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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이 사람을 보라인용 2025. 3. 4. 15:54
구르지예프는 실제로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놀랄 정도로 희귀한 인물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의 수행 방식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때로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가 영적 스승이었다는 점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는 그런 특별한 성취를 이룬 극소수의 인물들 중에서도 지극히 특이한 유형의 인물이었다. 구르지예프는 지극히 세련된 유머 감각과 풍자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영적 스승이 유머를 다용하는 예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구르지예프처럼 신랄한 아이러니를 구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몇몇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짜증스럽다 못해 사람의 속을 뒤집고 환장하게 만들 때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 의도적으로 그랬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다. 그는 진정한 고차원의 '트릭스터(trickster; 도덕이나 관습을 무시하는 장난꾸러기 존재들의 총칭으로, 각종 신화와 민담에서 보인다. 상당한 수준의 지성과 비전적 앎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활용해 평범한 관습적 행위나 규칙을 깨버린다. - 역주)'였다. 구르지예프는 온갖 모순을 포용하는 존재였다. 익살맞았고, 아낌없이 관대했고, 가차 없이 실용적이었으며, 본인이 원할 때는 상스러워질 수도 있었고... 그와 동시에 지적인 거인이기도 했다. 곧잘 제자들을 닦아세우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자주 있었고, 그럴 때는 그들이 프랑스어로 메르드(merde), 즉 '똥'이나 다름없는 저급한 존재라는 것을 대놓고 알리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꿈속에서 살면서 아무 생각도 없이 흐느적거리고, 악취를 풍기며 삶을 허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상냥해질 수도 있었다. 구르지예프는 지극히 경건했던 동시에 극악할 정도로 불손했다. 엄청나게 긍휼할 수도 있었고, 그럴 때는 긍휼심을 전신에서 글자 그대로 발산하는(emanate)'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전 세계를 누빈 여행가였고, 작곡가였고, 안무가였고, (필요한 경우에는) 유능한 비즈니스맨이었고, 치유가였다.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과, 비견할 책이 없을 정도로 위대한 《비엘제붑이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쓴 저술가이기도 했다. 방대한 우화적 신화 구조를 갖춘 후자는 완전히 독자적인 문학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아니라면 누가 그런 책을 쓸 엄두를 냈을까!) 구르지예프는 '음식'에 관해서도 독자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용할 양식이라는 맥락에서의 음식조차도 우주와 세계에 의식적으로 참여하는 방식 중 하나로 보았고, 요리에 관해서는 거의 은비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좋아했는데, 좀 과하게 그러는 경우도 있었다. 아르마냑(프랑스 가스코뉴산 브랜디의 일종)과 페퍼 보드카(고추 등의 향신료를 담근 보드카)도 즐겨 마셨는데, 위대한 현자이지만 명백하게 속물이었던 크리슈나무르티(Krishnamurti)는 구르지예프를 만난 뒤에 콧방귀를 뀌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상에, '담배'를 피우더라고!"
이 모든 대조적인 특징들이, 구르지예프라는 지극히 개성적인 인물 내부에서 어떤 식으로든 조화를 이뤘던 것이다.
구르지예프가 아무나 자기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는 피상적인 겉모습 이상의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끈기, 그리고 영적인 적성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물리치는 특별한 방법을 겸비하고 있었던 듯하다. 우스펜스키도 거의 합격하지 못할 뻔했다.
구르지예프는 우스펜스키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끄럽고 상당히 초라한 카페에서 만나자는 전갈을 보냈다. 우스펜스키가 그곳에서 만난 인물은 중산모와 벨벳 깃이 달린 검은 외투 차림의 사내였는데, 기이할 정도로 변장한 티가 나서 마치 배우처럼 어떤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고 한다. 구르지예프를 만난 많은 사람들은 그가 왠지 '연기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우스펜스키도 여러 번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스펜스키는 구르지예프의 그런 연기가 사기꾼의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에게 일종의 역설적인 신뢰감을 주는 행위였다고 명시하고 있다. 더 고차의 강력한 자기(自己)를 가진 사내가 의도적으로 어떤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고 말이다. 아주 조금씩만 자신을 드러내는 식으로....
구르지예프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상대로 곧잘 '사기꾼' 역할을 연기했다. 작곡가인 토마스 드 하트만과의 만남도 우스펜스키와의 그것과 흡사했다. 구르지예프가 만남 장소로 지정한 가게는 매춘부가 들끓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라서, 그런 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한 토마스가 누군가에게 목격당했다면 그의 상류계급 지인들 중 일부는 그를 배척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토마스가 영적인 스승이라고 소개받았던 문제의 사내는 쾌활한 표정으로 저것 좀 보라는 듯이 매춘부들을 쾌활하게 가리켰고, 토마스를 곤혹스럽게 하려고 일부러 노력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구르지예프는 그의 이런 연기를 보고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을 일찌감치 솎아내고 싶어했을 뿐만 아니라, 조금 더 인내심을 발휘한 사람들에게도 쉽게 가르침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쉽게 얻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쉽게 획득한 것처럼 쉽게 버리기 때문이다. 진리가 존재 내부에 확고하게 자리 잡으려면, 탐구자는 스스로의 의도를 동원해서 그것을 직접 찾아 나서야 한다는 논리였다. 구르지예프는 진리의 탐구자가 어떤 식으로든 그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 대가에는 돈뿐만 아니라 내적인 대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구르지예프와 처음 만난 수행자는 실제 가르침이 시작되기 전에 몇몇 '간극'을 넘어서야 한다는 인상을 받기 마련이었다.
"모든 사고, 모든 기분, 모든 욕구, 모든 감각은 '나'라고 주장한다"고 구르지예프는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조우하는 이런 일시적인 현상들이 총체적인 인간의 표현이라고 지레짐작한다. 그러나 총체성은 결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단일체가 아니라 여러 부분들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도 쓰여 있듯이 인간의 이름은 많은 이들로 이루어진 군대인 것이다.
항구적이고 불변한 '나'를 획득하는 수준까지 진화한 인간은 세금 청구서를 받든 급여 수표를 받든 간에 한결같이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는 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일시'를 극복한 '제4의 길'의 수행자가 무미건조하고 따분한 인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프로그램에 의해 억압되지 않은 본인의 진정한 본질이 처음부터 변덕스럽다면, 완전히 각성한 인간은 얼마든지 변덕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은 유머 감각의 가치를 알 것이고, 표면적으로는 특유의 '성격'을 많이 드러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내면은 통상적으로 우리가 감정으로 간주하는 것들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진정한 사랑과 회한은 실로 깊게 느끼지만 말이다. 그런 인물은 바깥 세상을 대할 때 진정한 '양심'에 기반해서 의식적으로 행동하며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상황의 특성에 맞춰 최선의 방식을 채택하고, 의식적으로 고통을 감수한 모든 순간으로부터 영적인 이득을 이끌어낸다.
여기서 솔직하게 반추해본다면, 우리가 이런 종류의 진화한 개인성과 얼마나 동떨어진 상태에 있는지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영적'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이것은 예외가 아니다.
미지의 땅에서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가려면, 길을 물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저차의 물질 세계로 '하강하는' 움직임, '동일시' 속으로 침잠하는 행위도 다른 틀에서는 창조적인 움직임이 될 수 있고, 인간의 삶의 엄연한 일부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성에 대해 느끼는 매력과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랑에 빠져 자손을 남기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가 배고픔과 자신을 (어느 정도)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음식을 먹을 욕구를 잃은 탓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굶어 죽는다면 영적으로 진화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리는 바깥 세계와 상호 작용을 하고, 그 일부가 되어야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세계에 살지만 세계에 속하지는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구르지예프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그의 제자들과 그의 아내인 율리아 오스트로프스키는 기차역으로 배웅을 나왔다. 구르지예프는 모스크바를 경유해서 알렉산드로폴로 가서 가족을 만날 예정이었다. 기차역의 플랫폼에서 우스펜스키가 본 구르지예프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평소의 구르지예프"였다고 한다. 이윽고 기차에 탑승한 구르지예프는 자기 객실 창가에 앉아서 배웅 나온 사람들을 내다보았고... 갑자기 딴 사람으로 변모했다. 마치 "어떤 미지의 왕국에서 온 대공이나 원로 정치가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런 인상은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 몇 초 동안 유지되었다. 나중에 누군가가 구르지예프의 '변화'에 관해 언급하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것을 보았음을 인정했다. 그들 모두가 뭔가 엄청난 것을 보았고, 구르지예프가 순간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냈다는 느낌을 받은 듯하다.
이 현상은 향후 몇십 년에 걸쳐 되풀이되었다. 구르지예프는 이따금 일종의 베일을 들어 올리고, 종종 실망스럽거나 우스꽝스러운 인상을 주던 '겉모습 유지'(outer considering) 뒤에서 걸어 나와서 그의 '존재력'의 편린을 드러냈다. 그럴 때의 그는 자애로운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고, 몇몇 신비학자들도 언급한 적이 있는 본유적인 '고귀함'(kingliness)이 느껴졌다고 한다. 구르지예프가 흐바레노(Hvareno)라고 불렀던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은 역설적으로 그 사실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감출 것을 요구받는다고 한다. 설령 그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구르지예프는 선택받은 제자들에게 흐바레노를 보일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절한 시점에... 기차역 플랫폼에서 말이다.
'르 프리외레'에서 종일 힘들게 육체노동을 한 사람은 허기를 채우고 잘 생각밖에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식당에서는 단순하지만 균형 잡힌 식사가 제공되었는데, 이런 환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채식주의에 치우치는 일도 없었다. 인간 내부의 양을 위한 푸성귀뿐만 아니라 인간 내부의 늑대를 위한 고기도 필요하다는 것이 구르지예프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 '르 프리외레'에 도착한 그들을 맞이한 것은 끝없는 도전으로 점철된 고된 일과였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신성한 춤과, 정신적 목표와 결합된 고된 육체노동이었다. '르 프리외레'에서는 환생 같은 신비주의적 개념조차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었는데, 현생에서 수행을 통해 계발하지 않은 것을 환생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 구르지예프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환생이라는 개념은 너무나도 오해받고 왜곡된 탓에 말로 논의해봤자 무의미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비엘제붑이 언급한 "아이에이오이우아(Aieioiuoa)", "오키다노크(Okidanokh)"(구르지예프가 이 책을 쓸 당시 이미 항간에서 흔하게 쓰이던 OK의 속어인 오키-도키Okey-dokey와 발음이 닮은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닐 것이다), "흐르하하르흐트즈하(Hrhaharhtzha)", "하르흐린흐라흐(Harhrinhrarh)" 따위의 혀에 쥐가 날 듯한 단어들을 마치 무슨 경전이라도 되는 듯이 경건하게 읊조리곤 하는데, 구르지예프 본인이 그의 마지막 책인 《삶이란 오직 '내가 나'일 때만 진정한 것이 된다》에서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는 점을 잊은 듯하다. "나는 자제하지 못하고 또다시 나의 약점을 드러내고 말했다. 책에서 가장 진지해야 할 순간에 시쳇말로 '농담 따먹기'를 해버렸던 것이다...." 마지막 두 단어인 "흐르하하르흐트즈하"와 "하르흐린흐라흐"가 대부분 웃음소리와 관련된 음절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니콜라 드 발의 회고록에 의하면, 소파에 앉아 《비엘제붑이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낭독에 귀를 기울이면서 구르지예프는 시종일관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고, 이따금 뜬금없는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
《비엘제붑이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변덕스러운 용어들이 진지한, 그것도 극도로 진지한 법칙들을 위해 선택된 명칭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닐 공산이 크고, 결국 이것은 성서의 해석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유머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미건조해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구르지예프 특유의 방지책이었을지도 모른다. 성서의 자구 하나하나를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는 경향은 어리석은 직해주의와 진정한 이해를 결여한 교조주의적 맹종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문장 자체에 녹아들어 있는 이런 교훈ー자기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ー은 완고한 교조주의의 오만함을 지양하고, 책이 묘사하는 견해와 우주적 법칙들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단초를 제공하고, 진정한 경외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구르지예프의 글 대부분이 아이러니로 점철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 책 역시 예외가 아니라서, 특정 유인원의 조상은 인간 여성이며 태양은 차갑다는 식의 황당무계한 주장과, 독일인과 러시아인과 미국인들의 멍청하고 무개념하고 지조 없는 우행(愚行)을 희화화한 농담이 난무한다. 구르지예프 본인은 활기차고 개방적인 미국인들을 좋아했지만, 이 책에서의 미국인은 다층적인 야유와 풍자의 보고(寶庫)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책에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유머의 베일을 두르고, 신화 속에 깊이 매몰되어 있고, 우화에 겹겹이 에워싸여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성스러움이기 때문이다. 책 자체가 살아 숨 쉰다고나 할까.
1930년에 세 번째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구르지예프는 지금도 여전히 추측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불가해한 목적을 품고 마치 야만족처럼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는 마치 모든 사람을 모욕할 작정인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불쾌한 태도로 돈을 요구하는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 돈을 타인에게 베풀곤 했다. 무의미하게 고함을 지를 때도 있었고, 시도 때도 없이 남의 '아픈 곳을 찌르는' 행동을 계속했다. 음흉한 웃음을 떠올리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구르지예프의 불가해한 행동은 '고난의 길'(Way of Blame) 수행과 미국인 추종자들의 결의를 가늠하기 위한 일종의 시험을 결합한 결과라고 추측한다. 그는 《비엘제붑이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영어판 출간을 추진한 크노프(Knopf) 출판사와의 계약을 고의로 파기했다. 마치 이 책을 신봉자들에게 그냥 유포할 것인지, 확실하게 출간할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가 프랑스로 돌아가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을 때 환멸한 오리지는 미국에 남았다.
마거릿 앤더슨이 쓴 '워크'에 관한 회고록인 《불가지한 구르지예프》를 읽어보면 어느 정도 이 시기의 구르지예프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기록된 구르지예프의 말 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알력(friction)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라. 스스로를 최대한 교란하고, 그와 동시에 관찰하라.... 알력이 없으면 성장도 없는 법이다." 만약 동요했을 때 잊지 않고 '자기 관찰'을 한다면, 평소보다 훨씬 더 쉽게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직시할 수 있고, 그러한 '인상 획득'을 마음의 양식으로 삼을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프리츠 피터스의 회고록을 보면 구르지예프가 라크밀리예비치(Rachmilievitch)라는 이름의 극히 짜증스러운 성격을 가진 러시아인에게 돈을 주고 '르 프리외레'에 계속 머물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라크밀리예비치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모두가 그가 떠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을 때 말이다. 구르지예프는 왜 그런 일을 했던 것일까? 피터스가 구르지예프에게 같은 질문을 하자, 라크밀리예비치가 모든 제자의 내적 '워크'가 필요로 하는 알력을 제공해주기를 원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구르지예프는 언제나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고, 공공연하게 불길한 얘기를 하고,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이 라크밀리예비치를 단지 짜증스럽다는 이유로 높게 평가했던 것이다!
미국에 도착한 구르지예프는 '워크'를 위해 한층 더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내려고 작심한 것처럼 보였다. 몸소 '라크밀리예비치' 역할을 맡아 연기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자신을 위한 알력을 생성했던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이것은 만인에게 추천할 만한 방법이 아니다. 어차피 그러고 싶어하는 사람은 소수겠지만 말이다.
(...) 《밧줄의 여성들》에 의하면 구르지예프는 이 훈련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이 훈련은 방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고 악취를 몰아낸다네. 몇 년 동안이나 환기를 하지 않은 아파트 내부를 상상해보게. 거실을 화장실처럼 쓴 다음에 오물을 치우지도 않고, 그런 더러운 환경에서 잔치를 벌이고, 가구를 부순 탓에 엉망이 된 공간을 말이야. 게다가 다른 방들 역시 그런 식의 공간으로 가득하고, 그것들 모두가 악취를 풍긴다고 상상해보게." 여기서 구르지예프는 인간이라는 건물의 발달 상태가 전혀 조화롭지 못하고, 인류의 가능성이 '중심'들의 오용과 의식적인 관리의 부재로 인해 쇠퇴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구르지예프가 사람들을 대놓고 '메르드'(merde; 프랑스어로 똥을 의미한다)라고 부르기를 즐긴 것은 그들이 그런 심한 욕설에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의도적으로 사람의 '아픈 곳을 찌르는' 전략의 일환이라고나 할까. 구르지예프는 솔리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의 친구들은 모두 특별한 '메르드'야. 따라서 친구들의 메르드한 성질을 직시한다면 자네도 자신이 얼마나 메르드한지를 알 수 있을 걸세." 그러나 그 직후 구르지예프는 자신의 이런 폭언 뒤에 숨겨진 의미를 설명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정신 상태가 있는데, 내가 자네에게서 어느 쪽 상태를 원하는지는 자네도 잘 알 걸세. 자네의 내면에서는 이제야 겨우 '존재-정보(being-data)'가 결정화되기 시작한 참이야. 과거에는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거위 등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미끄러져 내렸던 것이 말이야. 그런 상황에서는 뭘 받아들여도 그대로 배출되기 마련이지.... 거리에 있는 저 행인들을 보게. 자네는 저들이 갖고 있지 않은 뭔가를 갖고 있어."
처음에는 구르지예프를 혼란스럽고 상스러운 인물이라고 생각한 솔리타 솔라노는 훗날 그의 헌신적인 비서가 되었고, 남편인 알렉산더를 잃었지만 '무브먼트'에 관한 탁월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결연하게 '자기 기억하기'에 정진했던 잔 드 살즈만은 구르지예프의 수제자이자 오른팔의 위치에 올랐다.
구르지예프의 사르멍 수도원 이야기에는 비유적인 상징도 포함되어 있을 공산이 크다. 그는 눈가리개를 한 채로 안내자들에게 목숨을 맡기고 위험천만한 길을 따라 수도원으로 가야 했다. 영적 가르침을 얻으려면 안내자의 존재는 필수적이며, 초기에 수행자는 (비유적으로 말해서) 거의 '장님이나 다름없는' 맹목적인 상태에서 인도받는 법이다. 훗날 구르지예프의 제자가 된 지성인 오리지는 글자 그대로 아무 쓸모도 없는 도랑을 파라는 스승의 지시를 받았지만, 한동안은 자기가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마침내 그 의미를 터득할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있을 때까지는 맹목적으로 스승의 지시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르멍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심연을 가로질러야 했을 때 구르지예프는 눈가리개를 떼어낼 수 있었다. 심연 자체도 강력한 은비학적 상징이며, 종종 허영의 소멸과 관련해서 언급된다. 수행자는 위험천만해 보이는 길에서 자발적으로 에고를 포기하고, 죽음의 균열을 가로지르면서도 굳건한 믿음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 시점부터는 탐구자는 스스로를 인도해야 한다. 눈가리개를 떼어낸 탐구자를 인도하는 것은 외부 지시가 아닌 '그 자신의 자각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밧줄과 판자를 엮어 만든 출렁다리를 건넌다는 행위는 위험천만한 것이고, 한 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아래로 추락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자각의식은 날카롭게 연마되어 있어야 한다. 살아서 심연을 넘으려면 '진정으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받은 계시에 관한 일화는 최상에 가까운, 상대적으로 높은 존재의 각성 상태에서 도달한 고매한 목적을 의식적으로 유지한다는 행위와 굴곡으로 점철된 일상의 삶에서 우리가 보이는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구르지예프 철학의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적 수행을 하려고 노력하는 경우에도 그런 식으로 한결같은 자기 각성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없거나, 설령 있다 해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상태는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이고, 무질서가 기본이다.
'진정한 나'(real I)에 도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평소의 하찮은 충동을 희생함으로써 '존재하려는 노력'(being efforts)을 실행할 것을 요구받는다. '진정한 나'란 '자기 기억하기'를 통해 진정한 자기 존재를 획득하는 행위이며, 그 결과 수행자는 진심으로 "나는 존재한다(I am)"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삶에서 이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구르지예프는 그에게는 정말로 소중했던 가진 것들을 버렸다. 이것이야말로 종교 제의에서 희생양과 공물을 바치는 진짜 이유다. 이 행위는 은비학에서는 내적인 희생에 해당하며, 수행자는 자기 자신의 낮은 차원의 산물인 '동물'들을 희생양으로 바친다.
스스로의 타락과 관련된 언급을 포함한 구르지예프의 솔직한 고백은 감탄할 만하며, 그의 사람 됨됨이를 잘 보여준다. 그가 진리 탐구의 길을 더 나아가기 위해 이따금 의도적으로 속임수에 가까운 수단을 썼고, '워크'의 달성을 위해 우회적인 화법을 즐겨 쓴 것 또한 사실이다. 구르지예프는 종종 허풍에 가까운 언행ー보통 그런 행동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ー을 보였지만, 사막에서의 맹세에 관한 일화가 보여주듯 그는 스스로를 객관함으로써 진정한 겸양의 미덕을 발휘할 줄도 알았다. 1940년대에 뉴욕에서 그의 미국인 수제자 중 한 명인 에드윈 울프(Edwin Wolfe)에게 "이 지구상에는 나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고, 내가 갈 길은 아직 멀다네"라고 술회했을 때처럼 말이다. 《삶이란 오직 '내가 나'일 때만 진정한 것이 된다》에서 구르지예프는 젊은 시절 초상적인 힘을 오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런 힘의 오용을 후회했고, 그런 행동을 극복함으로써 더 높은 곳을 향해 용맹 정진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진화에 관한 구르지예프의 가르침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냉혹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현대의 영적 탐구자들은 '다정함과 빛'을 얻을 목적으로 가르침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구르지예프는 진리와 희망ー진정한 희망ー을 제공하지만, 그의 가르침에서는 정서적인 다정함 따위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데다가 그가 제공하는 빛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그는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알렸다. 이렇게 통절하게 느껴질 정도의 정직함은 수행자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스승의 표상이기도 하다. 구르지예프의 가르침은 마음이 훈훈해지는 감상적인 위로 따위와는 거리가 멀지만, 세차게 타오르는 진정한 생(生)의 백열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진화는 그 의식의 진화다." 구르지예프는 말했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은 무의식적으로 진화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진화는 그 '의지'의 진화이지만, 이 '의지'는 비자발적으로는 진화할 수 없는 것이다." 의식이나 의지가 진화하려면 우리의 노력ー의식적이고, 자발적인 노력ー이 필요하다. 바위에 부딪혀 정강이 피부가 다 까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단념하지 않고 급경사를 기어오르려는 강력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구르지예프의 수행이 노동을 뜻하는 '워크'라고 불리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과학에서도 양전하와 음전하, 작용과 반작용, 남성과 여성 따위의 개념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두 개의 힘과 동일한 특정 시점에서 동등하게 상호작용하는 세 번째 힘 같은 개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3의 법칙'에서 능동적인 힘은 법칙에 의해 그것을 부정하는 힘과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지만, 이 두 가지 힘만으로는 현상들을 만들기에 부족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번째의 조화시키는 힘이 개재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원자핵이 전자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이것들은 전자기장의 작용에 의해 하나의 원자를 구성하며, 이 전자기장이 상술한 세 번째 힘에 해당한다.
다른 예로 스승과 제자의 상호작용을 들 수 있다. 스승이 '성스러운 긍정'이고 제자가 '성스러운 부정'이라고 한다면 '성스러운 조화'는 가르침 자체에 해당한다. 제자는 단지 가르침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르침을 습득한 제자의 내면에는 (그가 이 가르침을 앞으로 어떻게 쓸지에 관련된 새로운 차원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조화'의 일부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 차원에서는 '3의 법칙'의 또 다른 측면이 '고차'가 '저차'와 섞이면서 중간 상태를 현실화하는 것을 엿볼 수도 있다. 바꿔 말해서, 높은 차원에서 낮은 차원으로 흘러내리며 바로 아래의 단계를 진동적으로 활성화하는 '불수의적인(involuntary)'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퇴화 역시 진화 과정의 필수적인 일부인 것이다. 스승은 제자가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단순하게ー불수의적으로ー설명하는 법이다.
구르지예프가 지시한 이런 식의 엉뚱한 행동에는 단 음식을 끊는 것처럼 사소한 것도 있었고, 인생 전체가 바뀌는 도전도 있었다. 몬테네그로의 귀족 출신인 올기바나 힌첸부르크(Olgivanna Hinzenburg)처럼, 하인들뿐만 아니라 요리사까지 해고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요리와 청소를 해야 하는 경우조차도 있었다! 대다수의 미국인은 이것을 딱히 대단한 일이라고 느끼지는 않겠지만, 하인들과 요리사의 시중을 받으면서 육체노동과는 무관한 일생을 살아왔던 귀족이 돌연히 자발적으로 그런 환경을 포기하고 그들의 기술을 배워야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여기서 당사자가 가장 겸손해진 순간은 아마 하인들의 일이 얼마나 힘들고 기능 집약적이었는지를 자각했을 때였을 것이다. 올기바나는 육체적인 가사 노동을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정신의 완전한 변혁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강을 깨끗하게 닦으면 누구든 새로운 겸양의 감각을 경험하게 되는 법이다. 적어도 '한동안'은 말이다. 물론 올기바나의 자기희생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녀는 단지 그런 임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의식적으로 수행해야 했다. 최대한의 주의력을 기울여, '현재 순간'을 살면서 그래야 했던 것이다.
구르지예프가 제자들을 본인들이 한계치라고 간주하는 선을 넘은 상태ー그가 '초超 노력(superefforts)'이라고 부른ー로까지 곧잘 몰아붙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이 진짜 한계에 도달했는지의 여부를 언제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실제로 한계에 도달했을 때는 음식과 수면이라는 육체적인 보상을 제공했다. 제자들의 심리적 기계성을 해체할 때도 그는 같은 방식을 채택했다. 완벽하게 분노한 스승을 연기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의도적으로 '아픈 곳을 찌르는' 일도 불사했다. 그는 제자들의 심리적인 약점을 콕 찔러 지적함으로써 그들의 표면적인 한계 너머로까지 밀어붙였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고삐를 늦추고 위로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제자들 역시 자기들이 방금 감내한 경험이 독재자의 잔혹함이 아닌 수행임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구르지예프의 '워크'라는 큰 맥락 안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구르지예프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은유를 써서 이렇게 설명했다. 스승인 구르지예프는 짐마차를 모는 마부이고, 말이 제대로 길을 나아가는 한은 (바꿔 말해서, 제자가 제대로 '길'을 따라가는 한은) 말이 자유롭게 나아가도록 내버려둘 것이다. 그러나 말이 오른쪽 도랑을 향해 가려고 한다면 구르지예프는 고삐를 잡아당겨 왼쪽으로 가게 할 것이다. 말이 왼쪽 언덕을 향해 간다면 오른쪽으로 가게 할 것이다.
위에서 구르지예프가 굳이 지적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사실 하나는, '워크'라는 이름의 마법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술한 '말'은 궁극적으로는 마부 본인으로 변용하고, '길'을 따라 스스로를 인도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훗날 구르지예프가 토마스에게 "오늘은 자네가 나를 위해 멍청이 노릇을 하지만, 내일은 내가 자네를 위한 멍청이가 되겠네"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제자들이 '옥타브'의 단계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들을 뛰어넘는 것을 돕는 '충격'도 제공되었다. '카이다(속성) 요가'라고 명명된 이 수행에서 구르지예프는 감정적으로 거의 견디기 힘들 정도의 개인적인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제자들의 각성을 촉발했다. 구르지예프는 어떤 역할을 연기했다. 때로는 군대의 훈련 교관처럼 제자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때로는 자식의 행동에 실망한 부모처럼 한숨을 쉬는 연기를 하면서 말이다. 특히 '불공정한 사내'를 연기할 때는 박진감이 넘쳤고, 이미 경험이 있는 제자들조차도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반응할 때가 많았다. 그럴 경우 실제로 실망하는 것은 구르지예프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구르지예프의 '학대'를 의도적으로 감수하는 데 성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행자들은 스승의 연기에 대한 자신의 자동적인 반응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일 없이 그 반응을 직시하고, 그것에 휩쓸리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적절한 방식으로 생성했던 것이다. 훗날 구르지예프는 그가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종종 시인하곤 했다. 스스로의 자동적 반응을 직시함으로써, 제자들이 자신에 관해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말이다. 구르지예프가 만들어낸 것은 제자들의 내면에서 특정한 실체를 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일종의 온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제자들의 성장을 위해서 그 온실을 정말로 뜨겁게 데웠던 것이다.
존 셜리 지음, 김상훈 옮김, 『인간이라는 기계에 관하여 : 구르지예프 평전』, 정신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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