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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인용 2025. 3. 3. 21:25

    Ceteris paribus

     

     

    MEDICINE DU JOUR        Speculation: Your life expectancy is best determined by the number of pills you DON’T take, or don’t need to take, chronically*.

            *That is, exclude the occasional painkiller or headache medicine after meeting with an economist. (N. Taleb; Ditto for ‘위고비’, ‘콘서타’겠지요.)

     

     

    표준적인 시장 이론의 버팀목 두 가지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표준적인 시장 이론’이라는 것을 명확히 해 두기로 하자. 여기서 이용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표준이라 간주되는 경제학 교재 중 하나인 할 배리언이 쓴 『입문 미시경제학』이다.

     

    『입문 미시경제학』 첫 번째 챕터의 제목은 「시장」이며 경제학의 사고를 개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첫 챕터 「시장」의 핵심 부분인 ‘12 최적화와 균형’ 단락의 일부를 아래에 인용한다.

     

    사람들의 행동을 설명하려 할 때는 언제나 특정한 조직화 원리, 즉 행동을 기술할 수 있는 특정한 프레임워크(틀)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아주 단순한 두 가지 원리를 선택한다.

    - 최적화 원리: 사람들은 실행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가장 바람직한 소비 패턴을 선택한다.

    - 균형 원리: 일부 재화의 가격은 수요량과 공급량이 같아질 때까지 조정된다.

    이 두 가지 원리를 검토해 보자. 첫 번째 원리는 거의 동어반복이다. 사람들이 행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때는 바라지 않는 것보다 바라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물론 이 일반적인 이해에도 예외는 있겠지만 통상 이러한 예외는 경제 행동의 영역에는 속하지 않는다.

    두 번째 원리(개념)에는 조금 문제가 있다. 어떤 임의의 시점에서 수요와 공급이 반드시 일치할 수는 없다. 일치하지 않으면 뭔가가 변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게다가 상황이 악화하면 이 변화가 다른 변화를 불러일으켜서 시스템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문제로 삼는 것은 이 균형 가격이다. 시장이 어떻게 이 균형에 도달하는지 그리고 그 균형이 장시간에 걸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와 같은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ー할 배리언, 『입문 미시경제학』

     

    놀랍게도 본문이 649쪽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의 책 내용 가운데 논의의 틀을 이루는 핵심적인 두 가지 개념은 단지 반 쪽 분량 정도이며 설명다운 설명도 없이 도입되어 있다. 나머지 분량은 모두 이 개념을 다양한 문제에 적용하는 방법으로 채워져 있다. (…)

     

     

    밀턴 프리드먼의 반론

     

    이상으로 경제학의 표준적인 시장 이론이 상대성 이론, 열역학 제2법칙, 인과율이라는 근본적인 물리 법칙을 깨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생명이 물리 법칙을 깰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 없다. 생명은 물리 법칙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물리 법칙을 어길 수는 없다. 생명의 일종인, 인간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되는 사회 또한 물리 법칙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물리 법칙에 반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회의 한 측면을 다루는 경제 이론이 물리 법칙을 어기고 있다면 그 이론은 틀린 것이다. 물리 법칙을 깨는 경제 이론은 황당하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주요 논자 중 한 명인 밀턴 프리드먼은 경제학의 ‘비현실성’이라는 비판에 대한 반론으로 다음과 같이 ‘도구주의’라 불리는 논의를 전개한다.

     

    숙련된 당구 선수가 예측하며 공을 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가 마치 자신이 공을 구르는 경로의 최적의 방향을 계산하는 복잡한 수학적 공식을 알고 있고, 공의 위치를 가리키는 각도 같은 것을 눈으로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으며, 공식을 이용해 재빠르게 계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식에 의한 방향으로 굴러가도록 공을 친다는 가설을 세운다면 그 예측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불합리하지 않다.
    ー밀턴 프리드먼, 『실증적 경제학의 방법과 전개』

     

    이 논의는 그럴듯하지만 실은 기만적이다. 사실상 당구 선수는 물리학의 수리적 공식은 모르더라도 당구와 관련한 물리 법칙은 물리학자가 다루지 못할 범위까지 상세히 이해하고 있어서 그것에 반하지 않도록 행동하므로 당구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 따라서 물리 법칙과 당구 선수의 행동은 모순되지 않는다.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그 어떤 당구의 고수도 불가능하다.

     

    물리 법칙에 따라 경기하는 당구 선수의 행동을 물리 법칙에 따라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단 물리학자가 다루는 정도의 조잡한 이론으로 당구 선수의 고도의 계산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미묘한 거짓을 말한 뒤 프리드먼은 다음과 같은 큰 거짓을 말한다.

     

    이러한 예로부터 다음과 같은 경제학의 가설까지는 불과 한 발짝이다. 즉 광범위한 조건에 기초해서 개별 기업은 마치 그들이 예상 수익(일반적으로 ‘이윤’으로 잘못 불리고 있지만)을 합리적으로 최대화하는 것을 추구하며 나아가 그 기획에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데이터를 숙지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요컨대, 마치 기업은 적절한 관련이 있는 비용 및 수요 함수를 알고 있으며 그들이 가능한 모든 행위로부터 생기는 한계 비용과 한계 수입을 계산해서 적절한 한계 비용과 한계 수입이 같아지는 점까지 각 행위를 밀어붙이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가설이다.
    ー밀턴 프리드먼, 『실증적 경제학의 방법과 전개』

     

    이것이 큰 거짓말이라는 것은 기업가 역시 물리학의 수리적 공식은 몰라도 물리 법칙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영구적인 대형 발전소를 건설한다는 식으로 물리 법칙을 무시한 사업은 이뤄질 수 없다. 물리 법칙에 따른다고 해서 사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물리 법칙에 반하는 기획이란 실행이 아예 불가능하다. 한편 이미 살펴보았듯 프리드먼이 지지하는 경제 이론은 물리 법칙을 깨고 있다. 따라서 물리 법칙에 반하는 기업가의 행동을 경제 이론이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속여서 타인으로부터 돈을 갈취하는 사기꾼도 많이 있지만, 그들은 물리 법칙에 반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의 일부를 은폐하고 있는 것뿐이다.

     

    합법적 사업이라도 똑같은 구조로 작동하는 예는 많다. 예를 들면 “원자력 발전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클린 에너지입니다”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파괴성이 매우 높은 플루토늄 등의 방사성 폐기물이 물리적으로 은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진이나 테러, 사고 등으로 유출되어 체르노빌처럼 되면 “친환경 클린”이니 하는 말은 못 할 것이다. 낮은 수준의 방사성 물질은 미량이기는 하지만 늘 새어 나오고 있는데 ‘안전 기준 이내’라는 근거로 커뮤니케이션적인 면에서 은폐되고 있다.

    (* 이 책의 일본어판은 일찌기 2008년에 출간된 바 있다. 이 시점에서도 히로세 다카시 등이 지속적으로 원전을 비판했다. 전직 행원이었던 저자 야스토미 아유미는 나중에 ‘레이와신센구미’에 입당해 출마하기도 한다. - 인용자)

     

     

    연금술로서의 경제학

     

    혹은 이러한 변명도 가능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이렇게 은폐된 부분은 당연히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값을 부여하지 않으니 유감스럽게도 경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 외부효과 문제나 GDP의 실체 등을 거론하는 대목이다. - 인용자)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부분에만 의식을 집중하는 경제학은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 경제학이 물리 법칙에 반하는 것은 문제이기는커녕 그 자체가 경제학의 학문적 독자성을 위한 기반이니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필시 내가 이제까지 전개한 경제학 비판은 헛스윙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렇게 경제학을 규정하면 경제학이 과학이 아니라 ‘연금술’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연금술’이란 납과 같은 비금속을 금 같은 귀금속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인데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도다.

     

    그런데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이 시도가 가능하다고 여겨져 왔고 또 실제로 금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연금술사가 수두룩한데, 그들의 ‘성공’은 의도적이든 무의식이든 물리 과정의 일부를 은폐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기에 납이 있다고 하자. 그 납에 열을 가해서 녹인다. 거기에 몰래 금을 섞어서 굳힌다. 그것을 다시 녹여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면 납 속에서 금을 끄집어낼 수 있다. 금을 섞는 물리 과정을 자기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고 덮어 버리면 납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이 완성된다. 이 숨겨진 범위는 연금술의 관심 밖이고 그들의 관심 범위 내에서는 지극히 정밀하고 체계적인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경제 현상’이라는 물리 과정 중 경제학의 인식과 관계가 없는 부분을 은폐한다고 하면 이것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물리 과정을 은폐해서 성립한 연금술과 같은 셈이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경제학’(economics)이라는 말을 버리고 ‘연금술학’(alchemics)이라고 이름을 바꾸는 것이 낫다. 실제, 앞서 언급한 프리드먼의 기만적인 논의는 과학과 연금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런 이론으로 높은 신분을 획득하고 높은 급료를 받고 책을 쓰거나 강연을 해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다름 아닌 연금술사의 수작이다.

     

    프리드먼은 “이러한 예로부터 다음과 같은 경제학의 가설까지는 불과 한 발짝”이라고 태연히 말하는데 양자 사이에는 천길만길의 낭떠러지가 자리 잡고 있다. 한쪽은 과학이고 나머지 한쪽은 연금술이다. 계속해서 프리드먼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거짓말로 덧칠을 한다.

     

    그런데 당연하지만, 나뭇잎이나 당구 선수가 복잡한 수학 계산 절차를 거쳐 움직인다거나 또는 떨어지는 물체가 진공을 만들어 내겠다고 결정한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는 것처럼, 수리경제학자가 가설을 제시하는 데 편리하다고 사용하는 연립 방정식 체계를 사업가가 실제로 계산할 일은 없다. 당구 선수에게 공의 어느 부분을 칠 것인지 어떻게 정하냐고 물어보면 그는 “정확히 계산하겠지만 확실히 하려고 기도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업가는 아마도 “평균 비용에 상당하는 가격을 정하는데 물론 시장의 사정에 따라 다소의 가감을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 어느 쪽 표명도 거의 똑같이 유리하지만, 양쪽 모두 거기에 대응하는 가설의 적절한 테스트는 못 된다.
    ー밀턴 프리드먼, 『실증적 경제학의 방법과 전개』

     

    당구 선수는 물리학자처럼 간단하게 계산은 못 하지만 좀 더 고도의 계산을 복잡하게 한다. 사업가 또한 제대로 계산하고 행동한다. 대신 사업가는 경제학자가 할 법한 연금술 같은 계산이 아니라 물리 법칙에 반하지 않는 계산을 한다. 물리 과정에 관한 정당한 사례가 연금술사가 말하는 “가설의 적절한 테스트는 못 된다”라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연금술은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숨기므로 아무리 과학적인 반증을 제시해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태연히 있다.

     

     

    인과율을 무너뜨리는 시장 균형

     

    프랑스의 경제학자 에드몽 말랭보는 『미시경제이론강의』라는 대학원용 교재를 썼다. 최근에는 다른 교재에 추월당했지만 오랫동안 세계 곳곳에서 최고의 교재라는 정평이 난 명저다. 나도 이 책은 현재 주류인 교재와 비교해 훨씬 훌륭하다고 느끼고 있다. 왜냐하면 말랭보는 자신의 이론을 설명할 때 아무리 불리하더라도 논의의 전제가 되어야 하는 이야기를 가능한 한 밝히겠다는 태도를 지키며 그것을 상세히 써 놓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교재는 자신에게 불리한 가정은 가능한 한 들키지 않도록 숨기고 있다. 이 장의 앞에서 살펴본 베리언의 책이 높게 평가받고 있는 것은 이 은폐 공작이 특히 교묘하기 때문이다.

     

    말랭보는 자신의 저서 첫 부분에 베리언의 교재에서 다루는 논의 전체가 다음과 같은 가정에 따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 둔다.

     

    사회가 오직 단 한 번의 행동만 일으킨다고 가정해 보자.
    ー에드몽 말랭보, 『미시경제이론강의』

     

     

     

    야스토미 아유미, 박동섭 옮김, 『단단한 경제학 공부: ‘선택의 자유’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도서출판 유유, 3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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