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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국화와 칼
    인용 2025. 3. 10. 09:15

    이하 루스 베네딕트, 김윤식・오인석 옮김, 『국화와 칼: 일본 문화의 틀』, 을유문화사, 5

     

     

    (…) 오늘날 특히 시골이나 작은 도시에서 집에 머물러 낡은 관습에 매여 있는 쪽은 장남이다. 대체로 차남은 넓은 세계로 진출하여 많은 교육을 받고 수입도 장남보다 많다. 그렇지만 옛날부터 내려오는 계층제도의 관습은 지금도 여전히 강력하다.

     

    오늘날의 정치 평론에서도, 대동아 정책 논의 속에는 전통적인 형의 특권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1942년 봄, 한 중령은 육군성의 대변자로서 공영권(共營圈)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은 그들의 형이며, 그들은 일본의 아우이다. 이 사실을 점령 지역의 주민에게 철저히 인지시켜야 한다. 주민을 지나치게 배려하면, 그들이 일본의 친절에 편승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통치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바꾸어 말하면, 형은 아우를 위한 일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그것을 강요할 때 ‘지나치게 배려’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계층제도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나이에 상관없이 성별에 따라 달라진다. 일본의 부인은 남편의 뒤를 따라 걸으며, 사회적 지위도 남편보다 낮다. 양장을 입었을 경우 남편과 나란히 걷기도 하고 대문을 나설 때 남편보다 앞서 나가기도 하는 부인일지라도, 일단 기모노(着物)로 갈아입으면 남편의 뒤를 따른다. 가정에서 딸은 선물이나 보살핌, 교육비 등이 모두 남자 형제의 차지가 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젊은 여성들을 위한 고등교육 기관이 설립되었을 때에도, 규정된 교육과정에는 예의범절이 중시되었다. 본격적인 지적 교육은 남자들의 발밑에도 미치지 못했다. 현재 이런 학교의 한 교장은 상류계급 출신 여학생들에게 유럽어를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여학생들이 결혼한 후 남편의 장서에 앉은 먼지를 털고 위아래가 바뀌지 않게 책장 안에 넣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여성들은 그래도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 비하면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는 단지 일본이 서양화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의 상류계급처럼 여자에게 전족을 하는 풍습이 일본에는 일찍이 없었다. 또 오늘날 인도의 여성들은 일본의 여성이 가게를 출입하고 시가지를 왕래하면서 몸을 감추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일본에서는 부인이 살림을 책임지고 쇼핑을 하며 가정의 경제권을 쥐고 있다. 돈이 모자라면 집안의 물건을 선택하여 전당포에 가지고 가는 것도 부인의 임무이다. 부인은 하인들을 지휘하며 자녀의 결혼 문제에 큰 발언권을 가진다. 그리고 며느리를 얻어서 시어머니가 되면, 반평생 굽실대기만 하던 가련한 제비꽃이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한 태도로 집안의 모든 일을 관장한다. (82~84)

     

     

    (…) 미국에서조차 이러하므로 미국인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자신의 소망을 억제하고 주의 깊게 엄격한 도덕을 실천하는 일본의 아이들이 분명히 몇 배나 엄격한 교육을 받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일본인의 육아법은 이것과는 전혀 다르다. 일본의 생활 곡선은 미국의 생활 곡선과 정반대이다. 그것은 큰 U자형 곡선으로, 갓난아이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가 허락된다. 유아기를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구속이 커지고, 결혼 전후의 시기에 이르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자유는 최저에 달한다. 이 최저선은 장년기를 통해 몇십 년 동안 계속된다. 그후 곡선은 다시 점차 상승하여 60세가 지나면 유아와 마찬가지로 수치나 외부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이 곡선이 정반대이다. 갓난아이 때에는 엄한 교육을 하지만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차츰 완화되고, 드디어 직업을 가지고 가족을 거느리고 자력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나이가 되면 타인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는다. 우리는 장년기가 자유와 자발성의 정점이 된다. 나이가 들고 늙어서 기력이 쇠하거나 남의 신세를 지게 되면 다시 구속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미국인은 일본인과 같은 형으로 조직된 생활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와 같은 일생은 우리에게는 사실과 상반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미국인이나 일본인은 그들의 생활 곡선을 이렇게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각각의 나라에서 개인이 장년기에 마음껏 활약하여 그들의 문화에 참가하는 길을 확보해왔다. 미국에서는 이 목적을 위해 장년기에 개인적 선택의 자유를 증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인은 이 시기에 개인에게 가해진 속박을 최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인간은 체력이나 돈 버는 능력이 정점에 달하지만, 일본인은 자신의 생활을 취향대로 누릴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은 속박은 가장 좋은 정신적 훈련[修養]이고, 자유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굳게 믿는다. 이처럼 일본인은 가장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시기에 도달한 남녀에게 최대의 속박을 가하는데, 이것은 속박이 일생 동안 지속적으로 가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년기와 노년기는 ‘자유로운 영역’이다. (336~337)

     

     

    서양인을 놀라게 하는 일본 남성의 행동적 모순은, 그들이 어린 시절에 받았던 훈육의 불연속성에서 생겨난 것이다. ‘덧칠’을 한 다음에도 그들의 의식에는 그들이 자신의 작은 세계에서 작은 신이었던 시절, 마음대로 투정을 부릴 수 있었던 시절, 어떤 소망이든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의 깊은 흔적이 남아 있다. 이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 이원성이 심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어른이 된 후 로맨틱한 연애에 빠지는가 하면 갑자기 손바닥을 뒤집듯 가족의 의견에 무조건 복종한다. 쾌락에 빠져들고 안일을 탐하는가 하면, 극단적으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어떤 일도 해치운다. 신중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가정교육이 그들을 때때로 겁 많은 국민으로 만들고 있지만, 또한 그들은 때로는 저돌적으로 보일 만큼 용감하다. 그들은 계층제도에 근거하여 복종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철저히 순종하는 태도를 나타내면서도, 위로부터의 통제에 쉽게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대단히 은근하면서도 오만 불손한 태도를 지닌다. 그들은 군대에서 광신적인 훈련에 복종하면서도 순종하지 않는다. 그들은 열렬한 보수주의자이면서도, 중국의 습관이나 서양의 학문을 채용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새로운 생활양식을 쉽게 받아들인다.

     

    성격의 이원성은 긴장을 수반한다. 그리하여 이 긴장에 대해 일본인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반응을 나타내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동일하다. 그것은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도 그것이 받아들여졌던 유아기의 경험과, 그후 성년기의 속박에 제각기 반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곤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도학자(道學者)처럼 자신의 생활을 규칙에 맞게 규율화하는 데 급급하여 자발적 행동을 취하기를 극도로 두려워한다. 자발성은 가공의 환상이 아니라 그들이 전에 실제로 경험한 것이기 때문에, 그 공포는 더욱 크다. 그들은 높은 위치에 서서 그들이 스스로 만든 규칙을 엄수하는 것으로, 마치 자신이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인간이 된 듯이 생각한다. (380~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