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제자라는 것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4. 18. 10:45

    매년 한국에서 개풍관으로 손님들이 찾아오신다. 필자가 쓴 책을 읽은 독자들이다. 필자의 책을 한국어로 많이도 번역해준 박동섭 선생이 기획하고, 인솔해 주는 행사다.

     

    올해는 두 그룹이 오셨다. 처음에는 지방에서 공동체를 일구고자 하는 이주자들, 두번째는 출판 관계자들이다. 내관자들로부터 다양한 질문을 받은 뒤, 그에 필자가 답해 드린다는 취지이다.

     

    가장 재미났던 질문 가운데 하나가 "선생님은 어째서, 그렇게 매사에 개방적인 태도로 지내실 수 있는 겁니까?"였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기는 했지만, 정확히 짚어주셨기에, 이렇게 대답드렸다.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철학 분야에서는 에마뉘엘 레비나스 선생을, 무도 방면으로는 다다 히로시 선생을 스승으로서 존숭하고 있다. 레비나스 선생은 돌아가신지 어언 30년이 되었지만, 돌아가셨다 하더라도 스승이라는 점에 변함은 없다.

     

    필자는 이렇듯 스승 두 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길을 걷고 있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가, 지금 어느 과정에 있는가, 다른 제자들은 필자보다 앞서 있는가, 뒤처져 있는가, 필자는 알 수 없다. 스승이 하시는 말씀, 그 일거수 일투족에 담겨 있는 가르침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시 필자로서는 잘 모른다. 잘 모르기에, 알고자 한다. 잘 모르는 이유는, 스승의 가르침이 너무나 심원하며, 그에 비해 필자의 그릇이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그릇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긷는 이외에 제자 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따라서, 매일 조금씩 떠올려서는, 필자 뒤를 걸어오는 동학동문의 사람들에게 '자, 여기' 하고 건네준다. 그러한 일을 반세기 정도 이어오고 있다.

     

    이리하여, 요 반세기 논문을 쓰고, 책을 쓰며, 무도를 가르쳐 왔는데, 그 어느 것이든 누군가와 우열이나 옳고 그름을 경합했던 적이 없다. 제자는 스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걸을 따름이지, 다른 사람과 승패 강약 교졸*을 겨루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 출전은 에도 시대 병법가 다쿠앙의 '태아기'인데, '교졸'은 우치다 선생이 친히 말씀하신 것. '교지불여졸속'이라는 말은 손자병법에 나온 바 있으며, "승자는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서 계산"을 한다라는 말도 있음을 졸생은 밝힌다. - 옮긴이)

     

    필자가 '고집스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필자가 제자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모른다'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스승이 그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스승을 모실 수 있는 이 한 몸 행운에 감사하고 있기에, 필자는 언제나 온화한 것이다. 그렇게 설명을 드렸다.

     

    (AERA 3월 5일)

     

    (2025-03-21 08:0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커먼의 재생』 『무도적 사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역자: 정직하게 말해서, こだわりが ない라는 말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글에서 유추해보면 분명히 한국어로 애초에 발화가 되었을 것인데, '코다와리가 나이' 라고 읽히도록 통역이 되었다면, 아마 한국어 '꼰대 스럽다'라는 말과 연관이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를 꼰대라고 손가락질하기보다, 부디 부디 저 스스로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항상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