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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수에 걸려들지 말라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4. 15. 12:05

    나는 고베에 가이후칸이라는 도장을 갖고 있고, 게서 150명 정도 되는 문인에게 무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얘기 전에도 했었지요?

     

    이 무도란 것에서 가장 중요한 건 ‘후수(원문 後手 고테)에 걸려들지 않는 것’입니다. 적이 추상적이기는 합니다만, 무슨 뜻인지 아실 겁니다. ‘상대가 뭔갈 걸어왔으므로, 그에 최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것이 ‘후수에 걸려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다들 놀라실 게 뻔합니다. 그야, 지금까지 살면서 계속 ‘과제를 부여받고, 그에 최적해로 응하려 노력하면, 그것을 심사받고서, 점수가 높으면 칭찬받고, 낮으면 혼이 난다’ 하는 일들만 해 왔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건 죄다 ‘후수에 걸려드는’ 것인데, 무도적 용어로는 ‘반드시 진다’함을 의미합니다. 우째 이런 일이!

     

    ‘진다는 것’을 놓고 보면 아마 여러분은 눈 앞에 있는 라이벌과의 승부를 가리는 것(이를테면 시험)을 생각할 줄로 압니다만, ‘후수에 말려든다’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장을 주재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서둘러 이런 얘길 해도 잘 모르시겠지요. 하기야 여러분은 태어나자마자 온통 ‘후수에 걸려드는’ 방법만을 배워왔으니까요. 학교든 동아리든 알바든* 할 것 없이 그랬겠지요. ‘곤란한 문제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모든 게 시작되었던 겁니다. 이 점을 털끝만큼도 의심치 않습니다. 그것이 현대인의 기본값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인 이상, 절대로 장을 주재할 수는 없는 겁니다.

    (* 일본 고등학생은 동아리도 하고 알바도 한다 – 역주)

     

    ‘장을 주재한다’는 것은 상대보다 앞서 본인이 공격에 나선다든가, 문제가 제시되기 전에 답을 낸다든가 하는 그런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그거, 무리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네요. 앞서거나 뒤서거나, 늦거나 빠르거나를 다투는 건 상대방과의 상대적 우열을 다툰다는 점에서 이미 ‘후수에 머물러 있다’는 겁니다.

     

    ‘장을 세운다. 장을 주재한다’는 것은 상대적 우열을 그만 겨루기로 하는 것입니다. 승패, 강약, 교졸만을 겨루어 오시기만 했으니만큼 무리도 아닙니다. 그러한 삶의 방식만 존재한다고 여겨오셨으니까요.

     

    하지만, 그렇지가 않거든요. 물론 세상에는 경쟁이랑 다른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수행입니다.

     

    여기서 놀라시면 안됩니다. 수행하라 했다고 느닷없이 머리 깎은 다음에 산으로 들어가라든가, 초밥 장인의 도제가 되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수행’이란 선달(불교 용어 - 역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길을 걸어가는 일입니다. 무도가의 경우 목적지는 ‘천하무적’, 선승의 경우 ‘대오 해탈’입니다. 물론, 아무도 그러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무한 소실점과도 같은 목표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없으면 수행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우리는 매일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걸음에 있어서는 ‘전 과정 가운데 어디까지 왔는가’, ‘남들보다 멀리 왔는가’, ‘남들보다 빠른가’ 하는 질문이 나올 턱이 없습니다. 의미가 없으니까요. 수행을 하면서는, 상대적인 우열을 누구와도 다투지 않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상상이 잘 안 갈 줄로 압니다. 그래도 이런 삶의 방식이란 게 있습니다.

     

    나는 스물 다섯 살때부터 50년 동안, 수행자 되어 스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걸어왔습니다. 그 사이에 대학원에 가고, 교사가 되고, 책을 쓰며, 도장을 차리는 등,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습니다만, 이 모든 일들을 타자와의 상대적 우열을 비기기 위해서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한결같이 길을 걷고자 행했을 따름입니다. 혹여 비교할 상대가 있다손 치면, 그것은 ‘어제의 나’일 뿐입니다. 어제보다 얼마큼 길을 나아갔는가, 그것만을 문제삼습니다. 그런 삶의 방식도 있습니다. (『형설시대』 2월호 / 127)

     

    (2025-03-19 12:2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커먼의 재생』 『무도적 사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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