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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서칭 하는 사람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4. 15. 12:03
필자 또래의 노인들과 그 자식뻘 되는 사람들 이렇게 일곱이서 여행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차 한잔 하는 와중에, 어떤 노인 한 명이 “인터넷 상에서 비방 음해, 거 조금 받았다고 자살하는 사람이 있나본데,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그런 건 안 읽어버리면 그만 아닌가?”라며 평소부터 품어왔던 의문점을 꺼냈다. 청년들은 이 영감님을 어찌 설득해야 좋을꼬 하는 듯이 서로 멀뚱멀뚱 눈치만 보기에, 필자가 일부러 나서서 설명할 임무를 떠맡았다.
“자네야 자네 스스로 누구인지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만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걸세. 자네는 긴 시간을 들여 가족, 친구, 직장 동료와 어울리며 만들어 온 탄탄한 기반이 있어. 따라서, 자신이 어느 정도의 인간인지를 알고 있는 셈이지. 하지만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그렇지 못해. ‘자신은 어느 정도의 인간인가?’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거야. 그들 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평가와 심사에 제도적으로 노출되어 왔어. 게다가, 등수 매기기에 근거해 자원이 선별 분배(원문은 傾斜 inclined) 되는 것이 사회적 공정성이라고 학습하며 자라왔던 거야. 따라서, 가족이나 친구가 해주는 인정(원문 承認)만으로는 성이 찰 수 없어. 주위의 호의적인 평판보다도 생판 모르는 남한테서 아주 고통스런 비판을 받는 게 더욱 객관성이 있다고 무의식중에 여기고 말아. ‘에고 서치’를 그만둘 수 없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야. 결국 그렇게 익명의 타자가 보내는 ‘저주의 말’ 속에 들어있는 독성을 감당 못 하고 목숨을(원문 命. ‘사는 힘’ - 역주) 깎아먹게 되는 것이지.”
그렇게 설명을 하다 보니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군 하고 자기 스스로 설득이 되었다.
필자 자신은 노인이므로 타자의 평가에는 관심이 없다. 물론 몇 명 정도 필자가 그 견식을 존중하는 예외적 독자가 있기는 하지만, 채 한 손에 다 꼽고도 남을 지경이다. 따라서,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심사하는지 알아보려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는 필자에게 ‘이상하게’ 비친다.
‘에고 서치’ 하는 사람들은 왜 자신의 생명력을 치명적으로 꺾을 수밖에 없는 ‘저주의 말’에 이다지도 무방비한가. 이를 설명하려는데 지면이 허락치 않는다. 다음 주에 이어서 논해보겠다.
(시나노 마이니치 신문 3월 5일)
(2025-03-19 10:45)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커먼의 재생』 『무도적 사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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