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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통형의 신체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4. 15. 15:51

    지난주에 이어 무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진짜 이상한 이야기’임으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하는 점에서는 독자 여러분 모두가 똑같은 조건에 있습니다.

     

    나는 무도 수련을 시작한 지 50년 됐습니다. 아이키도, 이아이, 검술, 조주쓰 등을 수련해 왔습니다. 아무래도 그만큼 오랫동안 수련했으니, 무도적인 신체가 어떤 것인가를, 경험적으로 깨닫게 되곤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신체는 「지쿠와」(어묵 - 옮긴이)같은 것이다’라는 체감입니다.

     

    「지쿠와」가 뭔지 아시죠? 입에서 항문까지가 ‘지쿠와의 구멍’이고, 신체가 ‘지쿠와의 몸 부분’. ‘구멍’을 음식이 통과하여, ‘몸’이 양분을 흡수해, 남은 것을 배설합니다.

     

    호흡도 이런 체감에 가깝습니다. 들숨 때는 ‘원통’을 공기가 한번 빨아들이고, 날숨 때는 아래에서 살며시 밀어올립니다.

     

    그러한 신체 감각이 뭐가 무도적이냐, 의문스러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신체를 원통형이라고 생각하면 온갖 것이 이해가 됩니다. 의상 착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일본 기모노는 원통에 휘감듯이 입습니다. 포의 섬유 마찰로 기모노는 멈추는 탓에, 오비를 하나 감으면 딱 걸쳐집니다. 양복은 얇은 육면체에 얹듯이 하여 입습니다. 정장은 그렇게 몸에 덧대어집니다. 하지만, ‘자신의 신체는 얇은 육면체다’라고 하면서 기모노를 입어보십시오. 옷깃이 흐물흐물 빠져나가고 오비가 풀어져버리게 됩니다.

     

    신체는 원통이라고 단정하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신체 운용이 있습니다. 그것이 ‘발도’입니다. 왼쪽 옆구리에 찬 칼을 뽑을 때, 손잡이를 쥔 오른손은 ‘앞’에 나오고, 칼집을 쥔 왼손은 ‘뒤’로 밀립니다. 찻잎 통을 열 때의 동작을 떠올려 보십시오. 오른손은 뚜껑 부분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왼손은 통 부분을 왼쪽으로 돌리지요? 발도술은 이런 운동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회전이 된 원주 만큼의 길이를 가진 칼은 뽑을 수 있습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자서전』에, 후쿠자와가 친구 집 도코노마에 호신용이라고 일컬어지는 장도가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고서, ‘이렇게 긴 칼을 자네는 뽑을 수 있겠는가’ 하고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뽑지 못한다고 대답한 친구에게 ‘뽑지 못할 물건을 보란 듯 놓아두는 바보가 있는가?’ 하고 꾸짖은 뒤, 후쿠자와는 마당으로 내려와서 ‘4척 정도 되는 무거운 칼’로 이아이를 두세 번 시범하였다고 합니다.

     

    글로만 보면 쉬워 보이는데, 4척은 약 120센티미터입니다. 내가 이아이 수련에 쓰는 일본도는 245(74센티미터)입니다. 이 이상 긴 것을 다루자면 적잖이 부대낍니다. 후쿠자와는 나보다 훨씬 키가 작았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대체 어떻게 4척 되는 장도를 뽑았을까요. 손을 아무리 뻗어도 뽑을 수 없습니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역회전하는 ‘찻잎 통’에서 했던 신체 운용으로 원주 길이를 확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이 되었든 동양이 되었든 ‘긴 칼을 뽑는’ 식의 신체 운용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한류 사극을 보면 무관들은 긴 칼을 왼손에 휴행하고 있지만 칼집에서 뽑지는 않습니다. 중국 시대극에서도 청룡도는 어깨에 매고 있습니다. 유럽 펜싱 선수들도 ‘긴 검을 한 순간에 뽑는’ 기술에는 흥미가 없어 보입니다. 결국, 신체를 원통형이라고 간주하는 문화권 이외의 곳에서는 ‘발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 는 게 내 가설입니다.

     

    이런 얘기가 입시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의심스레 여기는 독자가 있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전혀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상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심신의 ‘리셋’에 효과적입니다. 우선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 신체는 원통이다’ 하고 단정하고 지내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느낌일지 기대해 보세요. (『형설시대』 3월호 227)

     

    (2025-03-19 12:25)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커먼의 재생』 『무도적 사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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