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다. 수행자에게는 스트레스가 없다. 평가로 고통받는 젊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만큼이라도 전해 두고 싶다.

     

    (2025-03-26 16:31)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커먼의 재생』 『무도적 사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