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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미니 맥스인용 2025. 2. 16. 18:39
도깨비가 되지 말고 난쟁이가 돼라
“이 세상에 도노키〔兎寸〕 강 서쪽에 높은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 그림자는 아침 해가 비치면 아와지〔淡路〕 섬까지 이르고, 석양에 비치면 가와치〔河内〕의 다카야스〔高安〕 산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를 잘라 배를 만들었더니 매우 빠른 배가 되었습니다. 그 배 이름을 가라노〔枯野〕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배로 아침저녁, 아와지 섬의 맑은 물을 길어 귀인의 식수로 썼습니다. 이 배가 부서진 다음, 그 재목으로 소금을 굽고, 그 타다 남은 나무로 고토(琴; 거문고와 비슷한 일본 현악기)를 만들었더니 그 소리가 온 나라(七鄕, 어떤 판본은 七里 - 인용주)로 퍼져 울렸습니다.”
큰 나무를 잘라 배를 만든다는 것은 거대한 수목이 축소된 것을 의미하나, 반대로 그 축소에 의해서 거목은 가동적인 물건이 되어 더 넓은 바다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배는 태워져 더 작은 고토가 된다. 그러나 그 고토 소리는 배가 달린 바다보다 더 넓은 온 누리〔七鄕〕에 울려 퍼진다.
거대한 나무가 배가 되고 그것이 다시 고토가 되어 점점 축소되어 가면서 그와는 반대로 보다 넓은 세계에 그 힘이 미치게 된다. 여기에 또 무슨 말을 더 붙일 필요가 있겠는가?
일본의 축소 문화는 타다 남은 나무로 고토를 만드는 것에 의해 더 넓어질 수가 있을 것이다.
원래 일본 문화는 도노키의 거목처럼 거대한 문화였다. 고분에서 출토된 하니와〔埴輪〕,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상, 또 36장(丈)이나 되는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나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닌토쿠료〔仁徳陵〕 등을 보더라도 모두 다 거대하다. 그것이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무로마치〔室町〕로 들어서면서 깎이고 축소되어 대륙 문화와는 구별되는 일본 문화를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일본 문화는 거목을 축소해 배를 만든 제1단계의 축소 문화에 지나지 않는다.
‘구니〔國〕’라면 자기의 고향을 뜻하는데,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는 일본의 나라〔國〕가 된다. 구니가 이처럼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과 같이 봉건 국가에서 근대 국가까지 일본은 교묘하게 그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축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테두리가 넓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일본의 의식은 세토나이카이〔瀬戸内海〕의 바다에 둘러싸여 태평양 등 일곱 바다로 퍼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인에게 있어 세계는 언제나 ‘소토(外; 바깥, 타인 - 인용주)’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 같다. 국제적인 시민 의식도 빈약하다. 배가 맑은 물을 길어 귀인의 식수로 바치는 단계다. 달러를 길어 오는 배…… 그것이 현대 상업주의 문화와 맞붙게 된 축소 문화, 즉 트랜지스터, 탁상 전자계산기, 비디오, 디지털시계 등이며, 드디어는 반도체의 마이컴 문화이다.
그러나 더 확대하기 위해서는 그 상업주의적 확대인 배의 문화를 부숴서 태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물건의 차원, 그 상품 자체가 달라지는 새로운 축소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가라노의 소금과 고토〔琴〕’ 이다.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모른다. 그것은 우리 세대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 그리고 미래의 우리 아이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문명의 배가 부서져 해체되고 그것을 태운 재에서 다시 탄생하는 그 어떤 것, ‘죽음의 재’가 아니라 고목(古木)의 가지에 꽃을 피우는 하나사카지지〔花笑爺〕의 재와 같은 것, 거친 바닷물이 생명의 소금으로 결정(結晶)되어 번쩍이는 것, 또 물질문명의 배가 타버린 자리에서 만들어진 작은 고토 그러나 그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온 누리에 7대양(七大洋)의 구석구석에까지 울려 퍼지는 것,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되리라는 것이다.
이어령, 『축소지향의 일본인』, 문학사상사, 413~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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