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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인류는 어디로 향하는가?
    인용 2025. 3. 3. 15:45

    로렌스 토브 선생이 책을 보냈다

     

     

    로렌스 토브의 『3가지 원리』라는 책이 도착했다. 바로 펼쳐 보았다. 표지 안에 토브 씨의 헌사가 적혀 있었다.

     

    “우치다 교수님. 이 책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저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당신의 목적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나아가 당신의 피드백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곧바로 읽어 나갔다.

     

    오오오, 이것은 정말로 희한한 책이다.

     

    ‘거대서사’에 지식인들이 안녕을 고한 것은 20년 정도 전,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거대서사에 대한 조사(弔辭)를 낭독했을 무렵이다.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에 아직 손때가 묻지 않았을 시절의 일이다. 로렌스 토브는 이미 한번 사망 선고를 받은 거대서사를 다시 호출하였다.

     

    역사는 랜덤이고 무의미하고 미래는 예측불가능하다는 말은 역시 지나친 말이다. (……) 빅픽처란 상식적인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도 가능하다. 물론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는 그가 앞으로 인생에서 어떠한 경험을 하게 될지 예견할 수 없다.

    그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사고방식으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신체를 가졌는가 정도는 예측 가능하지 않은가? 남성 아니면 여성 어느 한 쪽으로 태어나서 심장은 1, 눈은 2, 귀는 2, 머리는 1, 꼬리는 없다. 이 정도는 예견할 수 있다. 심신복합체로 태어나는 것의 불가피성, 이 심층구조는 이미 결정된 사항이고 예견 가능하다.

     

     

    이야기는 알아듣기 쉽도록 차근차근 시작된다. 로렌스 토브가 말하는 ‘거대서사’는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도 결코 바뀌지 않는 인간의 조건을 의미한다. 그것은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것’과 ‘반드시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어떠한 사회집단(카스트)에 귀속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은 유아기부터 청년기를 거쳐서 장년이 되고 결국 늙는다. 이 흐름은 불가역적이다. 노인으로 태어나서 점점 유아가 되어 가는 인간은 없다.

     

    그리고 노인일 때와 소년일 때는 사고방식도 느끼는 방식도 다르다. 반드시 바뀐다.

     

    ‘바뀐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도 그렇게 일종의 ‘흐름’ 속에 있다. 인류사의 발달 모델과 개인의 성숙 모델은 동일하다. 로렌스 토브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인류는 영적 계단을 천천히 오르고 있다. 기독교가 가르치는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직선적인 시간도 아니고 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도 아니고 ‘역사의 종언’과 ‘문명의 충돌’ 같은 무시간 모델도 아니다. 유아가 노인이 되는 것과 같은 엄숙한 영적 성숙 과정이다. 유아에게는 들리지 않는 ‘영적 소명’을 성인은 들을 수 있다. 거의 똑같은 말을 레비나스도 『곤란한 자유』의 첫머리에서 이야기했다.

     

    “어른이 되어라.”

     

    그런데 나는 아직 인류사가 예정된 과정을 거치며 조화롭게 성숙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는 것에 관해 로렌스 토브와 같은 깊은 확신을 할 수가 없다(아직 30쪽밖에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떠한 설명 방식이든 ‘어른이 되어라’는 수행적인 메시지를 발신하는 한 나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마음이 있다.

     

    내일도 종일 독서다. (200553)

     

     

    드디어 로렌스 선생을 만나다

     

     

    아침부터 신초클럽에서 『생각하는 사람』에 싣기 위해 로렌스 토브 씨와 대담을 했다.

     

    지금까지 이 블로그에 토브 씨 관련 글을 몇 번 썼는데, 그는 『3가지 원리』라는 매우 흥미로운 책을 쓴 미래학자이다.

     

    세계사는 영적-종교적 단계(브라만), 전사적 단계(크샤트리아), 상인적 단계(바이샤), 노동자 단계(수드라)와 같이 힌두교적 카스트의 네 단계를 경유해서 진행된다는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이다. (인용자: 니체의 “낙타, 사자, 아이” 3단계와도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요?)

     

    여하튼 토브 씨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현대사회 관련 질문에도 “그것은 애당초……”라고 고대부터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어느새 분명한 대답을 내놓는다. ‘시야가 넓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토브 씨만큼 시야가 넓은 사람도 드물다. 박람강기(博覽强記; 척척박사 - 인용주)와는 조금 다르다.

     

    토브 씨가 드는 사례 중 많은 부분은 ‘듣고 보니 나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례들을 연결하는 수완이 실로 훌륭하다. 그 문제를 논할 때 나 같으면 ‘시야 밖’에 둘 사례까지 ‘시야 안’으로 가져온다. 오타키 에이이치 선생처럼 ‘관련성을 발견하는 것’을 향한 대단한 열정이 토브 씨의 지성을 작동시켰다.

     

    다섯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브 씨는 영어로 말하고 나는 일본어로 말했다.

     

    토브 씨의 영어는 아주 알기 쉬워서 듣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나는 ‘입부터 먼저 태어난 남자’라서 그 수다를 영어로 풀어낼 만한 영어 능력이 없다 보니 통역인 사이토 사토코 씨에게 신세를 졌다. 내 말을 이만큼 훌륭하게 영어로 통역해 준 사람은 처음이라 놀라웠다. “, 그렇게 말하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사회를 보는 아다치 마호 씨와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다. 이야기 도중부터 합기도 이야기와 유대인 이야기를 나눴다.

     

    토브 씨도 『사가판 유대문화론』을 읽고 있는데 일본어 읽기가 능숙하지 못해서 오래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도 아직 다 읽지 못했다고 한다.

     

    토브 씨는 유대인이다. 그 책을 유대인 독자는 어떻게 읽을지 무척 궁금해서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 해설해 주었다.

     

    “네? 뭐라고요? 그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는데……. 그런데 그럴지도 모르지요. , 그렇구나” 하고 토브 씨는 흥미롭게 들어 주었다. (2007220)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도서출판 유유)