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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니스 바루파키스 『테크노퓨달리즘』 서평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3. 28. 10:15
세간에는 돈 얘기가 나오면 갑자기 머리 회전이 빨라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필자는 덧셈을 할 때도 뒤에 '엔'자가 붙으면, 갑자기 숫자 세는 능력이 낮아지는 '경제에 약한 사람'이다. 따라서, 경제서를 읽고서 '이해가 갔던' 적이 없다. 『자본론』 역시 수식이 나오는 페이지는 전부 건너뛰고서, '자본의 근원적 축적' 부분부터 읽을 정도이다. 그런 필자에게도 이 책은 마지막까지 술술 읽혔다.
저자 바루파키스는 2015년 그리스 경제 위기 당시 재무장관을 지낸 재정 전문가이다. 화폐와 금융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비전문가도 알아먹을 수 있게끔, 정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자본주의의 다음 단계로 일컬어지는 테크노 봉건제의 실상을 밝히고 있다. 참으로 친절한 책이다. 필자는 친절한 사람이 하는 얘기는 믿고 따른다.
어떤 분이라도 '빅테크'가 무엇인지는 알고 계실 것이다. "자본주의의 방계이자 아주 새로운 유형의 지배계급에 등극하는 힘"(79쪽)을 손에 넣은 초부유층 사람들을 이른다. 그들의 손아귀에 지구의 부가 흘러드는 이러한 구조에 대해 바루파키스는 '테크노 봉건제'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자본주의가 변이하여 최종적으로 다다른 모습"(80쪽)이다. 자본가는 자고이래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력에서 잉여 가치를 수탈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본가는 '클라우드 영주'라는 존재로 화했다.
그들의 봉토는 지상에 없다. 구름 위에 있다. 영주들은 중세의 봉건제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토지를 부쳐먹는 농노들에게 '지대(rent)'를 징수한다. 지금도 비옥한 토양이나 광물 자원이 매장되어 있는 토지를 소유한 지주의 호주머니에 지대가 흘러든다. 자고 있는 동안에도 자산가로 자리매김한다. 이렇듯 구체적인 토지 대신에 클라우드 영주들은 구름 위에 영토를 소유하고 있다.
그 과정의 초엽에 스티브 잡스는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아이폰을 시장에 출하했을 때 비로소 세계 최초의 '클라우드 영주'가 되었다. 그는 애플 바깥의 회사들에게 애플의 무료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토록 허용하고, 이를 '애플 스토어'에서 판매할 수 있게끔 하겠다는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다른 스마트폰 회사들(노키아, 블랙배리, 소니 등)은 독자 플랫폼을 개발하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했다. 애플이 이미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아이디어로 구글 역시 '구글 플레이'를 내세워 애플과 클라우드 봉토를 양분했다.
"애플과 구글은 서드파티 개발자가 무급 노동으로 벌어들여 온 매출 가운데 일정 비율 리베이트 명목으로 수수료를 책정했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 이것은 이윤이 아니다. '클라우드 렌트'이며, 곧 디지털 시대의 지대인 것이다." (165~6쪽)
우리는 다양한 일상의 제 행위를 통해 '클라우드 영주'들에게 '클라우드 렌트'를 끊임없이 지불하고 있다.
"알렉사나 시리는 우리의 질문에 답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거두지 않는다. 페이스북, 트위터,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왓츠앱도 마찬가지로, 그 목적은 이윤에 있지 않다. 우선 우리의 시선을 끌어서는, 다름아닌 우리의 심리를 조작하는 데 있다." (170쪽)
영주들 또한 봉토를 놓고서 싸우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보다 싼 가격에 보다 높은 품질의 상품을 공급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투쟁이 더 이상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온라인 경험을 찾아나선 클라우드 농노를 상대로, 이주하고 싶게끔 새로운 클라우드 봉토를 제공"하기 위한 싸움인 것이다(172쪽). 그들이 세운 클라우드 봉토에 다수의 클라우드 농노를 불러들여, 그들로부터 매일같이 지대를 징수하는 비즈니스모델에 성공한 클라우드 영주들은, 급기야 사용 가치가 높은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가들을 '클라우드 봉신'으로 데리고서는, 그들로부터도 지대를 징수하고 있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라는 방향의 『대전환』이 예전에 일어났던 이유는, 지대를 대신해 이윤이 사회경제 시스템의 원동력으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윤 추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새로운 체제가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얻은 데에는, 하마터면 시장봉건제라고 불릴 뻔한 것보다 훨씬 유용하고 의의가 있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지금, 사회적・경제적 시스템이 이윤 아닌 지대로 돌아가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기본적 사실에 비추어, 새로운 이름으로 이러한 현상을 호칭해야 할 때가 되었다. (...) 지대가 각광받는 과거회귀적 현실을 나타낼 때, '테크노 봉건제'라는 말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은 달리 없을 정도다." (172~173쪽)
바루파키스는 향후 영주들은 날로 부유해질 것이며, 농노들은 날로 빈궁해질 것이라는 암울한 미래를 예상하고 있다. 그러한 미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물론 혁명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커먼즈의 재구축"(261쪽)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바루파키스는 『공산당 선언』을 발판삼은 위풍당당한 아지테이션으로 이 책을 끝맺고 있다.
"철저한 테크노 봉건제 아래, 인간은 이미 자신의 심신조차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 자본(생산수단 - 역주)을 갖지 못한 노동자는 근무중에 클라우드 프롤레타리아트이며, 그 이외의 시간에는 클라우드 농노 처지에 놓여 있다. (...) 클라우드 자본은 우리의 머릿 속 자산을 수탈해간다. 인간이 자신의 머리와 마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클라우드 자본을 집합적으로 소유해야만 한다. (...) 만국의 클라우드 농노여, 클라우드 프롤레타리아여, 클라우드 봉신이여 단결하라! 마음을 옥죄는 쇠사슬 말고는 우리가 잃을 것이 더는 없도다!" (263쪽)
(2025-03-10 13:1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저 『커먼의 재생』, 『무도적 사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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